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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 민음사, 2021.)

Dog君 2021. 6. 13. 23:41

 

  사실 이 책의 첫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나에게, 독자를 낄낄대며 웃게 만드는 지역축제 참관기라는 것이 곱게 보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지역축제에는, 소멸해가는 지역사회에서 뭐라고 해보려고 분투하는 공무원과 소상공인의 고민이 녹아있다. 지역축제가,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 품바 공연이나 무명가수들을 초대해서는, 시치미 뚝 떼고 괜히 춤도 더 추고 박수도 더 치고 웃음소리도 더 크게 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면 뭐라도 해야 되니까.

 

  그런 것은 대체로 다 어색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거기서 딱 한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보면 지역축제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꼴들을 총집합체 비스무리한 모양새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사정을 알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래하고 춤추지는 못할망정) 시치미 뚝 떼고 박수 치며 웃어주는 정도의 예의는 갖춘다. 그런 어색함에 시치미 뚝 떼고 기꺼이 참여하는 멘탈의 수고로움이 바로 지역축제를 마냥 웃기는 부조리극으로 묘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인 동시에 지역축제에 배어있는 애환...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거기에 대고 외부자의 시선이랍시고 객관적인 척 하면서 낄낄대며 웃어대면, 그런 거 굉장히 불쾌하다. 그런 글은 대체로 서울러의 무지 혹은 대도시 출신의 오만함의 산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튼, 술』에서도 꼭 그랬던 것처럼) 김혼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잠시 깜빡했다.) 재기넘치는 문장 덕에 낄낄거리며 페이지를 계속 넘겨가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이유도 모르게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런 희한한 감정에 다가가게 됐다. 이건 내 문장력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그런 감정인데, 그 뭐랄까 희한하기 짝이 없는 그 감정이 주는 기묘한 울림[感動]이 있다. 『아무튼, 술』에 이어 2연타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니, 이제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까지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s. 박태하의 책은 사다 놓고 아직 읽지를 못했네... 당연히 그것도 읽어야지.

 

  지방 소도시의 침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한때의 풍요를 누린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에 유독 그림자가 크게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처음 와 본 영산포가 그랬다. 일제가 수운을 이용한 곡물 수탈을 위해 일찌감치 등대를 설치할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옆 동네인 나주와 합쳐지며 그 하위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영산포는 '지방의 도심'도 아닌 '지방의 부도심', 이촌향도의 직격탄도 더 빨리 더 세게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날인데도 동네에서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범상치 않은 오라를 뿜는 홍엇집들이 늘어선 '600년 전통 홍어의 거리'에도 오가는 발걸음이 없었다.(모두가 축제장에 몰려가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럴싸하게」, 67쪽.)

 

  애국은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구린' 것이었다.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해 온 대부분의 것들이 구렸고,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대부분 뒤가 구렸다. 그랬기에 축제에 오기 전 김혼비는 마뜩잖았고 박태하는 다소 심술궂었다. 미안했다. 의병 개개인의 삶의 결을 추상적 가치로서의 '애국'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게 K-민족주의라면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어떤 진심들마저 '구림'으로 뭉뚱그려 버린 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애국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도 어디 따로 뚝 떨어져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라 결국 우리와 비슷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싸움과 마음의 합이라는 걸 느낄 대 평소 '쿨함'으로 덮어 둔 마음 한쪽이 열려 버린다. 이 분분하고 분연한 마음들을 어떻게 쿨하게만 넘길 수 있을까. (「의령의 진짜 유령은」,  80~81쪽.)

 

  축제장의 일부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한산한 전통농경문화테마파크 한쪽에서 선수들이 나무 그늘 아래 천막 하나 없이 짐도 풀고 몸도 풀고 있었고, 멋짐이 폭발해야 할 사각의 링 위에는 인삼밭에나 씌우는 검은 차광막이 둘러쳐져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삼면을 둘러싼 잿빛 플라스틱 의자에 뜨문뜨문 서른 명 정도가 앉아 있었고, 핫팬츠와 성조기가 그려진 비키니를 입은 라운드걸들이 모델 같은 워킹으로 경품 당첨자들에게 다가가 파프리카를 나눠 주고 있었다. 눈길 닿는 어느 하나 심란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있을 법했지만 어색하고, 어색할 법했지만 그러려니 하게 되는 어떤 비현실, 이럴 거 같았고 그래서 왔지만 또 이렇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던 광경. (「의령의 진짜 유령은」, 85~86쪽.)

 

  저, 그런데 말이죠, 「고고학 자료로 본 충북 지역의 젓가락 문화」가 '젓가락 문화 발전을 위한 한중일 3국의 제언'과 딱히 관련이 있나요. 충북 지자체별 발굴 젓가락 개수와 특징(하지만 "표본이 적어 유의미한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움"이 최대 특징이었다.)을 삼국의 학자들이 함께 보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어쩌다 이 과업을 떠맡으셨는지 모를, 젓가락을 소재로 소논문을 쓸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으셨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소속 고고학자께서는 자신에게 이처럼 꼼꼼한 자료 조사와 정리 이상의 어떤 통찰은 애초에 무리였다는 듯 시종 겸허한 자세로 발표 및 질의응답에 임하셨다. (「갈라져야 쓰것네」, 177쪽.)

 

  행사장은 인파가 대기 중인 둔치를 한 면으로 하고, 나머지 삼면은 물 위에 녹색 그물을 둘러친 직사각형 꼴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야트막한 강 위로 드러난 흙길을 따라 반대편인 천 한가운데 서자 고개를 들면 탁 트인 가을 하늘 아래 잔잔히 흐르는 남대천의 너른 품이 포근했고, 고개를 숙이면 맑디맑아 바닥까지 원히 보이는 물이 청량했다. 하지만 그 맑디맑음 탓에 연어들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였다. 50~60센티미터는 족히 될 듯한 길이에 어지간한 성인의 팔뚝보다 굵고 큰 연어들은 몇 분 후 어떤 운명이 들이닥칠지 모른 채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혹시 어제 치러진 행사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연어들은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을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 마리도 벗어날 수 없도록 야무지게 쳐 놓은 그물 테두리 안에서 그저 헤엄치는 것뿐. (「이제 그만 거꾸로 거슬러 올라야 할」,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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