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8/10 (10)
Dog君 Blues...
유모차 할머니라면 나도 얼굴을 알고 있었다. 새벽, 신문이 올 시간이면 어김없이 유모차에 의지해 공장단지로 폐지를 주우러 가는 할머니. 눈썹 끝에서부터 귓불 근처까지 검버섯이 피어 있는 할머니 유모차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뚱뚱한 할머니. 아니, 그러면 그 할머니 통해서 연락하면 되잖아? 아무리 사채업자라도 돈이 두 번 들어간 거까지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거 아니야? ‘란 헤어센스’ 여사장 말에 ‘참좋은 마트’ 사장이 담배를 꺼내물면서 대답했다. 관리소장 말이 할머니도 아들 연락처를 모른대요. 한 사 년 전인가, 설날에 잠깐 얼굴을 비친 이후론 코빼기도 안 보였대요. 뭐 교도소에 갔다는 말도 있고, 경찰에 쫓기는 중이라는 말도 있고...... 아이고, 그러니까 더 안타깝다는 거 아니에요. 저 남자도..
어제 역사학대회 자유패널에서 발표를 했다.본격적인 학술연구는 아니고 시론에 가까운 글이라서 부담이 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글은 글이라서 꽤 골치를 썩기는 했다. 이번 달에 했어야 한 3번의 발표를 다 끝냈고(다 다른 주제였다!)방송대본은 3개를 썼다.(셋 다 녹음 전이다) 그것 때문에 10월 내내 걱정이 많아서 잠도 잘 안 오고 막 그러더라. (역시 나는 공부와는 안 맞는 인간이구나)이 정도로 한숨 돌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음 주에 떠날 출장 준비가 아직 남아있다. 오늘따라 나를 긁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냥 바빠서 예민해진 탓일까. 평소 같으면 그냥 허허 웃고 넘어갔을,생면부지의 사람이 무심코 행하는 무례함이라거나고객응대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카페 점원이라거나 하는 일들. (프랜차이즈의 장점 중 하나가..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흐리멍덩하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삶의 원칙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 중 하나가 '계획을 세우지 말(고 그럴 시간에 그냥 그것을 하)자'다. 어차피 계획 세워봐야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 거, 그냥 흘러가는대로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생산적이라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뭔가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보다는 우연적인 것이 내 삶을 더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다른 원칙이 '인생은 운빨'이다.) 그래서 굳이 나는 내 인생을 내 결정에 의해서만 좌우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시세에 맞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그냥 운과 우연에 맡기는 것도 괜찮다고..
2018년 10월 9일 화요일 아침 달리기.평균 페이스 : 5분 8초운동 시간 : 1시간 49분 16초 하프를 두번째로 완주했다.뭘 또 두번째로 완주했다고 설레발인가 싶기도 하지만,첫번째는 고저차가 거의 없는 강변 코스였지만 (그래서 기록도 놀라울 정도였지)수원 광교호수공원 코스는 고저차가 꽤 있기 때문에 체력소모도 좀 큰 편이다.그런 것을 생각하면, Sub 150은 대만족. 첫번째에 비해서 달린 후의 통증도 훨씬 적다.속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까 훨씬 편해졌다.페이스를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지, 다리 통증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살짝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요새 이러저러 심란한 일이 많은데, 이게 그나마 삶의 낙이다.
1-1. 어려서부터 나는 운동을 싫어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인간의 문명이란 최대한 몸을 덜 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는데, 이 더운 날 왜 저렇게 굳이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걸까...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도시락은 3교시 마치고 진작에 까먹고 4교시 마치는 종소리와 동시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달라. 나는 문명인이야... 1-2. 대학에 들어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과에서 체육대회를 하기는 했지만, 학생회 간부였던 나는, 심지어 학생회장일 때도, 운동장 구석에서 전 부치고 막걸리 마시는 데만 열중했다. 1-3. 자발적으로 운동을 했던 것은 대학원에 들어..
나는 이어폰을 끼지 못한다. 귓바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 귓바퀴에 이어폰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다. 애써 걸쳐 놓으면 그냥 스르르 빠져버린다. 그래서 보통의 이어폰을 끼지 못하고 헤드폰이나 커널형만 쓴다. 달릴 때는 늘 음악을 듣는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지루함도 덜 수 있고, 훨씬 더 힘도 나기 때문이다. 그간은 큰 불편 없이 커널형 이어폰을 썼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유독 이어폰이 빨리 고장나는 느낌이다. (나는 이어폰을 소모성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히 쓸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어지간히 비싼 모델이 아니면 수리해서 쓰는 경우도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아무래도 아이폰7부터 오디오 단자가 바뀐게 근본 원인인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이폰7부터는 전통적인 ..
1. 수원에서 열린 지역도서전에 갔다가, 펄북스 부스에서 강력한 추천을 받아서 구매. (‘강매’는 아니고...) 2-1. 좋으나 싫으나 역사학 언저리에 엉덩이 걸치고 살아온 것이 얼추 10년쯤 됐다. 그러다보니 아래저래 답사 다닐 일이 많다. 여행 다니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답사 다니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 그런데, 답사와 여행의 차이는 뭘까. 2-2. 이런 질문이 나오면 흔히 한자를 파자해서 ‘썰’을 풀곤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보겠다. 여행旅行이라는 글자에는 두인변(彳, 그냥 쓰면 ‘자축거릴 척’이 된다고 한다)이 있고, 모 방(方)이 들어있다. 두인변은 말 그대로 사람의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하고, 모 방이면 귀퉁이 혹은 방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행이라는 글자에 이미 ..
1. 무언가를 공부할 때는, 무엇이 이야기되는지만큼이나 무엇이 이야기되지 않는지도 중요하다. ‘근대’가 어쩌고 ‘국민국가’가 저쩌고 할 때는 더 그렇다. ‘근대’와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바로 여러 기억과 정체성 중 일부를 선택하고 나머지 일부를 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때 선택된 기억과 정체성은 대개 ‘정상’이 되고, 선택되지 않은 기억과 정체성은 ‘비정상’이 된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얼추 맞다. 그리고 그 ‘비정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처리되기 마련이다. 2-1. 나는 역사 공부의 여러 역할 중 하나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비정상’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거기에, 지금의 팍팍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