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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반비, 20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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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반비, 2016.)

Dog君 2017. 12. 9. 15:57


1-1. 직장 내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흥미로운 소재에, 구성도 잘 된 편이다. 잘 읽히는 책이구만, 하고 모임에 갔는데, 얼래, 의외로 완독자가 없다. 고참들은 입을 모아,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는 완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책이라고 토로하더라.


1-2. 책에 대한 입장도 각각이다. 범행의 이유에 대한 저자의 물음과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대답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저자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콜럼바인 총격 사건을 애써 변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차이는, 어느 쪽에 감정을 이입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게다.


1-3. 나는 이 책을 쓴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악마로 변한 아들이 남기고 간 상처를 보듬어 안은 채로, 쓰러지지 않고 끝끝내 버티고 서서 살아내야 하는 그 엄마에게. (책의 제목이 “내 아들은 가해자입니다”가 아니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기도 하다.)


2-1. 영화 ‘곡성’을 두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밀려오는 악(惡)에 대해서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인간의 발버둥이라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유튜브에 올라온 이동진의 평론을 참고하시길. 2시간짜리라는 게 약간 함정이지만, 이 정도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오른 평론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나약한 인간은 압도적인 악 앞에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거고, 심어어는 그게 언제 올지조차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는커녕 자기 존엄을 지키며 대응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는 거다.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의 마음도 대충 그렇다.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고, 부모로서의 역할도 아주 잘못한 거 없는데, 아니 왜, 왜, 왜, 왜, 내 아들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가 된 걸까.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해도, 그걸 미리 알아채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던 이유는 대체 뭘까.


(전략) 딜런이 한 행동이 괴물 같은 무시무시한 일이었긴 하지만, 딜런의 실상이 어떠하였는지는 그보다 더 파악하기 어렵다. 딜런은 만화에 나오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후략) (p. 116.)


(전략) 내가 낳고 기르고, 무릎에 앉히고, 같이 설거지를 하던 아이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몰랐는데, 어떻게 남이 그 속을 알겠는가? 『폭력의 해부: 어떤 사람은 범죄자로 태어난다』라는 책에서 에이드리언 레인 박사가 인용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아이를 방에 혼자 두고 장난감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한 다음 실험자가 방에서 나간다. 아이가 들여다보는지 안 보는지가 테이프에 녹화되고, 실험자가 돌아와서 보았는지 물었을 때의 반응(거짓말 또는 참말)도 기록된다.

  “봤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의 반응을 대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추측해보라고 했을 때 정담률이 5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반반 확률을 겨우 넘긴 정도다. 그다음에는 밀수범 적발 경험이 풍부한 세관 직원들을 데려와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이 숙련된 전문가들은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49퍼센트의 확률로 맞췄다. 동전 던지기로 정하는 것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다음에는 경찰관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41퍼센트를 맞춰서 반반 확률에 훨씬 못 미치는 기록을 냈다. 더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쉬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네 살짜리 아이도 쉽게 전문가를 속인다. 레인 박사는 고소하다는 듯한 말투로 연구 결과를 요약한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pp. 349~350.)


2-2.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곡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압도적인 재앙이 언제 우리를 덮칠지 우리는 알 수 없고,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으니까.


3. 그래서 나는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 이후가 훨씬 더 궁금했다.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이후, 그것을 그러안고 살아남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 끝내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버텨낸 과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전략) 콜럼바인과 관련된 주제가 나올 때마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피하려고 자리를 뜨거나 괴로운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아예 아무 데도 안 가면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내가 참혹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기는 했으나 상처 입은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딜런이 한 행동의 막대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고 딜런의 참담하고 폭력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받아들여야 했다. 불편한 일을 겪고 그 충격을 버텨낼 때마다 딜런이 한 일 전체의 무게를 받아들이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나를 격려하든 비판하든, 나는 직장으로 돌아오면서 내 아들이 파괴하려고 했던 지역사회와 다시 어깨를 겯게 되었다. (p. 204.)


4-1. 수 클리볼드의 해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이건 해보고 묵묵하게 그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었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분야를 공부했고, 사태 수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편지를 썼다. 이 책을 쓴 것도 아마 그것의 일환이었겠지.


  내가 운전을 하고 동물병원에 간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조차도 내가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 루스와 돈은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체념하고 로키와 나를 차에 태우고 우리 동네 동물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워낙 동물에 대해 지극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날 로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주인으로서 갖는 책임감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리틀턴에 내가 책임을 느껴야 할 고통이 너무나 많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일에 매달렸다. (p. 96.)


  혼란이나 서러움을 피하거나 넘어서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버티며 살아가는 일이고,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내 아들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는 것이었다. (pp. 183~184.)


4-2.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도들은 모두 실패한 것 같다. 뇌과학을 통한 접근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추측일 뿐 딜런 클리볼드의 행동을 직접 설명해주기에는 역부족이고, 수 클리볼드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다 해서 희생자들이 살아돌아올리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


5. 실패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무엇일까. 그런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무엇이건 하는 것, 묵묵히 버티는 것,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인간다움’ 아닌가 싶다. (라조기는 이것을 ‘우야겠노이즘’이라고 명명한 바 있고, 모교의 한 교수님은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라는 긍정적 니힐리즘'이라는 표현을 쓰신 바 있다)


6. 아, 그리고 하나 더. 수 클리볼드 말고, 그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도 몇 조각 잇다.


  주차장으로 나와 돈과 루스의 차 안으로 몸을 숨기러 서둘러 가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며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병원 직원 한 명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다가가야 하나 달아나야 하나 망설였다.

(중략)

  사실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조그만 여자가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었다. 여자는 자기도 아들을 키워봐서 사내아이들이 어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바보짓을 하는지 안다고 했다. 그 뒤에도 나에게 이런 감정을 전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동물병원 직원은 키가 나보다 훨씬 작은 여자였지만 나는 그 사람 품에 안겨 흐느꼈고 눈물로 우리 두 사람을 적셨다. 한참 뒤에야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른다는게 떠올랐다. (pp. 97~98.)


(전략) 불교 경전에 기사 고타미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이 여인의 아기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기사 고타미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의원에게 약을 달라고 하는데, 의원은 어떤 방법을 써도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의원은 기사 고타미를 붓다에게 보내고, 붓다는 아무도 고통을 겪은 일이 없는 집에서 흰 겨자씨 너덧 알을 얻어오라고 시킨다. 기사 고타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기를 살릴 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겨자씨를 내주려고 했지만, 그 사람들에게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일이 있냐고 확인해보면 하나같이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기사 고타미는 붓다에게 돌아간다.

  “겨자씨를 가져왔느냐?” 붓다가 물었다.

  “아니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이 없는 사람은 없음을 알게 되어 제 아이를 편히 쉬도록 놓아주었습니다.” (pp. 101~102.)


(전략) 우리는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가서, 딜런 없이 사는 법을, 딜런이 저지른 일을 알고도 사는 법을 배워나갔다. (p.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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