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김중혁, 문학동네, 2016.)
1. 다음 책이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책이 나오면 가급적 빨리 사서 읽는 작가들이 몇 있다. 그 중 한 명이 김중혁이다. 주제의식에서 무게감이 차고 넘치거나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중혁의 재기 넘치고 통통 튀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덥고 힘들 때, 사는게 짜증날 때, 만사에 지칠 때 읽으면 없던 웃음도 나온다. 이번 책도 읽다 말고 끅끅대며 웃은 것이 여러 번이다. 최근 몇 주 정도 부쩍 일이 많고 여유가 없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 정도는 계속 이럴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책이 더 좋다.
2. 김중혁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단편소설들도 그렇고, 에세이들도 그렇다. (아, 연재 때문인가;;;) 이번 주제는 몸이다. 움직이면 끔찍한 운동치, 박치에 안 움직이면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훈육되지 않은 신체'인 나에겐 좀 낯설다. 그래도 뭐 어때. 김중혁인데.
3. '몸'이라는 단어는 꽤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단순하게는 피와 살로 이뤄진 몸뚱아리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약간 문학적으로는 본능이나 습관 비슷한 것, 그러니까 운전이나 수영 같은 것은 몸이 기억하는 거라서, 한 번 배우면 절대 안 까먹는다고 할 때의 용법으로도 쓰인다. 나는 훈육되지 않은 신체를 가진 사람이니까 굳이 전자의 '몸'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후자의 '몸'에 대해서라면... 낯선 곳에 갔을 때 혹은 시간이 남았을 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느긋하게 책이나 읽으며 노닥거릴 공간을 찾는 것도 몸에 기억된 거라고 할 수 있을랑가. 어디를 가든 가방 속에 읽을 책 한 권 정도 없으면 괜히 마음 불안하고 손 떨리고 그러는 거, 그런게 그나마 내 몸에 기억된 본능일랑가. 제이슨 본처럼 기막힌 킬러 본능이 몸에 배어 있지는 못할 망정 뭐라도 좀 폼나는 본능이 있으면 좋겠는데, 설마 그럴리가, 쩝.
코엔 형제는 내가 이런 농담을 할 걸 미리 예측했던 것인지, 좌와 우를 나누고 무엇이든 구분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농담을 던진다. 우리의 우뇌 사용 찌질이 르윈 데이비스는 진 버키 앞에서 또 잘난 체를 해본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있어. 우선, 이 세상을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과…"
르윈의 말을 끊고 진 버키가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루저?"
르윈은 대꾸하지 못한다.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을 끊임없이 두 종류로 분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진 버키의 말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을 두 종류로 나누는 네가 바로 루저’라는 말 같기도 하다. 세상이 전부 루저투성이다. 원래 나 같은 루저들이 그렇지. 분류하는 걸 좋아하고, 나누는 걸 좋아하고, 정의 내리는 걸 좋아하지. 시간이 무척 많으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데. 나는 르윈 데이비스가 마치지 못한 말이 궁금해죽겠다. 르윈 데이비스의 정답은 무엇이었을까. 이 세상은, 이 세상을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과 또 어떤 사람으로 이뤄져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을 두 종류로 나눈 걸 다시 네 종류로 나누는 사람일까. 그러면 상대방이 그걸 다시 여덟 종류로 나누고, 그걸 또 열여섯 종류로 나누고…… 코엔 형제에게 편지라도 보내볼까보다. (pp. 30~31.)
지금까지 <길버트 그레이프>를 여러 번 보았다. 보니가 경찰서에 가서 ‘내 아들을 내놓으라’고 소리지르는 장면, 길버트가 집을 태우는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이 고인다. 집안에서 불타고 있을 보니 그레이프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보니는 처음부터 그렇게 뚱뚱하진 않았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놀림감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은 없다. 어느 날 남편이 죽었고, 막막했을 것이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마음속에 생겼을 것이다. 보니는 커다란 구멍을 채우기 위해 계속 먹었을 것이다. 나는 보니의 7년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보니의 7년은 내 상상과 다를 것이다. 보니에게는 내가 모르는 다른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하지 않는 것보다는 상상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게 내 입장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는 거겠지.
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이야기보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 이야기 속에 커다란 구멍이 들어 있는 게 좋다. 매력적인 이야기들에는 대체로 커다란 구멍이 들어 있다. 「뚱보」에도 길버트 그레이프에도 커다란 시간의 구멍이 들어 있다. 우리는 구멍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메우고 싶어진다. 메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구멍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해본다. (pp. 40~41.)
<모스트 원티드 맨>의 주인공 군터 바흐만(필립 시모어 호프만)은 한때 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으나 상부 조직에게 이용당하며 작전을 망친 이후 현재는 정보부 소속 비밀조직을 이끌고 있다. 대충 빗어 넘긴 머리카락, 밤송이처럼 까칠까칠한 턱수염, 불룩하게 솟아 있는 배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과 군터 바흐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캐릭터의 설정 때문이었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의 고단한 피로감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바흐만이 자신의 비밀정보원 ‘자말’과 이야기를 나눌 때, 블랙커피를 시킨 다음 거기에다 위스키를 부어 마실 때, 펍에서 술을 마시다 여자를 괴롭히는 녀석을 한 방에 때려눕힐 때조차 그의 몸에서는 이상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문득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막막함과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봤자 내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나를 짓누르고 말 것이라는 무력감이 결합된 총체적 피로였다. 중요한 작전 전날, 그는 위스키를 마시다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옆모습을 보면서, ‘아, 저 배우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피아노 연주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 (pp. 119~120.)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장호연 옮김, 알마, 2012)에는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의 사례가 하나 나온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그에게 라켓을 보여주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물어보았다. 그는 라켓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에서 그의 손에 라켓을 쥐여주자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았다. 그는 멋지게 테니스를 쳤다. 우리의 몸은 인식보다 강력하며, 기억한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닐 수 있으며, 안다고 해서 영원히 기억할 수 없으며, 우리가 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영원히 모르고 죽을 확률이 클 것이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 조르바처럼? 아니, 지르박을 추며. (p. 127.)
상대방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결핍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불필요한 질투가 생겨나고, 결핍을 비난하면서 재능을 애써 무시하려 할 때 무시무시한 편견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결핍이 뒤로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를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의 무언가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아닐까. 천재, 바보, 사이코, 등신, 장애인, 그럼 이름들로 뭔가를 슬쩍 가리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솔직하지 않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닐까. (p. 140.)
농사를 짓고 있는 외갓집에서 일을 도운 적이 있다. 대학에다 휴학계를 낸 후였고, 군에 입대하기 전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설렁설렁 일을 도운 후 용돈이라도 얻어볼 심산이었는데, 시기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외갓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황금빛 벼들이 춤을 추는 논을 바라볼 때만 해도 참 아름답다며 감탄을 했는데, 결국 그 많은 벼들이 나의 적이 될 줄은 몰랐다. 외할아버지께 큰절을 하고 난 후, 잠깐 담소라도 나눌 겸 앉아 있었는데 외삼촌께서는 일옷으로 갈아입히고 나를 논으로 끌어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거였다. 곧 해가 질 테니 어서 외삼촌을 따르라 하셨다. 나는 낫의 사용법을 간단히 익힌 다음 곧장 전투에 투입됐다. 벼들은 많았다. 베어도 베어도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강감찬 장군의 심경이 이러하였을까, 이순신 장군의 피로가 이러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곧 지쳤다. 책상 앞에 앉아서 수년을 보낸 몸이 견디기에, 벼베기는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은 농사일이었다. 첫째 날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졸았고, 소화가 채 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일이 시작됐다. 둘째 날이 되어보니 가장 힘든 것은 벼의 양도 아니요, 끊어질 듯한 허리도 아니요, 배고픔도 아니요, 시간을 알 수 없다는 막막함이었다. 널찍한 논에는 벽시계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시간을 알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허리를 굽히고 벼를 베고 있었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손목시계를 차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했다.
농부들은 하루의 시간을 정확하게 나눌 필요가 없다. (중략) 외갓집의 시간은 1.아침을 먹기 전에 일하는 시간 2.아침을 먹는 시간 3.점심 먹기 전에 일하는 시간 4.점심시간 5.새참을 먹기 전에 일하는 시간 6.새참 시간 7.저녁을 먹기 전에 일하는 시간 8.저녁 시간 9.그리고 그후의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시계도 없이 그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나의 집중력은 50분 수업 후 10분을 쉬었던 학교의 시간에 익숙해져 있었다.
(중략)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훈련병일 때는 시계를 찰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훈련을 받기에 시계도 차지 못하게 하나’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시간을 모른 채 시간을 견디는 훈련을 받은 게 아니었나싶다. 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볼 수 없으면, 현재의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pp. 186~188.)
예전부터 뭔가 짊어지고 걷는 걸 좋아하긴 했다. 술에 취하면 먼길을 걸어서 갔고, 술이 깰 때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배낭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인생 전체가 배낭여행에 가깝지 않나싶다. 군대에 있을 때는 걷는 게 제일 좋았다. 동료들은 행군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그 어떤 일보다 걷는 걸 잘했다. 한번은 함께 걷던 동료가 탈진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의 군장까지 짊어지고 걸은 적도 있다. 걷고 있으면 하염없어서 좋다. 그냥 왼발 다음에 오른발이 나가고, 오른발 다음에 왼발이 나가면 된다. 신기한 일이다. (후략) (p.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