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50호 (역사비평사, 2025.)

Dog君 2025. 4. 30. 07:37

 

  『제국의 후예』와 『박정희와 현대 한국』, 그리고 여러 관련 논문들에서 드러난 그의 전시체제 인식을 종합하면, 총력전 체제는 단순히 '전쟁 수행'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일시적인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는 '총체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이며, 이 체제하에서는 사적 이윤 추구는 제한되고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획일적인 계획과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와 현대 한국』은 전시 총동원 체제의 유산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국가 체제 형성에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통해 심층적으로 작용했는지 탐구하고 있다. 방대한 사료와 심층적인 인터뷰 자료를 분석하여, 만주군관학교 출신 엘리트들을 비롯한 한국 군부가 일젝아점기 전시 총력전 체제를 직접 경험하면서 국가 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내면화하고, 이러한 군사 문화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심화와 발전국가 체제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실증적으로 논증한다. 전시 총동원 체제는 단순히 식민지 시기 특수한 경제 정책 기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총체적 시스템'이자 '지배적 문화 코드'로 작동했다는 논의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식민지 연구의 선도자인 방기중도 식민지 말기 총력전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요한 접점을 보여준다. 두 학자 모두 식민지 시기와 해방 이후를 단절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역사 인식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했다. 두 학자는 총력전 체제가 단순한 전시동원 정책이 아닌, 식민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한다. 홍종욱에 의하면, 방기중은 이러한 총력전 체제의 '식민지적 특질'에 주목했으며 조선총독부의 '관치주의'가 일본 본국의 '혁신 세력'과 상호적 관계를 형성하며 조선인 지식인들과 독특한 식민지 파시즘을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식민지 파시즘은 해방 후 남북한의 국가주의를 부정적 연속론으로 볼 수 있으며 외세 의존적인 극우 민족주의의 기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두 학자의 연구는 식민지 시기를 단순한 '수탈과 억압'의 시기로 규정하고 해방 이후 시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실체를 은폐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결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그 폭력성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면의 기원과 연속성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성과 중층성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자는 논의라고 볼 수 있다. 고인은 이런 연속성을 파시즘이라고 하기보다 군국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했지만, 두 학자의 연구는 이러한 한국사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더 깊은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연속성과 단절의 변증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한다. (마이클김, 「역사적 지속성의 선구자―카터 에커트의 한국 근대사 연구」, 208~2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