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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질문' 메모

Dog君 2011. 9. 30. 12:10
1-1. '88만원 세대'로 촉발된 세대론은 그간 잘 안 풀리던 몇 가지 문제들에 꽤나 참신하게 대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맨날 민족이니 계급이니 떠들던 좌파 진영에도 좀 시사점이 있었단 말이다. 물론 세대론의 맹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좀만 진지하게 따져들면 이 '세대generation'란 말이 유효한 분석의 도구가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젊은 놈들이 뭔가 꼬이고 짜증나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그 나이또래의 애들을 한 통에 싸그리 몰아넣을 순 없거든.

1-2. 생각해보면 반값등록금 때문에 질질 짜는 애들도 중산층 이하의 좀 못 사는 애들이고 좁아터진 정규직 취업문과 대학서열화 때문에 피터지는 애들은 (소위) 'SKY/서성한/중경외시'의 카르텔에 속하지 못한 애들 아닌가. 학벌 카르텔 역시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에 대체로 공감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결국 문제는 다시 '계급'으로 돌아간다.

1-3. 근데 또 따지고 보면 20대의 생활방식은 결코 계급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위치야 계급으로 따지는 것이 옳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부모의 계급이지 자기의 계급은 아니다. 학생은 아직 사회적 생산관계에 편입되지 않은 집단이거든. 그리고 20대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계급이 결정될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살기에 스스로를 계급적으로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대학내 분규에 대학생들이 보이는 냉소의 밑바닥에는 저들 노동계급의 일이 결코 향후 나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거라는 낙관도 꽤나 깔려있다.

우린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한걸까.


2-1. 이들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비정치적'이나 '개인주의적', '정치적 무관심' 등의 수사를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들이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거나 거리로 나가 짱돌을 들지 않는 것은 '무관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기권도 하나의 정치적 의사표현임을 인정해야 한다.

2-2. 그러면 20대의 정치란 무엇인가. 그들 역시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2002년 이후 걸핏하면 촛불들고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아해들을 보라. 2007년을 즈음하여 386들이 이명박과 노무현을 놓고 저 나름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사분오열한 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들도 무엇이 자유이고 무엇이 민주주의의인지 안다.

2-3. 다만 민주주의가 곧 사회적 정의를 담보하거나 나 자신의 문제에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긍정하고 있을 뿐이다. 솔까말 80년대 학번들이 우리더러 그 따위의 수사를 날리며 드러나지 않게 잘난척하는 꼬라지 참 역겹다. 7,80년대에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그 자체로 특권층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길바닥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지다가도 졸업식만 마치면 쉬이 밥먹고 살 수 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쇠파이프를 들어도 먹고 살 수 있던 대학생과 쇠파이프 근처에만 가도 당장 연봉 깎이는 소리가 들리는 대학생을 동등비교하면 좀 마이 곤란타.

2-4. 그네들이 이뤄놓은 민주화라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기성정치에 진입한 386들은 지속적인 꼰대화를 달성해나가던 끝에 결국 그보다 앞선 꼰대들과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았나. 아니,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나 않지, 그게 선진이고 세계화고 민주주의라고 자랑질이다. 그러고선 우리보고는 패기가 없다고, 저항을 모른다고 지랄들이다. 옆구리에 한겨레신문 낑구고 이명박 욕만 하면 그게 민주화세력인가. 친구네 초상집에서 거나하게 취해서 민중가요 부르면 그게 민주주의인가.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그 세상에서 김진숙은 오늘도 85호 크레인에 묶여 있다.

2-5. 기성세대에게 87년은 그 자체로 민주화의 진전이 달성된 어떤 시점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87년 이후는 기성세대란 결국 다 똑같음을 확인해온 시기였다.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속도는 달랐지만 밑바닥 인생들은 계속 뒤로 밀려오지 않았나.

2-6. 우리들이 기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듯 보이는 것은 이제 기존 정치의 내부에서는 마땅한 희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를 보라. 혜성과 같이 등장한 안철수가 단 며칠만에 박근혜를 누르고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확보하였는가. 우리들은 이미 기존 정치의 '바깥'을 찾고 있다.

긍정적이고 열린 자세가 해법은 아니야.


3-1. IMF 이후 사회가 급속도로 개인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나하나의 학생들은 이제 자기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 한가하게 연대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할 시간이 없다. 빠듯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면 잠시라도 알바를 늦출 수 없고 틈틈이 영어공부에 각종 교외활동을 더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이건 당위이자 생존의 문제다. 도덕적 당위성은 어디 개 풀 뜯는 소리던가.

3-2. 물론 원칙적으로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쉽다. 지금과 같은 욕망의 쳇바퀴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라...라든지 뭐 그런 듣기 좋은 말들. 그런 얘기야 누가 못하나.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체제 '바깥'도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지금 당장 대학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봐라. 대학생은 그나마 몇 년 뒤 졸업장이라도 누가 안겨주겠지만 세상은 고졸자에겐 더 박절하다. 최저시급에 시달리다가 노가다판으로나 내몰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3-3. 그 점에서 고대에서 대자보를 썼다던 김예슬인가... 그 사람의 의미도 참 애매하다. 학벌 카르텔의 최정점에 위치한 (게다가 MB 정부 치하에서!) 고려대생이 누가 봐도 간지 좔좔 흐르는 수려한 문장으로 멋지게 학교를 박차고 나갔다!... 고대생이 그러니까 멋진데 문장도 그다지 수려하지 않은 지방대생이 그래도 여전히 멋질라나.

3-4. 결국 다소 비관적으로 소결론을 내리자면 지금 이 꼬라지가 꼰대들 눈에 안 좋게 보이는거 아는데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우리도 안 좋은건 마찬가지거든요. (아, 이쯤에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좀 틀어주세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이걸 누가 한칼에 대안을 내 줄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라는거. 그냥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는거니까 거기다 대고 자꾸 훈계 좀 하지 마삼.

4-1. (1-3.에서 계속) 굳이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 그럼 결국 다시 문제는 '계급'으로 돌아간다. 결국은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거니까. 자, 그러면 다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 들고 꽃병 던지면 되는건가.

4-2. 하지만 아니다. 체제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냥 끝이다. 저항이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끝이다. 최저시급에 시달리다가 가정파탄나고 영양실조에 허덕이다가 "먹다 남은 김치라도 좀..."하다가 스러질지도 모른다. 돈의 힘에 휘둘린다고? 웃기지 마라. 솔까말 돈 없으면 할 수 있는게 없잖아.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회적 관계, 공동체 어쩌고 나발들도 결국 다 돈 아닌가. 작금의 배금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그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자유가 없는거 아닌가. 우리보고 멀쩡히 앉은 자리에서 세상을 초월한 득도승이 되란건가.

4-3.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를 계급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자가 되건 말건 적어도 학생인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노동자계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러지를 않냐고 당위적으로 묻지 마라. 그냥 싫은거다. 이 시대 노동자계급이 처한 딱한 현실을 보고도 노동자계급이 되라고 누가 그리 쉽게 말할 수 있지?

나꼼수의 성공. 나는 여기에서 뭔가 배워야 한다고 봐.


5-1. 질문의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치'란 어떤 의미인지, 꼰대 말고 우리의 시선에서, 우리의 입으로 물어야 한다. 꼰대들이 생각하는 '정치'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나 '민주주의'의 최저한계선이 무언지 물어야 한다.

5-2.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리들도 결코 우리의 이해관계에 둔감하지 않다. 다만 그 전선이 매우 개인적인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을 뿐. 이걸 억지로 사회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봐야 남는 것은 개인의 희생이다.

5-3. 여기까지 쓰고 이제 점심시간이니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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