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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돌베개, 20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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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돌베개, 2010.)

Dog君 2012. 1. 18. 10:44


1.
제자로서 지도교수님의 책에 대해 이러저러 말하는건 좀 주제넘은 일인 것 같지만 책의 주제가 지금도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인지라 그냥 넘어갈래야 넘어갈 수가 엄따. 뭐... 어마어마한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이니 눈에도 잘 안 띄는 이런 서평 하나 쓴다고 선생님께 덜커덕 걸릴 것 같지도 않고... ㅋ

2. 보통사람들이 어쩌고 학살이 어쩌고 일상이 어쩌고 하는 글을 읽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관점은 둘이다. 전지적 연구자 시점과 일인칭 동네사람 시점이라고 말하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어서 무슨 뜻인지는 아니까 이 정도 표현으로 타협짓고 넘어가자면.

3-1. 역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응당 전지적 연구자 시점을 택해야 하는데 그 내용과 결론은 사람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는 국가권력의 횡포로부터 시작해서 이승만 정권 나쁜 놈이고 김일성 정권도 거기서 거기고 뭐 대충 이런 이야기 된다.

3-2. 그러고보면 한국전쟁은 정말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좋은 쪽으로 기가 막혔으면 참말로 좋았겠지만 한국전쟁의 타이밍은 정말 말 그대로 기氣가 막혀서 주화입마에 빠져 졸라 내상입고 무림계에서 완전 퇴출될 정도의 타이밍이었지. 정권 입장에서 보자면 공식적으로 정권이 수립된지 2년이 채 안 된 때라 남북 정권의 내부 장악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아랫것들 충성심도 확인할겸 부족한 물리력도 보완하는 꼼수를 찾다찾다 보니 그게 결과적으로는 대량학살극으로까지 내달렸고, 아랫것들 입장에서는 식민지의 상흔에 토지를 둘러싼 갈등에 종교, 집안, 신분 등등등등등등의 갈등까지, 그야말로 누가 나쁜 맘 먹고 심지만 확 땡기면 빵빵빵 터질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던게 1950년 6월의 한국사회였단게지.

3-3. 한국전쟁은 전쟁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의미도 졸라게 컸다... 그리고 졸라 복잡했다... 그래서 연구하기도 졸라 복잡하다... 뭐 이런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4-1. 그리고 일인칭 동네사람 시점. 대중들이 이런 책을 읽을 때는 백방 이런 시점을 택한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게 쬐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악의 평범성'이니 하는 알다가도 모를 단어가 계속 강조되는건 다른 뜻이 아니고 이게 바로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거. 학살의 배후에는 권력도 있고 정부도 있지만 결국 사람 죽이고 살리는거 다 우리 손에서 이뤄지는 일 아니겠니. 내가 졸라 높은 군대 간부가 아니라면, 당신이 그 때 그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뭐 이런 인생극장 비슷한 질문을 던져야 되는거 아닐까.

4-2. 그런 점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최악의 학살을 모면했던 몇몇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사람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던 갈등을 원초적인 폭력과 정확히 1:1로 환산되는 응보적 복수로 풀어낸 마을은 어김없이 대학살극이 벌어졌고 종전후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까지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한 반면 끈끈한 공동체적 결속을 유지하면서 갈등요소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거나 일방의 폭력에 대해 용서함으로써 폭력의 고리를 중간에 끊어낸 마을은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음 뭐 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런거.

4-3. 근데 이런거 진짜 남 얘기 아니다. 요새 한창 학교폭력 얘기로 시끄러운데 사람 하나 매장하고 죽이고 때리고 따돌리는거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아니냐. 꼭 뭐 죽창으로 배 찔러서 창자가 나와야만 폭력이라고 부르는게 아니거등? 아니 백번 양보해서 솔까말 책과 같은 학살상황이 동아시아의 화약고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서 다시 나오지 말란 법도 없잖아?

5-1.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있었던 학살극의 양상은 그 마을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상황, 즉 공동체적인 결속력이나 명망가의 여부, 집안 혹은 계급간 역관계 등에 의해 결정되었다. 국가권력의 개입이나 이데올로기의 측면도 있기는 했지만 그러한 외부적 자극이 구체적인 상황까지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외부적 자극에 의해 추동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반응에 따라 구체적 리얼리티는 달라지는 거.

5-2. 좀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구체적인 사람 하나하나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명망가나 문중의 향배에 따라 그 동향이 결정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전히 전근대적인 향촌질서가 한국전쟁 당시까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개별적인 행위자로서의 개인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3. (책에서는 거기까지 나가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계속 밀고나가면 식민지 근대화론이니 식민지 근대성론이니 하는 식의, 식민지시기에 한국사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근대'를 경험했다는 논의에 대한 반대논리로도 연결이 가능해진다. 이는 저자가 평소 식민지의 근대에 대해 '이중사회론'을 제기한 것과도 맥이 닿는다.

6-1. (4-3.에서 계속)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우리다. 권력의 부당성이나 폭력성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건 맞는데 개뿔도 없는 우리가 자꾸 근본적인 이야기만 해서 뭐해. 그러면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고 그냥 면피되는겨? 우리는 가만 앉아서 슈퍼맨이 날아와서 부도덕한 국가권력을 타도해주고 우리는 불의로부터 구해서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만 기다려야 되는겨? 그건 전지적 연구자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얘기고 우리처럼 일인청 동네사람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지.

이런 애가 어디서 쓩 날아와서 우리를 보호해주는게 아니란 말여.


6-2. 야만의 시대에 인간성을 지키는 것. 좀 구체적으로 번역하자면 폭력의 사슬을 요구받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끊어내는 것. 네오가 어디서 날아오는게 아니다. 빨간약과 파란약 앞에서 빨간약을 고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네오가 된다.

이런 때가 언젠가는 올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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