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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그 이후 (권헌익, 아카이브, 2012.) 메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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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그 이후 (권헌익, 아카이브, 2012.) 메모

Dog君 2012. 10. 22. 07:56



0. 태티서 프로젝트를 위해 선정된 책. 특별히 책에 대해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끝내 서평을 쓰지 못해서 마음 속에 내내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자꾸 찝찝하게 남겨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서평이라기보다는 머리 속에 돌아다니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만 메모처럼 살짝 정리해둘란다. (아마 '독도 1947'도 이런 식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1-1. 나는 '학살, 그 이후'라는 제목을 처음 듣고 이 사진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



1-2. 나는 이 사진의 핵심은 학살의 참혹함이나 그것을 초래한 반공주의나 혹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시신을 살펴보고 있는 저 아낙들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죽고 얼마나 죽였든간에 저 아낙들의 삶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이어졌을) 것이다. 학살이 남긴 상처와 망자들의 빈 자리를 그대로 그러안은 채, 어쨌거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 학살 그 이후의 시간은 '죽은 자'와 '죽인 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다.


1-3. 오른쪽 두번째 아낙이 손을 모으고 있는 것이, 저 순간 예수님이나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기 위함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새벽녘에 우물에서 떠 온 물 한 사발을 장독 위에 두고 연신 손바닥을 비벼댔던 지난 수백년간의 관습을 통해 체득된, 아마도 매우 반사적인 행동일 것이다.


2-1. 학살을 대하는 베트남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관한 그들의 세계관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세계관'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실은 한국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전에 어디서 그랬던거 같은데 한국과 베트남은 알고 보면 문화적으로 꽤나 유사하다. 그래서 간단히 한국, 아니 동양인의 죽음관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2-2. 동양인에게 세계란 기氣의 거대한 흐름으로 정의된다. 처음 세계가 생겨날 때도 그 기氣들이 무질서하게 뒤죽박죽되어 걸쭉한 어떤 덩어리로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적) 무겁고 탁한 것이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고, (비교적) 가볍고 맑은 것이 위로 떠올라 하늘이 되었다는 식이다. 따라서 무형無形의 에너지는 물론이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모든 물질세계 역시 기氣의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다.


2-3. '혼백魂魄'이라는 말은, 요즘은 흔히 그냥 영혼을 일컫는 말로 쓰이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혼魂'이 지칭하는 것에 가깝고, '백魄'이라는 말은 우리의 물리적인 신체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동양인에게 가장 이상적인(일반적인) 죽음이란 시간에 따라 '백'과 '혼'이 함께 쇠해가다가, 결국 '백'이 제 수명을 다하면 '혼' 역시 자연스럽게 '백'에서 떨어져 나와 거대한 기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급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그러지 못하고 갑자기 '백'만 사라져버릴 경우 문제가 생긴다.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에 의해 '백'을 상실한 '혼'은, 자연스럽게 흩어지지 못하고 각종 문제를 낳는다.


2-4.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학살 때문에 한 마을에서만 수십 수백의 '백'이 한꺼번에 증발한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그 과정은 각기 개별 가정에서의 한풀이 의례라든지 이들을 국가적 추모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의례 등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례의 형식을 둘러싸고 몇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이들에 대한 추모가 갖는 정치적 함의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3. 10여년전부터 남한에서도 한국전쟁 시기 학살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국가적 추모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작업이 그와 함께 진행되었다. 우리의 '학살 그 이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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