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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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事나부랭이

생일 감사합니다.

Dog君 2008. 5. 22. 19:14
1-1. 가끔 농담 반 섞어서 하는 말 중 하나가 "나는 가장 종교적인 비종교인"이라는 말이다. 나는 분명히 유신론자이며 신이 가지는 절대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신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신이 정해놓은 운명을 따라 사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종교적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적인 것 같다'다. 진짜 마음으로 신을 접하는 사람들이 계신데 이딴거 갖고 종교적 운운하면 욕먹지.)

1-2. 그런데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왜 신이 인간에게 '의지'를 주었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불완전한 인간 놈들이 이 놈의 '의지'라는걸 제대로 쓸리가 없다는 거 신이 모를리가 없는데.

1-3. 나는 신이 우리를 믿으리라고 믿는다. 맨날 사고만 치고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없는 결점투성이들이 어떻게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나름대로 빨빨거리며 사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서 쳐다볼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비종교인이다.

1-4. 그래서 나는 '사람'에 의지한다. 사람 때문에 아프고, 사람 때문에 슬프지만, 또 사람 때문에 기쁘기 때문.

2. 시덥잖은 스물 일곱의 양력생일이 끝났다. 이제는 생일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도 어쩐지 부끄럽고, 내 몸 하나 건사할 처지 못 되는데 나이만 먹어가는 것도 자랑 아닌 것 같아 나도 애써 잊고 있었는데 옆 사람들이 먼저 기억해주고 먼저 축하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기쁨을 축하해주지 못했는데도.

[Dog君, 2008.]


3-1.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랑과 마음과 물질을 받았다.

3-2. 늘 싱거운 농담이나 건네다가 술이라도 취할라치면 주정이나 부려대는 선배이자 친구인데, 제 생일은 무엇 하나 챙겨준 것도 없는데, 무엇이 그리 감사하다는 것인지 책 한권에 편지까지 써준다. 그렇게 취하고서도 그래도 선배 생일이라고 말없이(하지만 핸드폰이 말을 하더라) 술집을 나가 케잌을 사온다. 돈 없는 거 뻔히 아는데 케잌 사다놓고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에는 생일 축하 노래만 서른개 넘게 리스트에 채워주더라. 밥이나 두어끼 사줬을 뿐인데 피자를 사다 먹인다. 늘상 내가 늘어놓는건 푸념 뿐인데, 자기 일만으로도 정신없을텐데 생일 전날 제일 먼저 케잌을 사다가 내 앞에 놓아준다.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던 사람들이 나 몰래 편지에 케잌까지 준비해 준다. 해주는 것 없이, 호기롭게 술값 치뤄주는 일도 없는 말만 앞서는 선배임에 분명한데 커다란 대자보에 자기들 이야기들을 한가득 채워다 전해준다. 심술궂은 장난에 농담 따먹기나 하던 선배의 생일 잊지 않고 문자 꼬박꼬박 보내준다. 그리고 내 멍청한 머리 때문에 깜빡하고 이야기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들까지.

4-1. 감사합니다. 정말로 마음이 편했던 생일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4-2. 어찌나 좋았던지 어젯밤엔 잠깐 눈물이 좀 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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