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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강신주, 사계절, 20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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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강신주, 사계절, 2011.)

Dog君 2012. 5. 4. 22:53



1-1. 2012년 5월 현재 나의 꿈은 '인기폭발시간강사'이다. 생긴 것도 별로고 개그도 별로고 화법도 별로인 내가 꾸는 꿈 치고는 다소 무모해보인다고 주위에서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꼭 '인기폭발시간강사'가 되고 싶다. 이 '인기폭발시간강사'라는 말에는, 내가 선택한 이 학문이 사람들의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다는 내 오랜 확신이 전제로 깔려있다. 나는 역사학이 단순한 호고주의적 씹덕씹덕취미의 소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얼마든지 역사학이 유쾌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2.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고민에 해답을 주기 위해 자기 전공을 사용하는 몇몇 사람들이 '인기폭발시간강사'의 롤모델이다. 강신주가 그 중 하나이다.


2. 강신주는 세상에 대한 고민, 세상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을 꺼내든다. 강신주의 철학은 있는 그대로의 '지난 사람들의 사유의 흔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유용한 근거이다.


  그들의 울분과 분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만큼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얼마만큼 타인에게 기쁨과 힘이 될 수도 있는지 잘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제자백가가 제안한 다양한 길을 새롭게 숙고하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후손들 역시 타인의 사랑과 배려를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상처의 가능성이 줄어든 사회를 선사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오류로 점철된 사회를 그대로 대물림할 것인가? (p.9)


  제자백가의 텍스트들을 읽기 시작한지 어느새 20여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한편으로 울분을 터뜨리고, 한편으로 경탄하고, 한편으로 파안대소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제자백가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리라 다짐했던 젊은 시절의 치기만만한 모습도 떠오른다. 그때 나는 제자백가의 사상이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기도한 결과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p.15)


3-1. 서울에서 제일 비싼 한식뷔페 마냥 정신없이 펼쳐진 제자백가의 사상을 더듬기 위해 강신주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돌아가는 길이다. 제자백가의 텍스트에 곧장 뛰어들기보다는 그 텍스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에 먼저 주목한다. 제자백가라는 꽃밭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꽃들을 낳은 토질을 모르고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출발한 통시적 추적은 주나라를 거쳐 춘추전국시대에 이른다.


3-2. 맥락이라는 것이 단지 통시적 이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시 주역과 춘추, 시경을 통해 당대 중국인의 멘탈리티에 접근하여 공시적 이해도 동시에 찾는다. 사상도 결국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네들의 심성을 모르고서 어떻게 제자백가를 이해하랴.


3-3. 이 과정들이 너무 통으로 성큼성큼 썰어낸 것은 아닌가 싶지만 대중서라는걸 생각하면 송곳같은 날카로운 논증이나 세밀한 분석이 중요한 것은 아닐테다. 이런 책에서까지 학문적 엄밀성을 따지고 있는건 전형적인 먹물의 속성이다.


4. 두번째 길은 계보학적 길이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분류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처음부터 그러하지도, 고정되어 내려온 것도 아닌 것이다. 강신주는 그 점을 파고든다. 제자백가를 분류하고 그들을 정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더듬어간다. 이런게 푸코가 말한 '계보학'이란건가.


  맹자와 순자를 유가로 묶어서 다룬다고 해서, 우리가 맹자와 순자의 속내를 좀 더 잘 이해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제자백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한가지 경우만이 남는다. 가급적 제자백가 모두를 고유명사에 입각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p.280)


5. 놀랍게도 책은 여기에서 끝난다. 아니 놀라지는 마시라. 12권으로 기획된 '제자백가의 귀환'의 1권이니 이런건 당연하다. 그러니 이 책은 거대한 대하소설의 프롤로그 쯤에 해당하는 셈이다. (서두에서부터 난 12권을 쓸거야!하고 호언장담하는데 좀 불안해보이긴 한다. ㅎㅎㅎ) 책 1권을 다 소모해서 해자를 모두 메웠으니 이제는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2권을 읽을 차례다.


6. 인상적인 구절 몇 개만 메모.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부국강병의 논리는 언젠가 가장 부유하고 동시에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국가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지만 전대미문의 강력한 통일국가는 인간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아니면 불행을 가져다줄 것인가? 당시 사람들은 이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이질적인 두 가지 역사철학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앙의 역사철학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앙은 전국시대의 혼란을 강력한 절대 국가의 부재에서 찾으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패권을 다투는 국가들이나 혹은 패권을 잡은 유일한 절대 국가나 모두 배타적인 소유욕과 지배욕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애초에 인간관계에서 배타적인 소유욕이나 지배욕을 억제할 수만 있었다면, 서로 불신하며 전쟁을 통해 상대 국가를 소유하려는 다양한 국가들이나 혹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국민들을 감시하는 유일한 절대 국가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을 하나 던질 필요가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일고의 가치도 없이 우리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라고. 이것은 우리가 인문정신과 자유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름하는 사활을 건 문제다. 어쨌든 다양한 사상을 피력했던 제자백가는 상앙의 역사철학과 도척의 역사철학이 열어놓은 자장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도척의 역사철학에 끌리고 있는 사유의 편린들을 끌어 모아야만 한다. 전국시대 이후 펼쳐진 대제국의 시대에서 억압받고 은폐되었던 인간의 자유를 노래하는 사유를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pp.106~107)


  언제든지 강자가 협정을 파기할 수 있으리라는 두려움은 흠미롭게도 약자로 하여금 협정에 더 몰입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상대방이 지키지 않는다면 자신만이라도 더 확고하게 지켜야 협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착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약자는 협정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협정에 입각하여 검열하는 데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아무리 공정한 협정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결국 약자는 강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의 약자들이 모이면 강자도 위기에 빠질 수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자는 약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약자들이 늘었을 때, 그래서 더 이상 약자들의 연대가 불가능해졌을 때, 강자는 패자로서 군림하게 된다. (pp.161~162)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 먹지 마라.

  삼 년 너를 섬겼건만 날 아니 돌보는가.

  이제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땅[樂土]으로 가련다.

  즐거운 땅, 즐거운 땅, 거기 가면 내 편히 살리라.

-『시경』「위풍·석서」


  많은 사상가들이 민중의 중요성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중의 삶 자체를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민중을 효과적으로 조직해서 국가권력에 귀속시킬 수 있을지만을 고민했다. 어쩌면 이것이 제자백가라고 하는 중국 고대 사상가들의 근본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춘추전국시대 내내 지속되던 전쟁과 혼란에 신물이 난 나머지, 당시 지식인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올 통일 제국만을 모색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롭게 대두할 통일제국이 민중의 삶을 이전보다 더 큰 질곡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음을 간과해버리고 만 것이다. (p. 210)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지기 마련이다."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論語』「顔淵」.)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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