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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 (쳔꽝싱 외 5인, 창비, 200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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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 (쳔꽝싱 외 5인, 창비, 2003.)

Dog君 2012. 3. 15. 16:52

1-1. (누구나 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지적 편식이 심한 편인데 폐쇄적인 한국사학계의 전통이 내 몸에도 아로새겨진 때문이 아닌가 싶긴 하다. 특히 아시아쪽 서적을 거의 안 읽어왔는데 아마도 일본어와 중국어를 못하는게 좀 크지 않나... 마 그리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간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L선배의 집요한 아시아 이야기 때문인데 그래봐야 그것도 그 선배가 인터넷 언론에 기고하는 글이나 가끔 읽으면서 관심을 쪼끔씩 키워온 정도.


1-2.
어떻게 하다가 단재 신채호 전집을 공짜로 얻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채호를 참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찌어찌하다가 근대문학을 전공하시는 한 선생님께 그냥 넘겨버렸다. 내가 암만 신채호를 좋아한들 눈 앞에 닥친 공부만 하기 급급한 처지인지라 한 10년 내에 이 책을 절실히 필요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감사의 표시로 이 책들을 주셨다.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 전부는 아니고 쑨꺼의 책 한 권이 빠진 다섯 권.

2.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을 굳이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묶는다면 그들의 역사적 공통점은 '제3세계'라는 것에 있다. 지성계에서 놀 때 얘네들 입장에서 억울한 것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제3세계니 변방이니 하는건 지리적인 실정성이 아니라 과연 그네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가졌냐 못 가졌냐로 판가름나는 일일테다. 맨날 남이 만들어준 언어를 가지고 말을 해야 하니 표현은 잘 안 되는데 그렇다고 그 말을 안 쓰자니 아주 말을 못하게 되는 이 지랄맞은 상황. 서구의 언어는 언제나 부적절하지만 불가피inadequate and indispensable하잖아. 그런 점에서 변방의 눈으로 변방으로 보는 이런 책, 이런 글 하나하나가 참 중요하고 소중하고 가치있고... 머 글타.

3. 다들 관심이 워낙 제각각이라 많은 내용들을 하나로 일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그렇다고 각각 쪼개서 정리하자니 내 머리 속에 남은 내용이 많지가 않다. 내가 아시아에 대해 뭐 제대로 아는게 있어야 읽으면서 무릎도 탁 치면서 감탄을 할텐데 맥락도 모르고 활자만 읽어대니 한 5%나 머리에 남았나;;; 그냥 읽다가 든 생각들의 단편들이나 정리해봐야 쓰것다.

4. 쳔꽝싱의 글, 문화연구 관한 글은 진짜 더럽게 어렵더라. 문화연구에서 하는 이야기들 자체가 더럽게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걸 다시 아시아사람이 소화해서 다시 쓰는 글이니 더 어렵지. 이 글은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글로 체크해 두었다.


5-1. 이 책이 나온 것이 2003년이고 여기에 실린 개별논문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추이즈위안의 글은 보는 내내 '이 사람 완전 멍석 깔았네' 싶었다. 그가 글에서 경고하고 있는 몇몇 문제들이 바로 며칠(몇주도 아니고!) 전에 시사주간지에서 읽었던 내용들과 놀랍게도 겹친다. 뭐지 이 맹하게 생긴 아저씨가 보여주는 놀라운 예지력이지? 미아리에 철학관 하나 내시거나 하다 못해 서울역 앞에 멍석이라고 깔아보시길 강력하게 권한다.


5-2. 현대 중국이 직면한 블라블라한 문제들에 대해 과거 마오주의의 경험에서 유의미한 유산을 끌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흥미가 많이 간다. 마오주의에 동의하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마오주의가 갖는 객관적인 의의를 모르는건 또 아니지. (원래대로면 자본주의가 익을대로 익어서 석류처럼 쩌적하고 벌어지면 거기 맞춰서 사회주의 해방세상이 짠~하고 나와줘야 되는건데 이거 뭐 제대로 안 익은 것도 아니고 완전 자본주의 쪼렙뉴비풋사과 중국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버렸으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였겠냐고) 그래서 구체적으로 마오주의의 어떤 측면이 지금 우리에게 유의미한걸까 하는 의문을 품고 책을 봤는데 책장을 다 덮는 순간까지 그게 잘 안 와닿더라고. 아니 뭐 이야기를 아주 안 해준건 아닌데 그마저도 중국 특유의 맥락에만 들어맞는 이야기라서 내가 보자니 이해도 잘 안되고 그걸 일반화시켜서 다른데 적용시키기도 좀 뭐하고... 쫌 글타. 나중에 시간되면 마오주의 일반이나 문화혁명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고 메모.


6. 사카이 나오키에 대해서는 꽤나 친숙하기도 하고 그 양반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한 120% 정도 적극 공감한다만은 좀 짜증나는게 없는건 아니다. 대형상화(co-figuration, 이 말이 번역하기 참 고약한 놈이라서 역서마다 번역이 다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對形象化가 그나마 제일 낫지 않나 싶다) 이야기 할 때 양쪽을 서구(The West)와 나머지(The Rest)로 나누시는데 이게 내 눈에는 좀 마뜩찮다. 무슨 맥락에서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머지(The Rest)로 불리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거 쫌 불쾌하다 이거지. '나머지'라는건 영원히 '서구'가 호명된 이후에 그 다음에 남는 좆밥들만 모아놓은거잖아. 뭔가 예전에 '제3세계'라고 불렸을 때의 그런 불쾌함 같은게 느껴진다 이거지. 물론 뭐 좆밥이 좆밥인건 맞는데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대놓고 '나머지'라고 해버리면 '서구'를 전제하지 않고는 우리는 존재하지조차 못하는거잖아. 좆밥들의 주체성이니 행위성이니 경험이니 언어니 하는걸 사고하기 위해서는 나머지를 '나머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하다 못해 '좆밥'으로라도) 불러주는게 필요치 않을까용.


7. 야마무로 신이치에 대해서는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을 쓴 사람 정도로만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알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글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재밌다! 근대 동아시아의 국민국가 형성과정에 대해 제시한 그 모델, 잊지 않겠어요. 나중에 그런 모델을 가지고 다른 책을 읽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마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8. 한국현대사가 전공이라고 하지만 역사를 국경선 안으로 가두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또 없다.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만드는 책들이었음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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