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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마음산책, 20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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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마음산책, 2013.)

Dog君 2013. 12. 28. 12:22



1. 김중혁을 읽고 있으면, 김중혁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것 같다. 속에는 엄청난 개그, 똘끼, 유머, 위트 등등등등을 숨기고 있지만, 아주 엄청 굉장히 친한 사람 아니면 그런 것들 절대 안 보여주는 사람.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끊임 없이 머리 속에서 문장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


2. 평소에는 그것들을 속에 차곡차곡 쌓아뒀을 것이다. 생각나는대로 입에서 풀풀 풀어버렸으면 이런 문장 안 나올거라 확신한다.


3. 그나저나 머리말부터 날 사로잡는 책은 또 처음일세. 그의 첫 소설집을 읽었을 때 받았던 놀라움과 재미가 또 오랜만이다. 오예. 내가 이러니까 혁블리를 좋아하는겨.


  (전략) 노래에 대한 글은, 쓰면 쓸수록 난감하다.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멜로디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비트를, 글로 써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이어서 좋기도 했다. 아무리 가닿으려 해도 멀어지는 목적지여서 좋았다. 노래에 대해서 묘사하고 설명하고 부연해도, 노래는 점점 멀리 달아난다. 멜로디는 더 높이 날아오르고, 비트는 더 세게 가슴을 두드린다. 노래는 글을 사뿐히 밟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여기에 모은 글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 글을 읽고 나면 갈증이 더 심해져서 노래를 찾아 듣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을 읽다가 갑자기 일어나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이 형편없어서 차라리 노래를 듣는 편이 낫겠네.' 그런 마음이 들어도 좋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글이 노래와 연결되면 좋겠다. (pp. 6~7.)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물러받은 걸 또 하나 발견했다. 어머니는 요즘 취미 삼아 노래 교실에 다니는데, 무척 즐거우신 모양이다. 전화를 드리면 이번 주에는 어떤 노래를 배웠는지 알려주신다. 지난 명절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노래를 넣어드리다가 어떤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여쭈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류계영(몰라요), 박진석(박진영과 양현석을 합한 이름인가요), 강진(지역이 아니라 가수 이름인 거죠?), 그 후에도 모르는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현철이나 송대관이나 태진아는 안 좋아해요?" "난 별로야." 어머니가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이런 트로트 인디 정신을 보았나. 나의 인디 음악 사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로군. 물론 류계영이나 박진석, 강진 같은 트로트 가수들은 어머니 친구들 사이에선 아이돌과 맞먹는 인기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인디 뮤지션 같은 느낌이다. (pp. 23~24.)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 때면 대낮부터 평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아저씨들이 늘 있었다. 길죽한 병맥주를 여러 병 세워두고 오징어나 쥐포 같은 마른안주를 곁들인 다음, 동네의 날씨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술맛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 시절의 풍경이 그리울 때면 가끔 동네 친구와 낮술을 마시곤 한다. 우리도 이젠 제법 나이가 들어서 풍경의 실루엣이 얼추 비슷하다. (pp. 75~76.)


  (전략) 이를테면 장미여관의 <봉숙이> 같은 노래. 크크크, 생각만 해도, <봉숙이>의 가사만 생각해도 웃음이 터진다. ("데낄라 시키돌라 케서 시키났드만 집에 간다 카는" 봉숙이를 향해) "못 드간다 / 못 간단 말이다 / 묵고 가든지 / 니가 내고 가든지"라고 부드럽게 외치는, 그 와중에 술값 생각하는 이 남자들이 얼마나 솔직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그래, 봉숙아, 네가 좀 너무했다! 마, 사과해라!

  <봉숙이>가 재미있게 들리는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 때문이다. (중략) 사투리와 노래와 유머를 잘 버무린 강산에의 노래 <와그라노>에 이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p. 80.)


  텔레비전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언제부터 가사를 보여주기 시작했을까. 자막처럼 가사를 보여주는 건 반대지만(전 음악도 못 듣고 춤도 못 보고, 자꾸 그걸 읽고 있단 말예요! 음악을 자막으로 배운단 말예요!) 아이돌 그룹들의 현란한 노래와 랩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가사의 내용이 어찌나 '아스트랄'하고 괴이하고 직설적인지, 자막 읽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노래와 퍼포먼스와 가사의 불일치 때문에 배꼽을 잡는 경우도 많다. 걸 그룹들의 노래는 대부분 '너는 정말 나쁜 남자다'라거나 (그래서) '남자와 곧 헤어질 예정'이거나 (아니다) '내가 오히려 나쁜 여자다'라거나 (이럴 바엔) '다 싫어, 전부 꺼저버려'(라며 '멘붕'의 극단을 보여주는) 가사들이 많은데, 이토록 가사는 슬프고 비트는 살벌하게 빠르고, 춤은 몸살나게 아크로바틱한 이유에는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빠른 음악 속에서 너의 몸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 이겨내도록 하여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걸 그룹들의 무대가 슬프다. (pp. 89~90.)


  스무 살 때는 '이해'를 믿지 않았다. 누가 누군가를 이해했다는 말,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는 말,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모두 거짓이라 생각했다. 모든 관계가 가식적으로 보였고, 사람들의 모든 웃음은 비웃음처럼 들렸고, 사람들이 드러내는 슬픔은 과도해 보였다. 그 시절엔 음악도 헤비메탈이나 우울한 포크록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헤비메탈 음악의 인기가 높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나 사이에 음악 벽을 만들기엔 그보다 좋은 음악이 없었다. (중략)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이해를 믿지는 않는다. (중략) 사십 대의 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pp. 93~94.)


  기타를 잘 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공연장에 올라갈 만큼 잘 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기타라는 악기가 좋고, 기타를 치고 있을 때의 기분이 좋고, 코드를 정확하게 짚었을 때 나는 화음이 좋을 뿐이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기타를 연주한다.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손가락 끝에 집중하면서 연주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만다. 최근 기타와 관련한 이상한 증상이 하나 생겼다.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하면 졸린 것이다. (중략) 아, 나무 그림을 그려서 새가 날아오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연주한 기타에 잠이 들어버리는 악공이라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pp. 104~105.)


  공연 때문에 랍티미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 내 머릿속에는 한 번 시작되어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되어버린 수많은 상상들이 날뛰고 있었다. 일단 만나면 욕 한두 마디 뱉는 걸로 인사를 대신 하고, 대화 중간중간에는 '디스'가 듬뿍 담긴 말씀도 해주시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이런 젠장, 이런 거 난 못해, yo"라면서 나가버리는(도대체 뭘 상상하는 거니?)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는데, 카페에 도착했더니 아직 래퍼들이 오지 않은 관계로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벌써 열 받아서 거버린 거 아냐)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예비군 훈련 때문에 좀 늦는대요."

  예비군 훈련? 아, 래퍼들도 예비군 훈련을 받는구나. (중략) 하긴,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는 건 군대를 다녀왔다는 건데, 래퍼들도 군대에 가긴 가야겠지. 나의 선입관과 한국의 현실이 충돌하면서(래퍼들이 인사계나 주임상사에게 욕을 섞어 인사하고, 소대장에게 디스하는 군대 장면은 도저히 상상 못하겠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후략) (pp. 118~119.)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계절이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이 노래를 선곡하다니, 배짱 있는 피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면 승부가 아닌가. 다음 노래가 나오는 순간, 차 안에 있는 모두가 탄식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여봐란듯이, 이럴 줄 알지 않았냐며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늦은 밤 차 안에서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프로듀서와 작가가 동일 인물이 아닐까, 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다음으로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맞히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시작됐다. '아 정말, 이러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야, 이러다가 이승환 노래도 나오겠다"라고 누가 말했고,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듯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 나왔다. 이것은 정말 비정상적인 라인업이다. 야구로 치자면 1번 김태균, 2번 이대호, 3번 이만수, 4번 이승엽, 5번 베이브 루스를 줄줄이 배치해놓은 격인데, 번트는 누가 대고 도루는 누가 하나. (p. 154.)


  김현식의 6집 앨범이 발매된 것은 1991년 1월이었고, 1991년 1월에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휴학한 상태였고, 매일 술에 절여지고 있었고, 심지어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정상인 게 오히려 비정상인 시기였다. 그 무렵의 나는 겉멋이 잔뜩 들어서 (겉이라도 멋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고)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정신으로 그러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시기. (pp. 163~164.)


  누구에게나 삶의 경계선이 되는 해, 평생 잊지 못하는 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기분으로 보내는 해가 있다. 윤제와 시원이에게는 그게 1997년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는 1989년이었다. 1989년이라고 하니 벌써 아득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의 순간, 대학에 들어가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선배들을 쫓아다녔던 순간, 나라는 어수선하고 내 마음도 어수선했던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데 누굴 사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순간, 문득 내가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던 순간,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면 스스로가 아이처럼 느껴졌던 순간, 그 모든 시간들이 1989년에 있었다. 그해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이 한 해 동안 일어난 걸까 싶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7>을 보면서 마음이 짠한 것도 윤제와 시원이가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과거의 우리가 응답할 수 있다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1989년에 나가 있는 20세 김중혁 통식원, 응답하세요." "네, 잘 들립니다. 43세 김중혁씨, 2013년에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나요?" "음, 음, 뭐랄까, 그러니까......" "별로인가 보네요." "아니에요. 제법 잘 늙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거긴 어때요? 스무 살, 힘들죠?" "여기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우리 힘내요." "그래요." (pp. 206~207.)


  고등학교 때 본 들국화 공연은 요즘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장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서울에서 열린 들국화 공연은 분위기가 달랐을까- 모두들 좌석에 앉아서 사이좋게 박수를 치던 장면을 떠올리면 건실한 종교 집단의 부흥회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로 들국화의 노래를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전인권이 아무리 "행진"이라고 외쳐도 우리는 의자에다 엉덩이를 딱 붙인 채로 박수 치며 따라 부르기만 했던 것이다. (pp.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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