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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 예담,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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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 예담, 2009.)

Dog君 2014. 1. 19. 11:34



0. 한 2년 전부터 (그 전까지는 평생 나와는 별 관련 없을 줄 알았던) 영화 쪽과 접점이 많아지는 중이다. 영화를 보는 횟수도 부쩍 는 것은 물론이고, 생애 첫 등재후보지 투고 논문도 영화사 논문이 되었으니까. (물론 내 이름을 올린 게 민망할 정도로 공저자의 역할이 더 큰 논문이었다.) 뭐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 때부터 영화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 이동진에 대한 관심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1-1. 인터뷰라는 작업은 얼핏 보면 무척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분야보다 지난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구술사'가 비슷한 분야라고 하겠는데, 재작년에 제대로 된 구술사 프로젝트 한 건 진행하면서 아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1-2. 인터뷰 전에 대상자에 대해 미리 (철저하게) 공부해 두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뷰 자체는 인터뷰어가 듣고 싶은 것과 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과정이며, 인터뷰 후는 인터뷰의 내용을 풀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인터뷰의 그 뜨거운 맛을 보고 나니 7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이 책 속에 담겼을 그 긴 시간에 일단 감탄사 한 20개 정도 뿌려주고 싶다.


2. 씨네21 정도를 제외하면 변변한 영화 잡지 하나 남지 않은 이 바닥에서, 그래도 영화 관련한 일들로만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동진의 존재는 확실히 도드라진다. 혹자는 그를 일러 '영화평론계의 유재석'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꼭 개그나 말솜씨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흔히 직관이나 감성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리곤 하는 (그래서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것처럼 간주되곤 하는) '평론'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그가 보여주는 성실한 결과물들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인터뷰를 준비했는지가 인터뷰 내내 드러난다.


LEE(이동진) (전략) 감독님 영화들 아홉 편에서 베드신은 모두 40번 나오더군요. 이 횟수는 있었던 것으로 암시되거나 실패한 섹스가 묘사되는 장면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세느라고 셌는데, 물론 이 역시 횟수가 약간 틀릴 수는 있을 거예요. 어쨌든 편당 무려 4.4회인 셈이네요.(웃음)


HONG(홍상수) 그렇게나 많군요.(웃음)


LEE 베드신에 대해서 좀 어려운 질문을 해보겠습니다.(웃음) 일일이 따져보니, 그 베드신들 중에서 체위가 묘사된 것은 모두 26회였는데, 그중 남성 상위가 25회더군요. 단 한 번의 예외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동우(박진성)가 성매매 여성과 관계할 때의 여성 상위 체위였습니다. 왜 남성 상위가 집중적으로 많을까요.(웃음)


HONG 일단 개인적으로 정상체위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영화적으로 생각해 보면, 제가 베드신을 찍을 때 체위가 너무 야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베드신을 찍을 때 사실 섹스 자체보다는 그 사이에 펼쳐지는 다른 요소에 집중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장면이 너무 야해지면 관객의 싯너이 거기에만 집중될 것 같아요. 남성 상위는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더 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면 그래도 그 체위가 나은 것 같습니다. 체위가 이상하면 거기에 시선이 너무 많이 가서, 대사 전달 등에 방해가 되는 듯해요. 사실적인 베드신을 원하지만, 연출할 때 어느 정도의 수위에서 멈춰야 한다는 계산이 있는 거죠.


LEE 베드신에 대해 내본 통계를 좀더 인용해 볼게요.(웃음) 침대에서 펼쳐지는 장면이 25회이고 온돌이 7회입니다. 여관이나 호텔 같은 숙박업소에서가 24회이고, 집에서가 12회죠. 밤이었을 때가 22회인 반면 낮이었을 때는 모두 15회입니다. 그리고 음주 후의 상황이 21회이고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가 14회죠. 궁금해지는 것은 '낮'과 '술'에 대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베드신은 밤을 무대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낮에 이뤄지는 경우도 무척 많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음주가 동반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도 두드러지고요.


HONG 제가 낮 장면을 좋아해요. 밤 촬영보다 낮 촬영을 훨씬 더 선호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가급적 촬영을 낮으로 돌리려고 하죠. 밤에 실내에서 찍다보면 조명기기 같은 것에 대해 답답함을 많이 느껴요. 말씀하신 부분은 그런 데서 영향을 받은 면도 큰 것 같네요.(웃음) 그리고 술자리가 섹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제 영화 중에서 연애담처럼 길게 지속되는 관계가 〈오! 수정〉 정도일 뿐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저는 일상 속 길거리에서 만나듯 갑작스럽게 만나고 헤어지는 남녀관계에 영화적으로 던 관심이 있어요. (pp. 126~127.)


3. (소재가 좀 거시기하긴 하다만은) 홍상수 감독의 모든 작품에 나오는 베드신의 통계를 낼 정도로, 사소하고 작은 부분까지 검토한 후 인터뷰에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에헤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그만 보라니까.) 뭐 어디 그뿐인가.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를 가지고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인데, 이는 인터뷰어가 영화 속의 대사까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체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아야 이 정도 경지에 오르는지 머리 나쁜 나는 감히 짐작도 안 간다.


4. 영화는 범람하고 영화 기사도 범람하고 영화 기자도 범람하고 영화 인터뷰도 범람하지만, 이만큼 성실한 인터뷰(어)는 범람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의 영화사적 가치가 어디에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감독과 평론가가 마주 앉아서 그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해 이만큼 충실하게 풀어낸 책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적어도 한동안은) 없을걸.


5.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단지 영화에 대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어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그 감독의 세계관에 관한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HONG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인물이든 스토리든, 언뜻 보기에 서로 모순되는 쌍을 그 속에 집어넣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삶에 대해서 정리한 뒤 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삶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스스로 간단히 결론을 내린 후 닫아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실행하는 것만이 남겠죠. 인생이 뭐다, 나는 뭐다,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든 편견에의 함몰이든,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싶은 자신의 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모순된 모습이 들어 있어요. 저는 그런 것들을 영화에 넣어 스토리 속에서 모이도록 하는 거죠. 관객들은 그런 제 영화를 보면서 의미화를 하겠지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뭉게구름처럼 떠다닐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좋아요. 감독에 의해 딱 떨어진 의미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각자의 처지에서 의미화하는 거죠. 저는 제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편협하면서도 오만하게 견지해 왔던 모든 믿음에 대해 태도적으로 의심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pp. 31~32.)


BONG(봉준호) 시스템이 개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저에게 있는 것 같아요. 독극물로 괴물이 생기고 그 괴물에게 더 강력한 독극물인 독가스가 뿌려지는 악순환의 은유를 통해 사회 모순을 그리고 싶었어요. 〈괴물〉에서 악순환은 배설의 모티브로 반복되는데, 에이전트 옐로의 살포는 곧 국가에 의한 배설인 셈이죠. 그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에이전트 옐로 투입기의 외양이 교각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괴물이 처음 등장했던 바로 그 모습이에요. '사실은 이게 진짜 괴물이다'라고 선언하듯 말입니다. 구체적인 색깔과 문맥이 달라서인지 아무도 저의 그런 의도를 알아채주지 못했지만요.(웃음) (pp. 247.)


LEE 힘에 대한 본능적 경도가 있는 반면, 한쪽으로 쏠린 힘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시도가 시각도 극중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그런데 그처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도 결국은 힘에 의존하게 되는 또다른 딜레마를 품게 되죠.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나오는 흑운(정두홍)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RYOO(류승완) 흑운 같은 사람을 제가 무서워해요. 자기가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다른 입장은 전부 잘못됐다고 판단해 적으로 돌리는 사람들이요. 하지만 세상에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인류가 지속되는 한 반드시 힘의 균형이 필요해진다고 생각해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것은 위험하니까요. 〈짝패〉에서 서울로부터 거대한 세력이 몰려올 때 왕재(안길강)처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면 달라졌겠죠. 하지만 그게 흡수되는 상황이 되니까 비극이 생기는 거잖아요. 저는 한미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만, 한쪽이 월등히 강하다고 해서 그쪽에 붙으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뭔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요. 저도 남자인데 강력한 힘에 대한 로망이 왜 없겠어요. 다만 저는 그 허망함도 같이 알고 있어요. 힘에 대한 저의 태도에는 좀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까요. (pp. 361~362.)


LEE 감독님의 시는 일정 부분 정치적이었습니다. 사회비판적인 발언도 적지 않았고요. 첫 시집 《무림일기》는 그 자체로 김지하 시인의 《오적》처럼 정치 풍자적인 장시를 담고 있었죠. 〈전함 포템킨〉〈크로커다일 던디〉〈파리 애마〉처럼 영화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한 시들조차 부제가 '영화사회학'일 정도로 강렬한 현실 발언을 담고 있었고요.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그런 면모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체의 차이인가요, 아니면 시대의 변화 때문인가요.


YOO(유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저희들은 이른바 역사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세대잖아요. 그 당시에 돌 한 번 안 던져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늘 그런 부채의식 속에서 시를 썼죠. 시인으로서 저는 그 당시 유행했던 민중시 계열의 시를 쓰지 않고 '문학과지성' 쪽이 추구하는 시를 썼기에 그런 것들에 대한 콤플렉스도 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영화를 만들게 된 시기는 우리 사회가 탈이데올로기화되는 지점이었어요.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대중문화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던 시기에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2000년대 들어서 두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는 그런 이념들은 많은 부분 해체되었기에 굳이 다룰 만한 모티브가 없었습니다. 유신시대에 대한 풍자가 있는 〈말죽거리 잔혹사〉 정도였죠. 만약 제가 시를 썼던 무렵에 영화를 했더라면 비슷한 색깔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영화를 한참 뒤에 했기에 다른 모습이 되었죠. 그러나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비판은 제 영화에 있어요. 원형들은 여전히 담겨 있죠.


YIM(임순례) (전략) 저는 개인적으로 크게 반감을 느끼는 광고 카피가 하나 있었어요.


LEE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카피 말씀이신가요?


YIM 네. 그 카피는 정말 싫었어요. 우리 사회는 절난 사람과 못난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차이를 점점 더 강조하고 있죠. 그런데 사실 그게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설혹 능력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본성의 차이는 거의 차이가 없고요. 심지어 사람과 동물, 동물과 식물의 차이도 정말 미미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스포츠 영화를 만들면서 단체 구기 종목을 소재로 택한 것은 능력이 뛰어난 한 사람이 해내는 경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공조에 의해 이뤄지는 경기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선수가 다 중요하고, 모든 개체가 다 중요하다는 거죠. 말하자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이 과연 무엇이냐를 묻는 영화입니다. 은메달이라도 이정도 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거죠.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사진을 하나씩 쓸 때도 선수들이 우는 장면 같은 것을 쓰면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더 자극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아름다운 모습들만 골라 썼어요. 특히 마지막 컷은 월계관을 쓴 채 선수들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으로 선택했죠. 저는 과정이 결과보다 더 진실하다고 보니까요.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다 보고난 뒤에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이 무엇일까를 늘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들은 모두 엔딩에 무엇인가를 몰아주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서는 슬프지만 툭툭 털고 앞으로 다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힘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p. 616~617.)


KIM(김태용) 관객으로서 극장에 가면, 영화사 로고가 나오고 음악이 흐르면서 영화가 막 시작할 때 몸이 반응해 긴장이 생겨요. 이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거죠. 그러면서 저는 시작된 1~2분 사이에 그 영화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영화는 이렇게 보라는 거로구나' 싶은 거죠. 그러다 러닝타임이 30~40분쯤 흘렀을 때 그 선입견이 맞는지를 다시 확인해 보게 맞으면* 그 연장선상에서 그대로 보고, 안 맞으면 '어, 이건 옛아과 다른데?' 하면서 봅니다. 그런데 관객으로서 저는 '이게 왜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물이야?' 싶은 영화를 좋아해요. 정서적인 위안이든 지적인 자극이든, 제가 만드는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다르덴 형제가 만든 영화를 볼 때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어떠한 여오하라도 그 안에 낯선 형식적, 철학적 실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영화는 끊임없이 관습과 대결한다고 보는 거죠. 그런 대결의 현장을 다 보고 나면 어쨌든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관객들이 기대를 가지고 극장에 오면 좋고 그런 기대에 제 영화가 부응하면 더 좋겠지만,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은 듯 느끼신다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뜻하지 않은 고통 말고요.(웃음) (pp. 725~726.) (*오타인듯 하다)


6-1.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이야기의 초점이 감도의 세계관이 아니라 영화의 해석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발생하는 묘한 역전(같은 것)에도 있다. 첫 번째 인용글에서도 나타나듯이, 영화의 특정한 장면장면을 해석하는 지점에 이르면, 정작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말투가 추측이나 가정으로 바뀌는데/후퇴한다는 사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평론가의 말투는 단정형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6-2. 영화라는 것이 감독(을 비롯한 일군의 스탭들)의 대단히 의식적인 창작활동의 결과물이기에 그 영화의 각종 장치와 이야기들에 대한 해석의 우선권이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평론가 이동진이 감독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순간 감독과 영화가 맺고 있던 특권적 관계가 해체되면서, 감독과 평론가는 동등한 위치에서 영화를 함께 해석하는 입장이 된다.


6-3. 여기서 '평론'(혹은 '해석')의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창작자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제3자가 뽑아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뭐 이런 질문 말이지. 비슷한 질문이 역사학에서도 던져지는 것이기에 이 문제가 참 궁금하다. 좀 더 쓰고 싶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책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에서 더 하는 것으로 하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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