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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대선 후 단상 (2012.12.20.)

Dog君 2017. 11. 26. 13:52

대통령 선거가 끝나니까 페북에 '좌좀', '수꼴' 같은 단어 쓰면서 그간 페북에서 선거 이야기, 정치 이야기 했던 것들 비판하고, 어쨌거나 이제 대통령은 뽑힌 거니까 그녀가 대통령직 잘 할 수 있도록 믿어보자... 그런 얘기가 많더라. 맞는 말 같지만 난 그런 말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해.


훈계하는 듯한 말투와 원색적인 단어를 쓰니까 참 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거야말로 허튼 소리야. 이쪽도 틀렸고 저쪽도 틀렸다는 식의 양비론, 이제 선거는 끝났으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결과에 승복하고 잠자코 있으라는 이야기들... 웃기지 마. 그렇게 무심코 받아들이는 무관심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야. 개혁적인 정치가는 무관심 때문에 좌절하고, 사악한 정치가는 무관심 덕분에 독재를 행하지.


선거는 비슷비슷한 두 사람을 놓고 어느 놈을 고를까 대충 고르는 초등학교 반장선거가 아니야. 선거라는 건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겨루는 장이야. 특히 이번 선거가 그랬지.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공공성'과 '시장성' 같은 것들 말야. 그래서 합리적인 유권자라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희망사항을 대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꼼꼼히 따지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해. 그런 게 바로 민주주의 선거지.


그리고, 그런 글들은 '좌좀'이니 '수꼴'이니 하는 단어를 늘어놓으며 우리를 훈계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부 찌질한 놈들 빼면) 그 따위 선정적인 단어로 지지 후보를 표현했던 사람 있었어? 왜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들먹이면서 사람들을 꾸짖는 거지?


우리가 선거 과정에서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를 지지하지 않는지 이야기했던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야. 자기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솔직히 드러내고, 서로 부딪히고, 다투고, 깨지는 과정이 모두 민주주의야.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일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잖아? 그러니까 여전히 우리는 페북에서 더 많이 정치를 이야기해야 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이해관계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드러내야 해.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선거가 끝났으니까, 어쨌거나 우리의 대통령이니까, 이제부터는 믿고 맡기자는 말은 그래서 틀렸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설사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고 해도 매섭게 비판하고 압박해야 해.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 사람인데,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존중하라는 건 좀 웃기잖아?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에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들이 더이상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못한다면 그런 게 바로 독재야. (그건 설사 2번 후보가 당선되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선거 이후에도 지지자들이 꾸준하게 그를 뒷받침해주고 몰아세우지 않는다면 그의 정책은 곧 힘을 잃고 마니까.)


이번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인터넷과 SNS, 팟캐스트 같은 훌륭한 도구를 얻었어. 돈과 권력이 장악한 기존의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수단이지. 우리는 그곳에서 정치를, 아니 꼰대들을 비틀고 조롱하면서 웃고 떠들고 즐겼어. 그게 바로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고 소비하는 방식이야. 엄숙이두박근과 경건대퇴부가 있어야만 정치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점점이 흩어져 있던 우리들은 인터넷과 SNS, 팟캐스트를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어.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작은 성벽 하나를 쌓은 셈이지.


이번 선거는 정말 접전이었어. 51:48이라는 스코어는 보기 드문 경우니까. 이제 남은 일은 48%가 48%만큼의 발언력을 갖도록, 선거 때 했던 것처럼 계속 몰아세우고 압박하는 일이야. 어제의 48이 오늘은 40이 되고, 내일은 30이 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했던 그 많은 주장들도 그만큼 힘을 잃는 거야.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끝난 게 아니야.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주장하고 비판해야 해. 다시 한번 말할께. 100명 중에 무려 48명이 지지하는 가치를 그냥 없애버리는 거... 좀 많이 아깝잖아? ^^ (페이스북, 2012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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