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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윤택림, 역사비평사, 200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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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윤택림, 역사비평사, 2003.)

Dog君 2008. 4. 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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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자세, 즉 사관史觀은 그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도 변해왔다. 몇몇의 영웅 혹은 리더를 통해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뒤를 이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일상생활과 관습을 통한 것, 계급 간의 투쟁을 통한 것 등이 등장했다. 무질서해보이는 녀석들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일정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뒤로 갈수록 이전의 사관에서 배제되었던 '소리없는 다수'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강해진다는 것.

2. 역사학은 기록을 더듬는 학문이다. 옛사람들이 남긴 문서와 유물 등의 흔적을 통해 당대인들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 곧 역사학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고, 그 '사라져버린 것'과 지금의 '역사가'를 이어주는 흔적들을 우리는 '사료'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3-1.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개체성이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집단 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하나의 개체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집단으로 호명되는 순간 이같은 개체성이 발현될 여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문제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거시적인 특성상, 탐구대상인 인간이 언제나 집단으로만 설정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개체의 생생한 삶의 결이 드러날 여지가 역사학에서는 없다.

3-2. 아니,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4. 역사학과 인류학의 접목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료를 남기지 못한 소리없는 대중 개개인의 삶을 복원시켜내는 것. (헉헉.) 또한 그 대중 속에서도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하위신분 출신이나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시켜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역사인류학의 문제의식이 정치해질수록 글이 길어지고 다양한 수준의 연구가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1. 물론 여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우선 기억의 주관성. 주관적이어서 못 써먹겠다는게 아니라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용이 가변적이라는 뜻이다. 기억은 발화發話되는 순간의 구술자의 감정이나 주변상황, 채록자와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불완전한 기억력이나 고의적인 누락과 추가가 발생할 수 있을 뿐더러 채록자 역시 자신의 의도에 따라 구술내용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 역사학의 구술사적 접근에 가해지는 비판이 주로 이 지점에 집중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대응담론이 필요하다.

5-2. 역사학에서 구술사적 방법을 채택하는 경향은 많지만 여전히 구술을 문서기록을 보완하는 정도로만 사용하거나 구술의 타당성을 문서기록을 토대로 재단하려는 경향도 가끔 보인다. 구술자료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구술사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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