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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창비, 200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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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창비, 2008.)

Dog君 2009. 7. 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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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살아가면서 필요한 여러가지 능력 중에 '통찰력'이라는게 있는데 이게 유독 내게 부족해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물 혹은 사건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단숨에 전체 그림을 그려내지를 못한다... 뭐 대충 이런건데 그런 탓에 내 기억 속에 무의미하게 흩어져있는 수많은 편린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서 하나로 조합되기 전까지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부의 길을 걷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꽃핀다. 아오.)

0-2.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산포된 작은 조각들이 하나의 논리회로 속에 재배치되는 순간은 매우 즐거운 순간이라는 것. 최규석을 알게 된 것도 얼추 그런 과정이라고 하겠다.

1-1. 몇 년 전에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처음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뽀송뽀송한 동화를 냉정한 현실 속에 녹여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해질 수 있는지를 깨달은 덕분이었다.

1-2.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습지생태보고서'를 보고 '뭐 이런 쌈마이색기들이 다 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어딘지 모르게 리얼맞은 궁상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연신 사각 컷 속의 이죽거리는 그 웃음들을 보며 은근한 일치감 및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와닿는 만화는 아니었다.

1-3. 제발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가히 연례행사 수준인 나도 가끔 미친 척하고 혼자 극장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날은 아마 '필승 연영석'을 보러 갔던 것 같은데 영화 시작 전에 새로 개봉하는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예고편이 나왔다. '사랑은 단백질'. 나오는 인물들이 '습지생태보고서'와 같다는 생각은 못했고 그저 상상력이 굉장하다는 생각만 했다. 배를 뜯기고 애처롭게 청테이프로 제 배를 붙이던 저금통 돼지의 식은 땀을 보면서.

1-4. 아마도 무슨 자료를 찾는 중이었을거다. 80년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어느 사이트에서 문득 찾게 된 만화, '100℃'. 독자의 직접적인 감정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강풀과 유사했지만 화법의 직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강풀보다 더한 화법을 택하고 있었다. 혹자는 이 세련된 시대에 이렇게나 투박하고 무식한 내지름을 보면 구시대적인 화법이라 냉소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화법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화법 중 하나 아니던가. 먹먹한 가슴과 액체가 그렁그렁한 눈시울로 작가 이름을 찾아보았다.

1-5. 최규석이라는 이름으로 위의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회로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2. 가난했던 가정환경과 찌질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 하나쯤 안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없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지금이야 살림이 많이 여유로워졌지만 우리 집의 과거도 평균 이하의 경제능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작은 도시 근교의 농촌에서 살았던 나 역시도 콧물 빨아가며 삘기랑 산딸기 뜯어먹어가며 자란 기억이 있다.

3-1. 한국현대사의 비극은 우리의 삶을 그저 가감없이 드러내기만 해도 이미 그것만으로 폭력과 독재, 수탈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게 된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의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근대권력의 모순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일이었고 따라서 우리들이 살아왔던 바로 그 궤적이 근대권력의 모순이 발현되는 그 지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은 이미 그 자체로 현실을 고발하는 성격을 지니게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원주민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면 그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3-2.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흔한 대자보 만화와 다르지 않았겠지. 쓸데없는 감상과 치장을 넣지 않았기에 궁상맞지도 않다는 것. 아마 그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이리라.

4-1. 꼭 내 얘기하는 것 같아서 깜딱 놀랬던 페이지 하나. 좀 길어도 여기에 다 쓸란다.

  (전략)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라는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어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는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중략)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4-2. 그리고 만화도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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