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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曲나부랭이

인생 (위화, 푸른숲, 2007.)

Dog君 2023. 9. 10. 20:59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인간이란 너무 작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별 대단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분투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능력껏 해내려고 부단히 애쓰죠. 저는 인간의 위엄이란 바로 그것에서 비롯한다고 믿습니다.

 

  학부 시절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생'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역사란 우리 개개인의 삶과 무관해 보이는, 어떤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역사는 우리 각각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역사란 과거에 대한 막연한 낭만[好古主義]이 아니라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각각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역사를 대하는 지금 저의 태도는 그때 첫 단추가 끼워졌습니다. Life goes on.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왔지." (52쪽.)

 

  룽얼이 그렇게 죽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뒷목이 서늘하더군.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 기분이었다네. 옛날에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말아먹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문득 내 얼굴을 문질러보고 팔도 만져보았지. 다행히 다 그대로더군.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난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우리 집안이 조상 묘를 잘 쓴 모양이야. 어쨌거나 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내가 집에 막 돌아왔을 때, 자전은 내 신발 밑창을 만들고 있었는데 내 안색을 보더니 어디 병이라도 난 줄 알고 깜짝 놀라더군.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던 것들을 말해줬더니, 그녀도 놀랐는지 얼굴이 하얘졌다 파래졌다 하더라구.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111쪽.)

 

  성안에 이르러 그 집이 가까이 보일 때쯤 가로등 밑에 펑샤를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우리 펑샤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던지, 그때까지도 울지는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구. 내가 손을 내밀어 그 애 얼굴을 쓰다듬어주니까, 그 애도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매만지더군. 그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다시는 그 애를 돌려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펑샤를 도로 업고 길을 돌아 나왔지. 펑샤는 그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감아 안더니 얼마쯤 가서 갑자기 나를 꽉 껴안았다네. 그 애도 자기를 다시 집으로 데려간다는 걸 알았던 게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전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더군. 나는 결연하게 말했지.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그 말에 자전은 배시시 웃어 보이더군. 웃는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 (126~127쪽.)

 

  "이 닭들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는 자라서 양이 되고, 양은 또 소가 된단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부자가 되는 거지."
  녀석은 그 말에 깔깔 웃어대더니, 그 몇 마디를 완전히 외워서는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올 때마다 노래처럼 흥얼거렸어.
  달걀이 많아지면 우리는 그걸 성안으로 가져가 팔았지. 나는 쿠건에게 이렇게 일렀다네.
  "돈이 충분히 모이면 우리는 소를 살 거야. 그러면 너는 소를 타고 놀 수 있단다."
  녀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했지.
  "닭이 소로 변하는 거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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