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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박차민정, 현실문화,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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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박차민정, 현실문화, 2018.)

Dog君 2018. 10. 3. 14:01


1. 무언가를 공부할 때는, 무엇이 이야기되는지만큼이나 무엇이 이야기되지 않는지도 중요하다. ‘근대’가 어쩌고 ‘국민국가’가 저쩌고 할 때는 더 그렇다. ‘근대’와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바로 여러 기억과 정체성 중 일부를 선택하고 나머지 일부를 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때 선택된 기억과 정체성은 대개 ‘정상’이 되고, 선택되지 않은 기억과 정체성은 ‘비정상’이 된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 얼추 맞다. 그리고 그 ‘비정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처리되기 마련이다. 


2-1. 나는 역사 공부의 여러 역할 중 하나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비정상’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거기에, 지금의 팍팍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확실히 성공했다. 식민지 시기를 살아갔던 다양한 성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문제시했던 당대의 시선들을 풍성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2-2. 그런데 한편으로 책을 읽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소수자를 다루는 글은 많지만 정작 그 글 속에서 성소수자 스스로의 목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3. 그래서 이 책이 성소수자에 대한 역사 연구의 최대치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어 불안했다. 역사 속의 성소수자들을, 그들을 문제시하고 대상화하는 기록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면 성소수자는 결국 대상/객체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 내에서 성소수자가 주체가 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4. 이런 생각이 단지 성소수자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소수자는 그 말고도 얼마든지 더 많으니까. 하아, 책은 재미있는데, 뒤따라 오는 생각은 어찌 이리도 막막한지. 


  초기에 성과학에 대한 관심은 일부 엘리트 계층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10년대부터 보통교육 도입의 효과로 일본 내의 문자해독률이 상승하고 독서 대중을 위한 취미독물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됨에 따라 이러한 읽을거리를 채우는 주요한 콘텐츠로서 성과학 지식의 대중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후에 연구자들에 의해 ‘변태붐Hentai boom’으로 이름 붙여진 성과학의 유행으로 1920년대에는 ‘변태성욕’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열 개 이상 등장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변태붐’의 시대는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후략) (p. 17.) 


(전략) 성과학 지식의 유행은 1927년 조선 국내에서도 《변태심리》라는 제목의 ‘변태 전문 잡지’의 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서적들을 주문해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1920년대 후반이 되면 조선의 신문·잡지를 통해 ‘변태성욕’과 관련된 서사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바로 식민지 조선을 휩쓴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새로운 유행 덕분이었다. (pp. 23~24.) 


  당대 서구의 많은 성과학자들은 이성애와 일부일처제 혼인에 바탕을 둔 성도덕·성질서야말로 사회진보를 위한 필수적 토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선구적인 성과학자인 크라프트 에빙Richard von Krafft-Ebing은 문명의 발전 단계와 성도덕 사이에 강한 관련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제도화된 이성애는 문명의 정점에서 출현한 최상의 제도이며, 사회의 진보를 위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조건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결혼으로 대표되는 이성애 일부일처제 제도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인류문명의 더 낮은 단계로의 퇴화인 동시에, 문명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p. 29.)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남성 간의 모든 성행위가 불법화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략) 일본과 1912년 이후 일본 형법을 적용받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다른 조건(연령 제한과 폭력의 사용)을 위반하지 않는 한 성인 남성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남성들 간의 성관계가 폭력을 동반하거나 아동을 대상으로 삼는 범죄라는 좁은 경로를 통해서만 대중에게 가시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성애적 욕망을 가진 ‘변태성욕자’는 점차 ‘범죄성’과 뗄 수 없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후략) (pp. 71~72.)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후천적인 ‘변태성욕’의 촉발 원인에 대한 논의들이 주로 중간계층의 소년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층계급 남성들의 ‘변태성욕’은 거의 서사나 맥락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원래 변태성욕자’로 단정적으로 가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많은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성과학은 ‘문명화된 서구’라는 가정 뿐만 아니라 중산계급이 특별한 성적 도덕성과 고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의사와 학자들이 백인 중산계급 출신으로, 자기가 속한 계급의 가치와 이해를 연구와 학설들에 반영햇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비유럽인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계급 역시 전형적으로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당대의 의사들은 성적인 허용성과 관능이야말로 빈민과 노동계급의 특징이며, 중산층과 상류층만이 고결한 성도덕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강력한 계급적인 편향 속에서 ‘부도덕한’ 성적 행위를 하는 중산계급 구성원은 주로 광인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같은 행위를 빈민이 했을 때, 그것은 부도덕한 계층적 본성의 발현이자 의지적인 선택으로 간주되었다. (후략) (pp. 103~105.) 


(전략) “남자와 여성의 생식기를 겸비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반음양’으로 지칭되었던 인터섹스는 성별을 중심으로 구축된 근대 국가에 있어 일종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다. 명확히 분류할 수 없고 식별되지 않는 이들의 몸은 근대적인 통치 제도들 안에서 그 위치가 새롭게 고정되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 몸들이 지닌 ‘진정한 성별’이 어느 쪽인가를 규명하는 일이었다. 

  미셸푸코Michael Foucault는 에르퀼린 바르뱅Herculine Barbin의 회고록에 붙인 서문에서 인터섹스에 있어 ‘진정한 성별’이 문제로 제기되는 과정을 분석한 바 있다. (중략) 그는 서문에서 수 세기 동안 서구 사회에서 양성구유자는 두 개의 성을 함께 가진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행정적 통제 형태들이 한 몸 속에 두 개의 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게 됨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하나의 성을 가진다는 사고가 확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략) ‘진정한 성별’을 판단하는 권위는 본인이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과학적 권위로 무장한 새로운 의학 전문가 집단의 판정에 귀속되었다. (pp. 150~152.) 


  위의 두 재판의 사례는 ‘성전환수술’이 단순히 의료적인 처치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병역 의무, 재산권, 상속권, 투표권의 재조정과 밀접하게 연동된 사회적 사건으로 다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의학적 개입을 통해 인터섹스 신체들을 두 개의 성별 체계 안으로 ‘교정’하는 성전환수술을 발전시키는 것과 나란히, 이들 ‘교정’된 신체를 근대적 통치 체계 안에 안정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일련의 제도적 중재 절차들 역시 빠르게 정비해나가고 있었다. (p. 159.) 


  일본은 서구식 근대화와 제국주의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인구의 개념을 빠르게 흡수했던 비서구 국가 중 하나였다. 일본은 1870년대에 프로이센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공공보건체계들을 수입하면서 보호하고 육성하며 개선해야 할 사회적 유기체로서의 인구라는 개념을 함께 가져왔으며, 이에 기반을 두고 국민의 건강을 조사·관리·통제하는 강력한 수단들을 발전시켜나갔다. (중략) 이것은 군사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남성의 신체에 대해 일본 정부가 특별한 관심과 관리 및 개선의 의지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p. 171.) 


  이들은 남성 ‘색정광’들과 동일한 명칭을 공유했지만 그 내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남성 ‘색정광’으로 불린 이들은 (중략) 병리의 어두운 글미자나 잔혹 범죄의 혐의를 드리운 존재였던 반면, 여성  ‘색정광’은 보다 전통적인 ‘광녀’에 가까운 인물로 재현되고 실제로도 ‘광녀’로 취급되었다. 

(중략) 이러한 호명은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의 ‘변태성욕’이 일탈적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성별 규범의 위반의 측면에서 정의되었으며, 이를 비판할 용도로 전유되는 경향이 있었음ㅇ르 보여준다. 남성 ‘변태성욕자’들이 전형적으로 ‘도착적’ 성행위를 통해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반명에, 여성은 같은 명칭을 거의 공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불릴 때조차도 성적 주체로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욕망하는 여성의 자리는 결코 상상되지 않았다. (pp.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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