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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가쿠타 미쓰요, 글담,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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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가쿠타 미쓰요, 글담, 2018.)

Dog君 2018. 10. 7. 07:36

 

1-1. 어려서부터 나는 운동을 싫어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인간의 문명이란 최대한 몸을 덜 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는데, 이 더운 날 왜 저렇게 굳이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걸까...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도시락은 3교시 마치고 진작에 까먹고 4교시 마치는 종소리와 동시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달라. 나는 문명인이야... 

 

1-2. 대학에 들어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과에서 체육대회를 하기는 했지만, 학생회 간부였던 나는, 심지어 학생회장일 때도, 운동장 구석에서 전 부치고 막걸리 마시는 데만 열중했다. 

 

1-3. 자발적으로 운동을 했던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서였다.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일상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정확한 동기는 기억이 안 난다) 대략 ‘점심 먹고 졸고 있을바에야 운동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학교 근처 구립체육관에 있는 헬스장을 다녔다. 뭐... 대부분의 한국인이 다 그러하듯 처음 두어 달은 잘 다녔고 살도 꽤 뺐지만 (지금도 깨지지 않은 최저몸무게 기록이 그 때의 것이다) 결국은 ‘기부’만 하고 말았다. 

 

1-4. 지금 직장에서 처음 만난 ‘사수’는 소문난 등산광이다. 처음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산에 끌려다니다가 언젠가부터 슬슬 재미가 붙더니 급기야 나 혼자 알아서 산에 다니는 지경이 됐다. 물론 뭐든 열심히 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아주 열중하지는 않았고 다만 주말 아침에 할 일 없다 싶을 때 가까운 산으로 가는 정도까지는 됐다. 과천 관악산, 수원 광교산, 군포 수리산, 파주 봉서산, 서울 북한산 등등... 그런데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산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식다가 그게 달리기로 슬슬 옮겨갔다. 점심 먹은 다음에 구내식당 옆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쪽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1주일에 한 두 번이나 했나... 몇 달씩 안 하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뭐든 열심히 안 하니까. 

 

1-5.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열심히 달려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오프로드 달리기를 시작했고 주중에도 별 일 없으면 꾸준히 달린다. 속도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살을 빼겠다는 마음이 좀 더 컸지만, 6~7kg 정도 빠지고 감량이 정체에 들어간 후에도 (왜냐면 식단조절을 안 하니까...), 여전히 달리고 있다. 달리기 앱에 기록된 5월 14일부터의 누적거리는 800km를 넘겼고, 속도도 꽤 흡족한 수준이다. 4개월 넘게 했으니까, 앞으로도 질리지 않고 계속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1.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에세이를 읽었노라고 하자 한 지인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고 가쿠타 미쓰요도 그렇고, 그리고 아마 다른 러너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달린다는 것에 대해서 뭔가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겠답시고 내가 지금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쩌다 운동을 빼먹거나 기록이 나빠지기라도 하면 괜히 자기자신을 책망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 책망과 실망이 스스로를 좌절시킨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2-2. 나는 그래서 달리기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란다. 어제 했던 것처럼, 꼭 그렇게 무심하게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말이다. 살이 빠지지 않아도 좋고 체력이 솟구치지 않아도 좋으니까 지금 상태만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디서 보니까 어떤 행위를 습관으로 만들려면 60몇 일을 계속해야 된다던데, 지금 정도면 일단 1단계는 돌파한 것 같다. 

 

3. 그래서 그런가, 이 책도 공감하는 바 크다.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관심하지는 않은 상태. 그만 두고 싶다는, 그냥 안 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까지 모두 인정하며 꾸역꾸역 달리는 솔직함.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비관주의. 내가 이런 자세를 상당히 좋아한다.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에이 모르겠고, 그냥 오늘 해야 할 부분만 하고 나머지는 일단 다음에 생각하자...는 거 아닌가. 

 

*. 하지만 이 분, 하시는 말과 달리 의외로 엄청난 철각鐵脚일지도 모른다. 해발 2,057m의 산을 오르고도 “해발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산”(p. 127.)이라서 “굉장히 즐거웠다"뇨... 

 

  팀에 들어가고 5년 동안 마라톤 릴레이(5km)에 한 번, 대회(10km, 하프 부문)에 한 번씩 참가했으며 언젠가 머지않아 풀코스 마라톤을 뛰겠지 생각하면서도 내내 피해왔다. ‘언젠가’ 같은 건 10년 뒤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근 5년간 비만 오지 않는다면 주말에는 반드시 10km에서 20km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즐거워서 달리는 게 아니다. 마지못해 달린다. 어째서 마지못해 달리는가 하면, 한 번 쉬면 다음 주도 쉬고 싶어질 게 분명하고 다음 주도 빼먹으면 그다음부터는 틀림없이 내내 빼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번 쉰다는 건 내게는 팀을 그만둔다는 뜻이며, 그 말인즉슨 앞으로 평생 달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5년씩이나 매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곤 한다. 어떻게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달리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달리기에는 딱 하나 놀라운 점이 있다. 바로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5년 전, 나는 고작 3km가 한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20km를 달릴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놀라움 때문이리라. (p. 21.) 

 

  그런데 이상적인 체형이 되지 않는데도 내가 어째서 스포츠센터에 8년이나 다니고 있는가 하면, 등록할 때의 과도한 기대를 깨끗이 버렸기 때문이다. 

  복부지방과 근육의 표준화는 3년째쯤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복근운동을 할 강한 의지가 내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몸의 다른 부위가 전부 표준이라 개성이 없으니 배는 개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새삼 깨달은 점이 있다. 8년 동안 배는 그대로고 다리 근육은 스포츠센터 밖에서 달리면서 붙었으며 그 외에는 근육량도 체지방도 그다지 변화가 없다. 그런데 이 변화가 없다는 점인즉슨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니 그건 어쩌면, 혹시나, 엄청난 일이 아닌가. 

  8년이라면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 이만큼 나이를 먹으며, 게다가 매일매일 실컷 내 마음대로 술을 마시면서도 체중을 비롯하여 근육량, 수분량, 체지방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좀 대단한 일이 아닐까. 스포츠센터에 다니지 않았다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지 않을까. (p. 43.) 

 

4. 물론 나는, 푸코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훈육되지 않은 신체’를 가진 사람이므로, 달리기 실력이 좋다고 말할 형편은 못 된다. 지난 달 말에 어찌어찌 하프 거리를 완주하고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이 안 된 걸 보면 기초체력이 좋은 편은 아닌 모양이다. 멘탈에도 사실 문제가 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과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조금만 낯선 곳에 가도 금방 달리기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에 가서건 시간과 장소만 되면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언젠가는 그런 경지에 이를 때가 오겠지? 

 

  해외에서 달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달리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아무도 달리지 않는 곳에서 홀로 달리면 기이하게 보일 것이다. 게다가 길을 헤매지는 않을까 싶어 왠지 무섭다. 운동복 차림의 미아라니 꼴불견이다.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러닝슈즈도 운동복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몇 년 전 프랑스에 머물 때 눈 딱 감고 가져가봤다. 머무는 중 스케줄이 비교적 느긋해서 오전 중에 달릴 시간이 날 듯했기 때문이다. 

  운동복에 잔돈을 챙겨 넣고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휴대전화만 들고 호텔을 나설 때의 불안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이국의 거리를 돌아다닌다니...... 

  길을 잃으면 무서울 것 같으니 우선 센 강으로 가서 강가를 따라 쭉 달렸다. 얼마나 기분 좋던지! 달리기를 시작한 뤽상부르 공원은 녹음이 우거져 있고 오전의 햇살은 신선하며 주위는 고요하다. 달리는 사람도 많다. 센 강변도 풍경이 차례차례 바뀌어서 놀랄 만큼 즐겁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편 강가를 달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텔을 나설 때의 불안이 안심으로 바뀌어 있다. 여행자로서 거리를 걸을 때의 불안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아마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아서겠지. 일단 돈도 지갑도 여권도 지니고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옷조차 안 입고 있다. 게다가 달리고 있다. 사건에 휘말릴 요소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는 것이다. 이 안도감, 이제껏 몰랐다. 나는 조금 감동했다. (pp. 237~238.) 

 

5. 계획대로면 10월 중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참가를 신청한 대회가 참가자가 적다는 이유로 취소되어 버렸다. 다른 대회에 나갈 수도 있지만 올해 10월은 이상하게도 일정이 빠듯해서 도무지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결국 대회 출전은 빨라야 11월 중순에나 가능할 것 같다. 마라톤 대회, 솔직히 말하면 좀 긴장된다. 낯선 공간에서 달려본 일이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도 떼로!) 달려본 일도 없어서 제 컨디션대로 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폭우라 해도 좋을 정도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그칠 기미도 잦아들 기미도 전혀 없다. 1km 조금 못 되게 걸었을 때, 문득 달리면 지금보다 훨씬 빨리 (맥주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골인 지점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록이라든지 자기 자신에게 지지 않는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1분이라도 빨리 비에 젖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1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본 뒤로는 ‘앞으로 5분, 5분 더 달리면 비를 피할 수 있다, 맥주도 있다, 야키소바도 있다’라는 일념으로 속도를 높였다. 어찌 된 일인지 이다지도 지쳤는데 속도는 착실히 올라간다. 심정은 풀코스 마라톤의 라스트스퍼트가 아니라 완전히 비를 피해 선술집으로 달려가는 회사원의 그것이다. (p. 95.) 

 

6. 그리고 나는 지금 숙직근무 중이고, 1시간 30분 정도 뒤에 퇴근할 예정이다. 퇴근하면 곧장 집 근처 호수공원으로 가서 또 달릴 것이다. 

 

느긋하게, 당당하게, 씩씩하게- 

즐거운 운동을 위한 어른의 여덟 가지 자세 

1. 무리는 금물! 중년임을 자각한다. 

2. 살 빼기, 체지방 줄이기, 인생의 권태 없애기 등 이득을 얻으려 욕심내지 않는다. 

3. 그만두고 싶어질 때쯤, 값비싼 도구를 갖춰 마음이 그만두는 시기를 늦춘다. 

4. 높은 뜻을 품지 않아야 오래 운동할 수 있다. 

5. 시원한 맥주, 따듯한 스파, 마사지 등 운동이 끝나면 자신에게 포상을 준다. 

6.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바보 같은 짓. 경쟁자는 늘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기억한다. 

7. 연습 후 친구들과 회식하기, 여행 겸 떠날 수 있는 지방대회 신청하기 등 이벤트를 만든다. 

8. 가슴 설레는 제안을 해주는 활동적인 어린 친구를 만든다. 

 

교정. 

20쪽 6줄 : 하프 부분 -> 하프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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