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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김중혁, 자이언트북스,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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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김중혁, 자이언트북스, 2022.)

Dog君 2023. 3. 11. 19:11

 

  대체 얼마만에 읽은 소설인가 싶습니다. 소설에 대해서는 뭐라든 말을 보탤 깜냥이 못됩니다. 그 때문에 제가 선택한 방법은 마음 끌리는 소설가의 신작을 꾸준히 따라읽는 건데요, 그런 식으로 비교를 하면서 봐야 그나마 소설의 맥락이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제가 따라 읽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이 김중혁이고요.

 

  김중혁의 단편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의 단편소설 속 세상은 현실과 공상의 절묘한 경계에 있는 듯해서 설정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요. 다만 초기에 쓴 장편소설에서는 힘이 부친달까, 밀도가 옅달까, 암튼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느낌이 점점 옅어지더니 책은, , 김중혁 특유의 공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도 마지막까지 비교적 유지되는 같아서 좋네요 ^^ 이야기의 때문에 캐릭터의 생동감은 약간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 (뒷표지의 추천사는 인상과 정반대로 캐릭터가 살아움직이는 같다고 했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김중혁의 전작에 비해서 그렇다는거지, 정도면 매력은 충분히 터지고도 남죠.

 

  "(...) 딜리팅은 평화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 최후의 방법입니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골라야 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지금이 그 순간이오. 간절함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인데, 내가 서 있는 곳이 벼랑 끝이오. (...)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딜리팅이 있다면 둘 다 피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출기제성, 딜리팅이야말로 기묘한 책략으로 승리를 따내는 방법이라 생각했소. 그곳은, 딜리팅되어서 가는 그곳은 참 평화롭다면서요."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 그렇게 들었소. 세상의 시름이 없는 곳이라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다른 레이어로 옮겨간다는 사실만 알 뿐, 그곳이 얼마나 평화로운지는 알지 못합니다. 딜리터 비밀문서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평화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니까요."
  (...)
  "평화란 뭘까요, 작가. 사업을 하다보면 하루라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어요. 아주 작은 문제부터 커다란 문제까지, 내가 실수해서 생긴 문제부터 가장 어린 직원이 만들어낸 문제까지, 끊임없이 문제가 생깁니다. 아주 가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날들이 있어요. 밤이 되어서 자려고 누웠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뭐야, 오늘 별일이 없었네?' 아이들 방에 가서 자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을 보고 옵니다.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 날들이 있습니다." (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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