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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가 사랑한 책들 (김유석, 틈새책방,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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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가 사랑한 책들 (김유석, 틈새책방, 2023.)

Dog君 2023. 3. 28. 09:37

 

  우리가 경매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세계적인 경매사인 소더비(그리고 크리스티)의 이름은 꽤 친숙합니다. 가끔 외신에서 무슨무슨 문화재가 얼마얼마의 가격에 낙찰됐다는 식의 뉴스로 여러번 접했기 때문이죠. 작고 낡은 물건 하나에 (우리 같은 보통 직장인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간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번 달 내 월급은 왜 이런가 하는 생각, 어디 저만 했겠습니까 ㅎㅎㅎ.

 

  하지만 제 월급 액수와 상관없이, 저는 서구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경매에 냉소적입니다. 거기서 거래되는 물건 중 상당수가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약탈한 것들일텐데, 그런 것들을 두고 호사스러이 미美와 역사를 논하는 것이 너무 보기 싫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소더비에서 거래된 경매품을 다룬 이 책도 이집트에서 가져온 세크메트 상에 얽힌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소더비 입구에 놓인 상像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봤을 때 꽤 좋은 글쓰기 전략이지만, 소더비 경매에 냉소적인 저에게는 그게 썩 좋은 인상일리가 없지요. 그렇게 저는 짤막한 서론을 읽은 다음 마음 속으로 팔짱을 단단히 낀 채 본론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의 팔짱은 꽤 빨리 풀어졌습니다. 경매장에서 벌어지는, 고서와 고문서를 확보하려는 경쟁 속에 구미 각국의 내셔널리즘적 욕망이 깔려 있음을 이 책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둘러싸고 벌인 영국과 독일의 경쟁은 사실 자국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한 '문화 전쟁'이었다고, 이 책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죠. 영국에서 홀대받는 〈마그나카르타〉가 유독 미국에서 각광받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입증하려는 미국인의 열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역시 이 책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책을 꼭 정색하고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야 뭐, 역사공부가 직업이라 엄근진이 몸에 뱄으니까 그런 거죠;;) 이런 책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에 담긴 열한 개의 에피소드는 일단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그냥 그 이야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독서경험입니다. 예컨대 구텐베르크의 《성경》을 다룬 에피소드는 종교개혁으로 대립한 두 가지 힘 모두에게 영향을 준 인쇄업자 구텐베르크의 역사적 아이러니를 새삼 확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꽤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가십이기도 하죠. (으흐흐흐...) 엄근진 역사학자들은 이런 식의 접근을 '소재주의'라고 부르며 터부시하곤 하지만 역사의 본질 중 하나가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책을 애써 낮춰 볼 이유는 없습니다. 종종 이런 자잘한 에피소드에서 그 어떤 거창한 담론보다 더 큰 통찰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면 경매장에서 어떤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은 역사학과 꽤 닮았습니다. 저는 종종 역사학을 사이코메트리에 비유하는데요, 어떤 공간이나 물건을 보았을 때 그 공간과 물건에 녹아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보아내는 능력(사이코메트리)은 역사학과 경매장 모두에서 필요한 능력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낡고 사소한 물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는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의 소중함은 거기에 귀금속이 치렁치렁 달려있기 때문이라거나 희귀한 성분이 잔뜩 들어가 있다거나 하는 물성(物性)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물건의 가치를 말할 때는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이 책 말마따나 책 귀퉁이의 낙서는 대개는 가격을 떨어뜨리는 흠결이지만 그것이 나폴레옹이 남긴 것임이 확인되는 순간 책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뛰는 것처럼 말이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태도는 꼭 옛날 물건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물건 하나하나, 혹은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에 다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의미를 보아내고 부여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학적인 방식이라고 부르는 거겠죠.

 

  그러니 이 책을 덮으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내 주변의 물건과, 오늘 하루는 어떤 의미였을까?

 

  유럽의 박물관을 돌다 보면, 19세기에 발명된 민족주의가 가졌던 힘의 크기와 방향이 느껴진다. 제국들은 식민지 쟁탈전뿐 아니라 해외의 문화재를 털어와 자국의 박물관에 집어넣는 데 주력했다. 이는 자국민이 제국의 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측면은 그리스의 조각과 건축술,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플랑드르의 회화 들이 각국의 박물관에서 발견된다는 점인데, 자신들이 유럽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계자임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다른 국가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심으려고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언뜻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목적에서는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유럽의 이름날 박물관에서 잘 보존되기는 했지만,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잃고 미아가 되어 버린 작품들과 만난다. 그럴 때마다 기묘한 감정이 든다.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을 왜 자기들이 자랑스럽게 전시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피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제국을 경영했던 국가들의 웅장한 박물관과 문화재가 그들이 피식민지로부터 획득한 전리품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문화재들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71~73쪽.)

 

  노트를 적은 뉴턴의 의도는 소더비의 설명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증명으로 얻어 낸 이론이 고대의 여러 측정 단위와 일맥상통하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뉴턴은 자신이 찾아낸 만유인력의 법칙이 신의 진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뉴턴이 피라미드에 적용된 '왕실 큐빗'을 노트에 옮겨 적고, 다양한 단위들과 교차 비교하면서 또한 성경의 단위인 '신성한 큐빗Sacred Cubit)'과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성한 큐빗'은 《구약 성경》의 '솔로몬 성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구약 성경》에는 드물게도 성전의 너비와 높이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사용된 단위가 바로 큐빗이다. 이 큐빗 단위를 하나님이 주신 단위라고 여겨 '신성한 큐빗'이라고 부른다. 뉴턴만이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연금술사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 배를 만들 지식과 경험이 없었던 노아가 크고 견고한 방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이 그 신청한 측정 단위를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 이 기술을 간직한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400여 년간 노예 생활을 했다. 아마 이집트의 재상을 지냈던 유대인 모세가 그렇게 통치를 잘했던 이유 역시 바로 이 신의 진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진리 덕택에 이집트는 그 위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으리라.
  결론적으로 피라미드 건설 원리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신의 진리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사용된 '왕실 큐빗'을 '신성한 큐빗'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신의 진리에 한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성한 큐빗'은 뉴턴에게는 '현자의 돌' 혹은 '마법사의 돌'과 동의어였음이 틀림없다. 즉 연금술사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 게 아니라 '신의 섭리'임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184~185쪽.)

 

  최근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9세기 초 한 수녀원이 해산되면서 수녀원이 보관하고 있던 각종 문서들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매각되었는데, 그 문서들 중에 다량의 〈면죄부〉가 발견되었다. (...)
  연구자들은 이 〈면죄부〉가 마인츠 대교구에서 판매되었고 인쇄에 사용된 활자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에 사용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 냈다. 즉, 이 〈면죄부〉들은 구텐베르크가 자신의 인쇄기로 찍어 내서 판매한 것들이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과 하나님 말씀과는 가장 거리가 먼 〈면죄부〉를 찍어 낸 것은, 지금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구텐베르크에게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쇄 스타트업을 하기 위해 큰 빚을 짊어졌을 그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의 채무를 갚기 위해서라면, 천국의 채무를 갚을 수 있는 〈면죄부〉를 찍는 일은 《성경》을 인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 (211~213쪽.)

 

교정. 1판 1쇄
16쪽 각주2번 : www.oficialdata.org/inflation -> www.officialdata.org/inflation
73쪽 4줄 : 여겨지질 -> 여겨질
236쪽 밑에서 4줄 : 〈마그나카르타〉 등장한 -> 〈마그나카르타〉가 등장한
241쪽 4줄 : 국립문서보관소 -> 국립기록보관소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모두 "국립기록보관소"로 표기했으므로 표기를 통일.)
252쪽 두번째 항목 : 애설레드와 위탄과의 협약 -> 애설레드와 위탄의 협약
254쪽 두번째 항목 : Sommersett v Steuart -> Somerset v Stewart
254쪽 일곱번째 항목 : The Peoples Charter -> The People's Charter

283쪽 7줄 : 시타텔(Citadel)의 -> 시타델(Citadel)의

333쪽 각주3번 : 니콜라스 쇼뱅(Nicolas Chauvin)의 -> 니콜라 쇼뱅(Nicolas Chauvin)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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