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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V와 명랑소녀 국민 만들기 (이선옥, 책과함께,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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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V와 명랑소녀 국민 만들기 (이선옥, 책과함께, 2022.)

Dog君 2023. 3. 28. 09:40

 

  『사상계』, 『여학생』, 『여원』 등의 잡지를 통해 1960-70년대의 과학기술담론이 젠더를 어떻게 위계화시켰는지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박정희 정권기 저항이데올로기의 아이콘과도 같은 잡지인 『사상계』를 통해 저항적 민족주의마저도 젠더의 위계화라는 측면에서는 지배이데올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한 당대 '여성지'의 대표격인 『여학생』과 『여원』을 통해서는 동물성으로 특징지워진 여성의 신체(그 반대 위치에는 기계신체에 대한 선망이 자리합니다.)를 말할 때는 월경이나 처녀막 등이 불완전함의 상징으로 내세워지는 점과 여성성 내에서도 서구적 여성성과 한국적 여성성이 대비되며 여성성이 다시금 식민화되고 위계화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일견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과학기술 역시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권력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구성물이라는 지적은 이미 일찍부터 있어왔음을 생각하면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꽤나 설득력이 있고 저 역시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이 책을 아주 만족스럽게 읽었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근대 사회가 인간성의 여러 측면을 과학의 이름으로 위계화한다는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는 아주 낯설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남성성을 리더십, 합리성, 진취성 등과 연결하고, 반대로 여성성을 말할 때는 신체의 불완전함(생리나 처녀성 등)을 강조하거나 소극성, 감성 등을 연결짓는다는 주장은, 역사와 젠더에 관심이 많은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의 잠재적인 독자가 될) 사람에게는 이제는 꽤 익숙합니다. 따라서 이 책을 고를 때의 저는 이 책의 전체적인 결론보다는 이 책에서 다룬 텍스트들의 생산 경위가  규명된다거나 혹은 이러한 텍스트를 가능케 한 힘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드러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글쎄요, 이렇게 텍스트에만 국한된 분석이 저로서는 썩 흡족하질 않습니다.

 

  무엇보다 해석 그 자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 책은 『사상계』의 남성성이 허무와 우울 같은 감성으로 특징지워진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건 리더십과 진취성이야말로 남성성의 전형이라고 했던 큰 틀의 주장과 배치되는데요, 이에 대해 이 책은 허무와 우울의 남성성은 (여성성의 특징이라고 이야기되는) 감정과 감성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것 혹은 과학담론으로 주조되는 남성성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일견 타당한 듯 보이는 해석입니다만, 이런 식이면 해석하지 못할 것이 무어 있나 싶기도 하고, 저자의 주장이 도리어 도식화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설혹 당대의 텍스트에서 진취적인 여성상이 등장한다 해도, 저자의 주장은 결코 흔들리지 않겠지요.

 

  저는 1960-70년대 젠더담론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를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야기를 가능케 한 힘과 조건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과 그 조건을 정확히 포착해 낼 때 우리는 비로소 한국 현대의 젠더담론과도 정면대결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 않고서 1960-70년대에 과학의 이름으로 젠더 위계는 더 강화되었다...는 정도의 결론만 얻어갈 수 있다면 어떤 독자에게 그것은 그저 동어반복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텍스트의 맥락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는 이 책의 서술방식은 저에겐 다소 불만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불만은, 텍스트의 맥락을 더 중시하는 역사학의 방법론에만 익숙한 저의 몹쓸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연구방식 역시도 분명히 그 나름대로의 의의와 전략이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입술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제 생각이 젠더연구와 텍스트 분석에 대해 무지한 저의 몹쓸 편견임을 누군가가 통렬히 지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편견 때문에 여러번 망해봤잖습니까...) 이 책이 작년 말에 나왔으니 이제 곧 학술지에서의 전문적인 서평들이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 서평들을 통해 저의 생각이 좀 더 다듬어지고 도톰해질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허무주의적 주체인 남성 인물들이 『사상계』 남성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허무와 무기력에 빠진 지식인 주체의 자기각성을 서사화한 많은 작품이 우울증적 주체로서 전후의 청년-남성주체의 좌절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청년-남성주체의 서사와 여성주체의 서사는 과학주의담론하에서의 젠더의 재배치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근대적 남성 우울증적 주체는 과학주의담론에 등장하는 이성적·합리적 주체라는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전반기를 거치는 동안 이 두 남성 주체는 혼돈과 갈등을 빚는 것으로 보인다.
  (...) 전후 현실의 남성성은 더욱 불안해지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이성으로 무장할수록 현실 남성주체의 우울증은 깊어지게 된다. 물론 『사상계』는 1950년대 후반을 거쳐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잡지이므로 하나의 잡지가 단성적 목소리로 구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떠한 주장이 담론적 경쟁을 통해 지배담론으로 형성되는가를 살펴본다면, 이 잡지는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담론과 우울증적 남성 주체가 중심이 되는 서사의 투쟁에서 과학적 합리성이 지배담론으로 점차 부상하는 담론적 특징을 드러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손창섭, 장용학, 김성한 등의 실존주의 문학이 보여준 우울증적 남성 주체의 합리주의 철학에 대한 거부, 거대 세계에 맞선 단독자의 실존에 대한 탐색이 점차 냉전의 논리와 과학주의적 합리성으로 포섭되어가는 과정으로 판단된다. (75~77쪽.)

 

  기술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우주적 정체성이 혼종되고, 다양한 잡종성이 경합하는 『학원』의 SF적 상상력은 아쉽게도 제국주의적 가부장담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지구/우주, 인간/동물, 인간/기게의 이분법에서 전자의 특권적 지위를 재강화하고 남성주체를 보편적 주체로 재구성한다. 괴물은 새롭게 등장한 동물성과 기계성의 결합과 변화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위협요소를 모두 제거한 인간 남성주체의 우월적 위계를 자연화하는 방식으로 젠더정치학이 동원된다. 과학도 객관적 지식체계라는 신화는 사라지고 현대의 이론들은 객관성으로 인식되어왔던 과학 역시도 권력관계가 반영된 담론적 구성물로 다루어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원』의 1960년대 과학담론을 분석해보면 과학이라는 지식체계가 사실은 국민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담론임을 읽어낼 수 있다. (123쪽.)

 

  1970년대에 부각된 불량소녀담론과 수치심은 당시의 통제적인 국민 만들기와 관련 있어 보인다. 노동력으로 과잉 구성되는 남성주체가 기계신체에 대한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반면, 감정과 피 흘리는 동물적 육체를 지닌 여성성은 수치심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적 감정과 육체가 수치심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1970년대 소녀성의 구성에 관련된다.
  (...) 1970년대 남성성은 100% 노동력으로 기능하는 생산성담론의 주체가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남성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계신체를 선망하고 기계신체에 대한 상상적 통일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모두 혐오하고 제거해야 한다. 로봇 태권V를 꿈꾸며 인공의 국민적 신체로 성장하는 소년과 달리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특징들은 여성성으로 구성된다. (...) (180~183쪽.)

 

  서구화를 근대화로 여긴 『여원』의 과학주의담론들은 생활의 과학화라는 생활개선 의지를 보여주지만, 내적 논리를 살펴보면 단순한 생활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생활과학담론들은 기술산업사회로 급속하게 진입하기 위해 공장의 생산시트템을 가정생활에 이식하고 최적화와 계량화, 표준화 및 통계화하는 방식을 가정에 그대로 적용시킨다. 이를 수행하는 알뜰주부이게 포상하는 동기부여 방식도 테일러주의 전파의 방식과 동일하다. 이 담론들의 문제점은 생활의 과학화, 합리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이러한 과학화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배제되어 있다는 데 있다. 생산시스템을 위한 내부 식민지를 재구성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 서구적 근대화를 지향했던 『여원』의 담론에서는 합리적·이성적 여성성이 이상적 여성성으로 제시되고 감정적·낭만적 여성성은 하위위계화된다. 이 담론적 투쟁에서 실제 여성들의 경험과 감정은 발화되었다가 다시 침묵되는 과정을 겪는다. 문제는 여성의 경험정 현실이 베재될 뿐만 아니라 여성성 자체가 만드는 위계가 어떤 여성성을 선택해도 여성을 이중모순의 곤경에 빠뜨린다는 데 있다. 헤게모니 여성성을 서구적인 합리적·이성적 여성성으로 구성하게 되면, 실제 가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감정적 배려가 하위위계화되는 모순적 여성성을 구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육과 살림살이에서 요구되는 정서적 역할이 따뜻한 어머니, 헌신적인 어머니상으로 칭송되는 한편, 평가절하되는 가치의 혼란이 생기게 된다. 게다가 가정역할을 부불노동이어서 여성노동의 저임금을 구조화하는 내부 식민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근대자본주의의 내부 식민지를 구성하는 젠더정치학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시기가 1960-7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재생산영역의 역할에 필요한 감정적 여성성은 스스로 낮은 가치를 내면화하는 식민성의 성격을 갖게 된다. (234~235쪽.)

 

교정. 1판 1쇄
68쪽 12줄 : 강경애 「마약」을 -> 강경애의 「마약」을
75쪽 밑에서 5줄 : 남성 주체는 -> 남성주체는
108쪽 밑에서 7줄 : 포스트데스(post-desth) -> 포스트데스(post-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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