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백치라 불린 사람들 (사이먼 재럿, 생각이음, 2022.) 본문

잡冊나부랭이

백치라 불린 사람들 (사이먼 재럿, 생각이음, 2022.)

Dog君 2024. 5. 17. 17:36

 

  이 책의 주된 주장은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18세기 정도까지만 해도 "가족의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대상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호받고 인간성을 박탈당하지 않"(174쪽.)았던 '백치'가 이후에는 "지역사회에 불편을 끼치는 위험하고 역겨운 존재이므로, 시설에 보내 치료를 받"(287쪽.)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런 주장을 접하게 되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듭니다. '영구는 과연 행복했을까?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아마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할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 책이 중세 이전의 사회를 목가적이고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런 식으로 과거를 마냥 이상화하고 낭만화하는 실수는 역사(과거)를 논할 때 흔히 발견됩니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는 둥, 과거에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 말이죠. 그런 논리들은 일견 체제전복적으로까지 보이지만, 사실은 끝까지 밀어붙이면 작금의 권력관계를 역사적으로 추인하는 논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경청할 주장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백치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 및 지식이, 따져보면 인간을 구분하고 등급매기는 태도 및 지식과 상통한다는 지적이 그러합니다. 그러니 이 책이 '백치'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을 구분하고 등급매기는 태도가 객관과 지식의 이름으로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겠죠. 저 역시도 백치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비정상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제 생각 역시 여차하면 인간을 등급매기는 논리가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물론 지적장애가 있고 없고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죠. 다만 그것이 장애나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쪽으로 생각을 틀어야겠다는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뭐, 말은 이렇게 합니다만, 제 생각도 아직은 막연합니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거든요. 그러니 아래와 같은 부분에는 밑줄을 거듭 그어두고 앞으로 계속 잊을만 할 때마다 되새겨야겠습니다.

 

  (...) 종종 우리는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자문한다.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무언가를 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공감할 줄 알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중적이거나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도 대답이 될 것이다. 이 모든 대답은 백치와 치우the imbecilic, 우둔the stupid, 아둔the dull, 노둔, 천치 등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 (대개 아무 명분 없이) 사용될 수 있다. 인간이란 인간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존재라고, 우리는 거의 아니 전혀 말하지 않는다. (...) 이 책은 지적장애인을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단계별 능력 검증 없이 있는 그대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그들이 완전한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와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판사 앞에서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호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나 유형에 따라 지적장애인에게 버거운 분야들도 있다. 이런 사정을 연민이나 적의를 품고 배제할 구실로 여기지 말고, 유연성을 발휘해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 수용할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12~13쪽.)

 

  법정에서 증인들은 백치 피고인이 다른 범죄자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들은 백치 피고인이 가족과 동료, 이웃과 더불어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정직함과 근면함 같은 좋은 성격과 도덕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백치 피고인이 단순히 한 명의 백치가 아니라, 18세기 런던의 전형적인 지역사회 안에서 사랑과 우정, 친분을 나누며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여기서 핵심은, 피고인이라도 백치는 근본적으로 위험하지 않고 앞으로도 중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믿음을 판사와 배심원, 증인들이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가혹하긴 했어도 18세기 사법제도는 관대한 처분이나 무죄 방면을 내릴 수 있도록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고, 이로 인해 백치로 간주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문젯거리였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므로 관대한 처분을 받을 만하다고 여겼다. (...) (53~54쪽.)

 

  (...) 18세기 말까지도 백치 상태에 대한 근대 초의 법 관념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민·형사 법원 모두에서 그런 관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백치 여부는 그 사람의 얼굴과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체로 백치는 이상하게 보이기는 해도 해롭지 않았으므로 가족 구성원과 친구들, 이웃의 보호를 받으며 가족과 지역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았다. 국가를 대신하는 법을 그들의 삶에 개입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형사 법원은 전반적으로 백치 피고인에게 무죄 선고나 관대한 처분을 내렸으며, 민사 법원은 국가 개입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해결을 선호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면 착취와 부패, 비공식적인 지원망의 붕괴로 그런 안정된 해결책과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로 인해 민사 사건의 경우 백치에 대한 법적 개입과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된다. 형사 법원에서는 1800년대 초 일부 관대한 판결이 있기는 했지만 비슷한 경향으로 나아갔다. 전반적으로 판사와 배심원들은 백치 피고인에게 관용보다는 보다 무거운 판결과 선고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백치들의 권리에도 점점 더 의문이 제기된다. (57~58쪽.)

 

  (...) 1758년 칼 린네Carl Lennaeus가 출간한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는 인종과 '인간'의 유형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는 최초의 획기적인 시도였다. 린네 분류법의 강점은 "효과적으로 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하고, 자연에 관한 지식을 살아 있는 지식으로 만들며, 그 지식을 전 세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었다. 따라서 화이트와 뱅크스는 "지역 정보원과 본국의 통신원, 완전한 유럽 문단(을 아우르는) 지식 공동체"의 두 연결 고리였다. 범주화 과정에서 지식 공동체가 가장 크게 관심을 보인 것은 변칙 사례였다. (...) 특히 두 인간 유형이 자연과학자들을 괴롭히고 당혹시키면서 관심을 끌었다. 두 유형 모두 체계화된 인간성의 구성요소에는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첫 번째 유형은 새로 발겨한 땅에 살고 있는 '미개인'이다. 이들의 관습과 생활방식과 말투는 '문명화된' 유럽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서, 이들을 만난 유럽인들에게 끊임없이 놀라움과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유형은 백치와 치우 집단이었다. 이들의 외모는 사람이었지만 계몽주의자들이 규정한 인간의 필수 조건에는 상당히 결핍된 것 같았다. 그 조건들이란 추리력, 추상적 사고능력, 언어, 사회적 관계의 형성 능력, 감수성, 지적 발달 능력, 주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이 두 인간형의 변칙적인 특성은 불가피하게 자연 과학즈들로 하여금 그 둘을 비교하게 했으며, 더 많이 바라보고 비교하면 할수록 그들이 발견하고 믿었던 둘의 공통점과 명백한 유사성도 많아졌다. 장신구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사소하고 독특한 일에만 몰두하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호기심도 갖지 않는 모습은 오랫동안 백치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 (110~111쪽.)

 

  18세기 여행가들의 기록은 처음에는 친숙한 백치(그리고 치우)와 새로 알게 된 미개인(그리고 야만인)을 단순히 비교하는 정도였지만, 점점 이 둘을 연결하여 인간의 지위로까지 담론이 옮겨가고 있었다. 당시 유럽인이 유럽 밖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능과 인종을 점진적으로 병합시킨 관념에는 대단히 중요한 세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첫째, 18세기 여행기는 대단히 열광적으로 읽힌 매우 영향력 있는 장르였다. 이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이 대중에게 신속하게 흘러 들어갔다. 둘째, 여행과 탐험에서 관찰되고 경험된 사실들이 새로 확인된 물적 자원과 함께 18세기 식민지 건설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어, 땅은 물론이고 인적, 물적 자원까지 탈취하는 수단이 됐다. 그러자 유럽으로 데려온 식민지 원주민들의 지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즉, 유럽의 신흥 제국에서 식민지 원주민의 법적 지위는 무엇이며, 제국이 식민지를 통치하고 그곳의 자원을 착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새로운' 땅에 사는 원주민에 대한 여행가의 기록과 묘사는 전 지구적 식민체제를 마련하고 그 토대가 되는 법적 틀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법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셋째, '인간 과학Science of Man'과 사회이론을 체계화환 계몽주의 사상가와이론가들은 유럽 밖으로 거의 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여행가와 탐험가, 박물학자, 민속학자, 동물학자, 또 탐험 항해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다른 이들의 보고서와 관찰을 통해 비유럽 사회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기원과 다양성, 인종 간 차이, 인간의 정신 발달과 사회 발전의 연관선에 관한 사상으로 긴밀하게 통합됐다. (...) (119~120쪽.)

 

  (...) 백치에 대한 관념은 18세기 초에 정립된 모습 그대로 유지됐다. 즉, 백치는 고립된 삶을 살며 자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일상적인 거래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이용당하기 쉽고, 공통된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고, 이따금 연민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백치의 또 다른 모습은 가족의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대상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호받고 인간성을 박탈당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은 백치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관념을 공유하는데, 이런 유형의 지식은 엘리트 이론가들이 배타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기보다 (예컨대, 침 흘리는 백치의 모습을 다운이 의학적으로 설명한 것처럼) 법과 의학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백치로 묘사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해서 크게 불어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치우, 기인, 행실이 문란한 사람, 범죄자 및 범법자가 백치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대개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따금 눈에 띄지 않아 위험스럽기까지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학적 권위를 어떻게 얼마나 내세울 것인지 두고 의료계는 의견이 갈렸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많은 과학적 사실을 제시하는 의료계가 판결을 주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판을 건너뛸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곧바로 정신의료시설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과 헌신을 믿는 영국에서는 설사 개인이 이용당할 위험이 있더라도 의학이 법적 권위에 도전하면 안 된다는 저항에 부딪쳤다. 의료인 중에도 이런 사고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치우와 이따금 백치조차도 소소한 삶이나마 원한다면 제 삶을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174~175쪽.)

 

  (...) 예의범절의 변화와 선거권 및 교육의 확대, 인도주의자의 욕망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백치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바라보게 했다. 그들은 과거 지역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아도 인정받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화젯거리가 되어 관심을 끌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관찰 대상이 됐고, 그 결과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지역사회에서 남과 다른 유형으로 분류되어 거리를 둬야 할 인물이 됐다. 백치는 자유롭고 이성적 시민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과 내면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이상을 모두 위협하는 존재가 됐고, 더 이상 웃음 제공자는 아니었다. 보호 시설의 높은 담장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싶은 감수성 예민한 근대인에게 유혹적인 방법이었다. (214쪽.)

 

  보편적 시민권을 향한 급진적 운동이나 반동적으로 일어난 도덕성의 재무장 운동과 같은 강력한 여론 흐름은 모두 백치에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두 집단 모두 빈민과 무능력자에게 적극적인 자기 계발과 사회 참여를 요구했다. 하지만 격렬한 이념 경쟁 속에서 도덕성 또는 지능 향상에 저항하거나 둔감한 사람들이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백치와 치우로 간주된 사람들이 사회문제로 여겨지면서 처음에는 배척됐다가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 결국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새로운 내집단이 형성되면 외집단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다른 집단을 포섭하기 위해 투쟁하게 되는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여성인권운동과 남성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 통신협회의 싸움이 그런 경우였다.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들은 무해한 바보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될 수도, 반동적으로 일어나 도덕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전도사들의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위험은 부정적인 여론이라기보다 무관심이었다. 이제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시설로 흘러 들어가 모든 지위를 잃고 만다. (262~263쪽.)

 

  이제 사회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18세기에는 평범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 일원으로 인정받던 백치와 치우가 이제는 시설 안에 있어야 하는 환자였다. 의학계는 이들 위에 군림하며 이들을 식별하고 통제하고 치료할 권한을 확보했다. 사회는 시설 안 백치와 치우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끊고 의학계에 의존했다. 여러 요인들이 지적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사회에서 조용히 밀려나 시설 담장 뒤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새로운 사고방식에서 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급진 좌파 정치인들은 완벽하고 조화로운 환경에 알맞게 적극적으로 변신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시민을 원했다. 반동적으로 일어난 보수주의적 복음 전도자들은 차분하게 성경을 읽는 독실한 믿음과 도덕성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을 원했다. 인류학자들은 미개하고 문명화되지 못한 어두운 과거의 모습을 미성숙한 백치에게서 발견했다. 소설가와 시인들은 백치를 연민의 대상이나 이국적인 음란한 사람으로 인식하는등 그들의 단면만 봤다. 의료인들은 법정과 시설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세할 새로운 기회로 여겼다. 전반적으로 사회는 백치를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지역사회에 불편을 끼치는 위험하고 역겨운 존재이므로, 시설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하는 편이 안전하며 그곳에서 사는 것이 그들에게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백치를 동정하고 이따금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떨어져 있고 싶어 했다. 19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 백치들은 신설된 정신의료시설의 담장에 가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난과 배척이라는 높은 은유적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었다. (286~287쪽.)

 

  IQ 개념은 정신 결함 연구가 과학의 지배를 받는 계기가 됐다. 정신박약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시대에, IQ는 민족과 문화를 막론하고 모두가 신뢰하는 이른바 지능이라는 것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지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정신 결함의 위험성을 식별한 가능성이 커지고 신비감이 줄어들어 해결 가능성도 커졌다 IQ 개념은 비네의 예상과 달리 지능 잠재력의 일반 지표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럽과 미국에서 IQ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지능은 심리학과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머리에서 끄집어내어 완벽하게 측정 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제 기만적인 도덕 박약자는 물론,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찾아낼 수 있었다. (과학 안에서 이들이 숨을 곳은 없었다.) 심리학자들이 IQ 개념을 적극적으로 유포한 데에는 일부 사람들이 철학과 희망 사항의 결합으로 심리학을 조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리학 같은 정밀과학의 연구자로 보이고 싶은 간절함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IQ 검사에 담긴 문화적 편견,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불인정, 자의적 방법론 등은 IQ 개념을 반가워한 교육계, 사회과학계, 의학계가 검사의 확실성과 기능의 유용성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눈에 띄지 않았다.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은 IQ 점수가 높고, 교육받지 못한 빈민층의 점수는 낮다는 문화적 편견은 지능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 (309~310쪽.)

 

  (...) 일단 사회가 지능만으로 특권과 신분, 지위를 배정하기 시작하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격리하는 과정이 인구 전체로 확대될 것은 자명하다. 능력주의는 공정성과 가치, 심지어 평등이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강화되지만, 살제로는 훨씬 견고한 새로운 불평등한 계층을 만들어낸다.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치우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시설로 보내지거나 정신결함법에 따라 감시와 후견인 제도로 사회에 의미 있는 최소한의 참여조차 박탈당했다. 가장 확실한 외집단이 사회에서 잊히고 거의 보이지 않게 되자, (지능이 낮아 사회에서 둬처진 사람들로 구성된) 새로운 외집단이 등장했다. 이에 톰슨은 "우리의 후손이 새로운 세상에서 더 어리석은 사람들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했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은 정신결함법으로 규정한 결함자가 아니었다. 정신결함자가 떠난 자리에 새로 들어온 지능이 낮은 사람들을 의미했다. 영은 '능력주의 사회가 얼마나 지독하고 허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또 부자와 권력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는 "얼마나 그들이 오만해질 수 있는지, 또 그것을 공익을 위한 것으로 믿는 경우 그들이 얼마나 뻔뻔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지"도 경고했다. 영과 톰슨 모두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지능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가질 주도권hegemony에 커지는 불안감을 반영했다. 이것은 19세기 말부터 만연한 지능이 낮은 우둔한 사람에 대한 신랄한 비난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의미였다. (343~344쪽.)

 

  제이 보고서Jay Report는 백치라 불린 사람들의 정신의료시설과 정신결함자 시설이었던 콜로니, 그리고 정신손상으로 여겨지던 이들이 수용됐던 정신병원 시대가 끝났음을 분명하게 알렸다. 보건 분야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킹스 펀드King's Fund는 1980년에 낸 《평범한 삶An Ordinary Life》에서 정신손상자들이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격리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주민들과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유형의 주택에 거주하며 같은 의료와 교통, 서비스 시설을 이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장애인에게도 평범한 생활을 할 자격이 있음을 명확히 하는 이런 주장은 당시 일반 시민과 시설의 정신손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벌어져 있던 간극의 깊이를 보여준다.
  (...)
  의료모델은 종식된 것으로 선언됐다. 이제부터는 사회모델이 보편화된다. 생활방식의 이런 변화는 대중의 인식 변화를 요구했다. 따라서 늘 그렇듯이 이름 또한 바뀌게 된다. 1990년대부터 '정신손상자'라는 용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핸디캡handicap은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을 방해하는 일련의 사회적 장애물(시설, 접근 불가한 환경, 사회적 적대감)로 정의됐다. 장애disability는 내면적이며 학습, 적응, 발달 능력에 어려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올바른 지원은 이런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곤란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은 권리를 지닌 한 개인이자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 장애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새로운 공동체시대에 이들은 더 이상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은 이들이 아니라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349~351쪽.)

 

  이런 대대적인 사회변혁은 완벽할 수가 없고 130년간 지속된 시설수용 조치와 명예훼손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지역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때조차 보이지 않는 제도적 형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적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지낼 수는 있지만 지역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을 때가 그렇다. 그들 대부분이 지역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느끼는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 지역사회가 이런 식으로 말해진다면, 즉 "지적 장애가 없는 '우리'가 지적 장애가 있는 '그들'에게 '접근'하도록 지원하는 공간을 의미한다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일련의 과정은 일련의 삶의 질을 평가하고, 위험을 분석하고, 재원을 마련하고, 개인에게 맞는 기획을 거쳐 관리하고 협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일종의 포용적 '시혜 모델'인데, 여기서는 지적장애인이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지역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 (...) 2000년대에 들어와 우려스러운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민간 시설과 NHS 산하 '평가 및 치료 전담반'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시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의료 시설에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수천 명의 학습장애인이 '공격적인 행동challenging behaviour'을 보인다는 이유로 무한정 갇혀 있다. 그곳에서 끔찍한 학대 사건과 방치, 억류, 이따금 사망 같은 끔찍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잔혹했던 시설 체제가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위협이 존재하거나 그 위협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지는 몰라도, 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와 낡은 시설병원의 종식은 마땅히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다. 놀랍게도 수많은 성공담이 쏟아지고 있으며, 1980년대에는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꿈에 불과했던 '평범한 삶'을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됐다. 개인주의 삶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원금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학습 장애 배우들이 시청렬유 가장 높은 시간대에 편성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에 등장한다. 자기 옹호자들이 의회와 유엔에서 연설한다. 전세계적으로 자기옹호운동이 활발하다. (358~360쪽.)

 

교정. 초판 1쇄

12쪽 밑에서 6줄 : 말하지는 -> 말하지

12쪽 밑에서 6줄 : 이 대답에서는 백치 집단our group이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원문을 생각하면 번역이 어색한 것 같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원문은 "the one answer would not exclude our group")

30쪽 사진캡션 : JohnDonaldson -> John Donaldson

41쪽 사진캡션 : William wake -> William Wake

44쪽 5줄 : 먹으로 -> 먹으러

75쪽 14줄 : 마조리 -> 마저리

189쪽 밑에서 8줄 : 유모 -> 유머

189쪽 밑에서 7줄 : 유모 -> 유머

286쪽 밑에서 10줄 : 도움에 될 -> 도움이 될

309쪽 9줄 : 지능이라 것을 -> 지능이라는 것을

342쪽 10줄 : 마이클 영도Michael Young -> 마이클 영Michael Young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