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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얼룩소, 2024.)

Dog君 2024. 5. 18. 11:13

 

  김진주(가명)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생존자)입니다.

 

  사실 저는 사회적 공분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당사자가 쓴 글을 무조건 신뢰하지만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약간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경험의 충격이 강할수록 정밀하고 이성적인 탐색과 분석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충격이 분노와 증오라면 더하겠죠.

 

  하지만 출간 이후 몇몇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만난 저자의 모습이 제 마음을 바꿨습니다. 전무후무한 여성혐오범죄(혹은 강력범죄)의 피해자인 저자는,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피해자다움에 갇히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법체계가 피해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주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책 중간에 들어간 '인터미션 인터뷰'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전문가와의 대화를 담은 인터뷰는, 분노를 쏟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냉정하게 이 상황을 직시하게끔 합니다. 사법체계의 맹점을 고발하면서도 그런 체계가 어떤 연유로 형성·유지되었는지를 따져 물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합니다. 이 인터뷰가 없었다면 이 책은 흔하디 흔한 분노의 텍스트에서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뜨겁게 분노를 뿜어내는 동시에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케 하니 이 책은 뜨거움과 냉정함을 동시에 갖춘 셈입니다. 이러한 구성은 아마도 기획과 편집의 힘이겠죠. 그래서 저는 저자는 물론 출판사와 편집자에게도 아낌없이 칭찬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여성혐오범죄 혹은 강력범죄에 맞서는 태도 이상의, 삶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라는 면에서도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상황에 직면하고 또 각각의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그러한 대응은 종종 어렵고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고 어렵다 해도, 그러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애써 모른척하고 외면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겠죠. 내 앞의 일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대하는 우리의 가장 성숙한 태도겠죠.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뭐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러다가 시사 프로그램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범죄자는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이후로는 가해자를 이해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죽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범죄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가해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범죄는 나날이 발전했으니까. 너무 좌절스러웠다.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 손에 죽겠구나. 그 순간, 난 이제 더 이상 평범하게 살기 어렵겠단 생각을 했다. 길거리에 있는 모두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웃으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도대체 왜 판도라의 상자를 굳이 자처해서 열었을까 혼자 자책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열었고 연 김에 활짝 열어야 했다. 내가 아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근데 최근에 나온 사건도 아니고 1심이 끝난 사건에 누가 관심을 가져주기나 할까?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공이었던 나는 알았다. 지금 시점에서 공론화를 시키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거란 걸. 심지어 지역도 부산이라 공론화가 엄청나게 어려울 걸 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해야만 했다.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이런 억울한 일을 겪게 하기 싫었다. 그만큼 내가 너무 아팠으니까. (72쪽.)

 

김진주 : 그 사건을 겪게 된 것 바꿀 수가 없잖아요. 아직 타임머신은 개발되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고립이 되고 우울증도 좀 많이 겪고 계속 남들이랑도 잘 안 만나고 이렇게 했었는데 이게 좀 길어지다 보니까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은 거예요. '우울하다'라는 고민을 하다 보면 그 우울한 거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고민이 얼마나 가성비가 떨어지냐는 생각을 했어요. 바꿀 수가 없으니까요. 혼자 스스로 늪에 빠지는 걸 자처하는 거니까요. 그러고 나서 이제 그러면 내가 여기서 바꿀 수 있는 걸 먼저 바꾸자, 그런 마음으로 이제 이런 제도를 바꾸거나 피해자들이랑 연대를 하자고 생각했었죠. (77~78쪽.)

 

  (...) 언론에서 다뤄지는 신상공개는 모두 언론의 주목을 받아서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는 개최되지 않는다. 독립적인 기관들이 언론에 영향을 받아야만 움직인다니 기관들이 마비된 것 같았다. 특정강력범죄면 무조건 심의를 한다던가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프로토콜, 시스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엄청나게 찾아봤다. 영상을 찾아봤는데 한 영상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상공개를 하면 속은 시원할 테지만, 그렇게 하면 2차 가해를 받을 가해자의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장난하는 건가. 가해자에게 앙갚음하려고 피해자들은 신상공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견은 기껏 용기를 낸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 모독이다. 누구를 헐뜯기 위한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냐고 하는데 당연하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경우 공개한 적이 성범죄를 제외하곤 없기 때문에 그러한 기능만 있는 것이다. 미수의 범죄는 더더욱 그러했다. 심지어 가해자의 가족이 입을 2차 가해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같잖았다. 2차 가해와 관련된 대응 방안을 구축하면 되는 건데, 그런 이유로 제도를 반대한다니, 나 원 참. 일 만들기 싫으면 솔직히 얘기를 하지. 애초에 신상공개는 특히 악질적인 범죄자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사회에 절대 나오지 않는 범죄자만을 공개하고 있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은 범죄자 신상공개를 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헐뜯는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 거다. (...) (138~140쪽.)

 

오지원 :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는 1953년 제정형법에서부터 규정이 있었고 단 한 번도 개정이 안 된 규정인데 판사가 형을 정함에 있어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고려하라고 되어 있어요. 모든 양형요소가 피고인 측의 사정인데 이것은 꼭 감경을 해주라는 의미로 규정된 것은 아니에요. 형사처벌의 목표가 응보와 범죄의 예방에 있는데 예를 들어 연령이 어리고 초범이고 피해정도가 크지 않고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고 범행 후에 지극히 반성하는 태도를 봉니다면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더 심한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기회를 줘라 이런 의미도 있고, 반대로 자기 행동에 충분히 책임질 나이이고 범행 동기도 지극히 계획적이고 범행 후 도주하고 증거인멸하고 그런다, 그러면 형을 가중하라는 의미도 있는 거죠.
  그런데 예전에는 성폭력 사건 같은 경우 합의만 하면 친고죄라 그래서 아예 처벌도 안 되고 또는 집행유예가 내려지니 양형이 너무 낮다는 비판이 많았죠. 그런데 판사들은 피고인들 사이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되거든요. 즉 유사사건에서 다른 판사들이 어떻게 형을 선고하는지 균형을 맞춰야 하는 거죠. 그런데 기존에 양형관행 자체가 워낙 낮게 형성되어 있다 보니 형평성을 맞추면 계속 낮은 상태로 갈 수밖에 없고 그러니 기준을 만들자, 즉 우리가 기존 사례들에서 양형의 평균값을 내보고 동시에 국민 정서까지 감안해서 양형기준을 예전보다는 좀 높게 만들자. 그래서 이제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범죄별로 쭉 만들게 된 거죠. 그래서 이렇게 복잡해진 건데, 문제는 아무리 기준을 만들어도 개별 사건에서 양형심리라는 것이 실제 검찰에서는 구형의견만 말할 뿐 피고인에 대한 가중사유는 거의 주장을 않고 피해자의 입장도 전달을 않고, 피고인 측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감경사유를 깨알같이 주장하는데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감경사유로 삼다 보니 피해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는 어? 이거 너무 부당한데 싶은 거죠. 특히 피해자한테는 하나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는데 판사들 앞에서 반성한다고 했다고 감경사유에 적어놓으니 '아니, 왜 내 얘기는 하나도 안 들어보고 뭘 반성했다고 자꾸 인정을 해주냐?' 이렇게 되는 거죠. (199~201쪽.)

 

오지원 : (...) 피고인 주장 위주로 법정에서 다뤄지는데, 2019년 전체 성범죄 4824건 중 53.9%가 기본영역에서 형이 정해지고 감경영역 안에서 형이 정해진 건이 41.8%, 가중영역 안에서 형이 정해진 건이 4.3%로 감경영역에서 정해진 건이 가중영역에서 선고된 것보다 10배 정도 많다는 거죠. 이게 판사들이 10배 이상 피고인들만 생각한다 이게 아니고 피해자들의 절차적 참여권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데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면 거기다가 아까 우리 열람등사권, 얼마나 중요해요. (212~213쪽.)

 

오지원 : (...) 거의 모든 법조인이 피고인 인권 위주로만 교육알 받았죠. 그래서 피고인의 인권은 너무 익숙하고 그 절차는 아주 체계가 잡혀 있는데 피해자의 권리는 낯설고 잘 모르는 게 현실이에요. 이러다 보니 실제 변화는 아주 더디죠. 범죄피해자보호법 같은 경우는 형사소송법만큼 검사, 판사들이 몰라요. 이 법에 교육 훈련 조항이 있잖아요. 그러면 범죄피해자에 대해서 법원 판사들도 교육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편사들 머릿속에서 이미 피해자는 진술 오염이 되면 안 되는 사람, 위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걱정이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박혀 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법조인들이 법대를 들어가서 로스쿨이든 사법시험이든 법조인이 돼서 활동할 때 피고인 인권 중심의 교육 외에는 받은 게 없으니 피해자한테 절차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피해자의 권리와 진술 오염을 막아야 하는 측면이 조화롭게 달성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교육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거는 기존 관행대로만 움직이고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예요. 결국 피해자를 증인으로서 위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니까 열람등사권이라는 게 보장되기도 어렵고 피해자 진술권이라는 것도 사실상 아무리 규정을 해놔도 형해화가 되는 거예요. 근본적으로는. (218~219쪽.)

 

  피해자는 가면 갈수록 PTSD가 심해지고 있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피해를 당한 걸 숨기려고 하고 애써 괜찮은 척하다 보니 마음은 곪고 있었다. 피해 회복에는 많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신이 겪은 일이 가십거리가 되는 현실에 피해자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그 마음은 백번 이해가 간다. 범죄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모두 궁금해하니까. 언니와 같이 산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언니마저도 감정전이가 일어나서 피해자보다 더 심각한 PTSD 증상들이 발현됐다.
  감정전이는 오래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접했던 이야기혔다. 경험을 같이 공유하다 보면 오히려 당사자보다 더 심하게 PTSD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의 PTSD는 그나마 수월하게 받아들이지만 피해자의 가족이 겪는 PTSD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피해자의 가족들을 보면서 '제3의 피해자'라는 용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피해자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니란 거다. 피해자의 가족, 지인 그리고 심지어 피해자를 치료하는 이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한 범죄의 피해는 피해자의 명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범죄피해에 대해서 너무 단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몇 달이 지나고서도 이 피해자는 공론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했고 자료마저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241~242쪽.)

 

교정. 초판 2쇄

100쪽 2줄 : 문단 사이 띄우기

101쪽 밑에서 1줄 : 문단 사이 띄우기

200쪽 밑에서 7줄 : 에전보다는 -> 예전보다는

203쪽 밑에서 4줄 : 문단 사이 띄우기

218쪽 밑에서 7줄 : 진술오염을 -> 진술 오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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