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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로버트 J. C. 영, 박종철출판사, 20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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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로버트 J. C. 영, 박종철출판사, 2005.)

Dog君 2009. 1. 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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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뿔도 모르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보다 더 모르던 시절에 읽었던 책을 지금 시점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포착하지 못했던 걸 잡아내거나 잘못 독해했던 부분들을 교정하는 재미(랄까 씁쓸함이랄까)가 꽤나 쏠쏠한 편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건 복학 후의 전공수업에서였는데, 아마 07년 1학기였던가 그랬을 것이다. 만만치 않은 두께에 난해한 직역투의 문장 등으로 인해 상당한 난이도로 다가왔던 책이었다. 어찌어찌 내가 필요한 극히 일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2. 내용은 크게 세 부분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다섯 장chapter은 내용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개념을 정리하고 있고, 그 이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났던 포스트식민주의적 실천의 역사적 궤적 정리, 마지막으로 푸코와 데리다를 분석하고 있다. 물론 워낙 다양한 분야와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목차만 보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어도 괜찮다.

3-1. 특징적인 점이라면 포스트식민주의를 반식민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마르크스주의의 지역적 변용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당연히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각자 발화되는 지역적 맥락이 중요해지는데, 그에 따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트리컨티넨탈리즘'이라는 용어. '남반구'나 '제3세계'라는 식의 2분법적 혹은 네거티브한 명명이 아니라 각 식민지들의 고유한 경험을 되살려보자... 뭐 이런 문제의식인데 꽤나 신선하고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3-2. 다만 문제는 트리컨티넨탈리즘을 마르크스주의의 지역적 변용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뭔가 그 외연과 내포가 다소 아리까리해진다는 거. 책에서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설명하고 계신 은크루마나 니에레레 같은 애들은 좀 냉정하게 보면 독재자의 이미지도 강하거든. 그런 식으로 하면 김일성 수령님도 동아시아 트리컨티넨탈리즘의 대표주자냐, 응?

3-3. 이 부분은 대부분의 포스트식민주의가 식민주의의 정신적, 정치적 유산을 해체하기 위한 '탈식민주의'로 정의된다는 점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거. 그 차이가 바로 위에서 말했던 외연과 내포의 아리까리함으로 나타나는데 요게 은근 논쟁적인 부분.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이 한국의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만은...

4. 아, 하나 빼먹고 넘어갔는데 이 양반은 식민주의랑 제국주의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제국에 속했던 가장 주요하고 (한동안은 유일했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대개 무시되는 차이인데, 아마도 다양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 메트로폴리스의 심장부에 있는 저자와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에 사는 우리의 위치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 귀찮으니 책 읽어보시고...

5-1.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후반부의 푸코의 담론 개념을 분석한 것. 릴라 간디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야기와 푸코의 담론 개념을 동일시하는데 로버트 영은 여기에 '아니거든요' 한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말하는 담론이 문제가 되는건 동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에 있는데, 저자에 따르면 푸코의 담론 개념은 이런 식의 '재현'의 문제, 즉 물질세계와 언어가 괴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게 아니라는거. 오히려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담론이란 물질세계를 규정짓고 인식하는 상호관계의 산물인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짓기도 한다는 것.

5-2. 따라서 여기서 더 나아가면 담론은 어떤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인식(혹은 지식)체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렇지 않지?) 담론을 구성하는 각각의 언표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이나 기능, 상황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가변적으로 '말해지는' 것들이다. 따라서 언표는 언어적인 형태를 가지고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언어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들의 총합인 담론 역시 이질적이고 가변적이며 유동적이다.

5-3. 이렇게 되면 담론은 고정적인 것도, 극복불가능한 것도 아니게 된다. 그러한 가변성은 담론이 권력의 도구이자 결과인 동시에 그것을 균열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한쪽에 권력의 담론이 있고 맞은편에 그것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또 다른 담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담론은 세력 관계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전술적 요소 또는 세력권이고, 따라서 같은 전략 내부에 서로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는 담론들이 있을 수 잇으며,(중략, 여기까지는 푸코 인용문) 푸꼬에게 권력은 의도적인 것도 아니고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다양하고 유동적인 세력 관계의 영역, 여기서는 전반적이지만 결코 전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닌 효과가 산출되는 영역"이다. (p. 716)

5-4. 물론 이와 같은 분석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나름 참고할만한 해석은 아닌가 싶다. 좀 더 공부를 해봐야지. 여기서 psychede님하가 뭔가 "캐병진들, 그건 이거야"하면서 특유의 냉소적 조언을 날려주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은... 우야던동 이 시간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름 꽤나 재미있게 읽었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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