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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事나부랭이

커피상점 이심이 문을 닫는다

Dog君 2017. 1. 4. 19:38

2010년 11월 23일의 이심


1. 연남동 골목길에 있던 커피상점 이심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연남동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고, 사람 살던 집이 헐리고, 그 자리엔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테이크아웃도 안 하고, 드립커피 6000원에 리필은 1000원 밖에 안 받으니, 하루가 다르게 치솟은 임대료를 무슨 수로 감당하겠나.


2-1.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좀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로스팅이 어쩌고 원두 상태가 어떻고 테이스트가 저떻고 하는 말도 디게 어렵고, 한다고 해봐도 안 되길래 그냥 포기했다. 그래서 그냥 "아저씨 그냥 커피 한 잔 주세요"로 하기로 했다.


2-2. 이심 바리스타('아이참 아저씨', '아이참 바리스타' 등으로 불린다 ㅋㅋㅋ)의 커피는 섬세하(다고 알고 있)다. 이마 근처까지 주전자를 높이 들어서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늘상 같지만, 매번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떨 때는 사방으로 물이 튀도록 거칠게 물을 쏟아부을 때도 있고, 물줄기의 굵기도 조금씩 다르다. 그에 따른 맛의 차이는... 당연히 모른다. ㅎㅎㅎ. 아마도 원두와 로스팅의 정도, 주문한 사람의 취향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은데, 정확한 차이는 잘 모른다. 어차피 들어도 모르니까 애초부터 물어보지도 않았다.


3. 이심은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연남동에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심에도 손님이 늘기 시작했는데, (사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손님의 숫자는 늘었는데, 손님의 질은 급전직하했다". 드립커피만 파는 가게에서는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이 늘기 시작한 거라든지 조용히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라든지 파워블로거인지 파워블로거지인지 하는 '것'들이 블로그에 올리겠답시고 가게 여기저기를 들춰대며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 등등은, 하나 같이 사장님이 어마어마하게 싫어하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장님은 테이크아웃 주문이 들어오면 "테이크아웃은 맞은편 가게로 가보세요"라고 안내하시더라. 자리에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나누면서 커피 마시기를 바라는 사장님의 고육지책 아니었을까. (처음 온 사람에게는 사장님 성격이 살짝 까칠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들 하시라.)


4-1. 처음 문을 열던 때와 연남동 골목길의 풍경은 많이 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심 빼고 다 변했다. 저녁만 되면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던 홍탁집과 돼지갈비집과 아코디언 연습에 한참 빠져있던 아주머니의 미용실, 마지막까지 골목을 지켰던 세탁소까지, 동네 사람들을 상대하던 가게들은 전부 다 사라졌다. 전철역에 내려서 이심까지 걸어가던 골목길에 있던 작은 맥주집들과 카페들과 밥집들도 죄 사라졌다. 그 빈 자리에는 깨끗하고 예쁜 가게들이 끊임없이 들어섰다가 없어졌다 하는 중이다.


4-2. 이심은 문 밖에도 좌석이 있다. 길가에 걸터 앉아 커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과 골목길 틈의 하늘도 구경할 수 있는 자리인데, 애초에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기껏해야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동네 사람들이나 왕래하는 골목이었기 때문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이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다. 연신 사람들이 오가는 데다가 그 좁은 골목길을 꽉 채우고 밀고 들어오는 자동차들 때문에 다리 뻗기는 커녕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쉽지가 않다.


5. 이심이 언제 영업을 중단할지는 확실치 않다. 언젠가 지금의 월세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 다음 세입자가 나타나게 되면, 그 때 영업 끝이란다.


6. 아차차, 참고로 작년 여름 서교동에 이심의 두번째 가게가 오픈했다. 당분간 사장님은 거기서 뵐 수 있으니 너무 걱정들 마시라. 그리고 사장님이 다른 계획도 더 가지고 계시다고 하니 마음 놓으시라. 사장님의 우주커피,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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