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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공부 메모 (2012.7.2.)

Dog君 2017. 11. 26. 13:45

배치arrangement: 우리가 '아 오늘은 좀 덥네'라고 느낀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오늘의 기온에서 그 원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우리의 인식은 '더위->기온'의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온->더위'라는 식으로 인과를 설정한다. 물론 이는 우리의 (경험적으로 누적된)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해 타당한 인과관계로 확인되었기에 '진리'로 인식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타당한 진리 혹은 인과관계라고 인식하고 각각의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배열하는 것을 '배치'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온'이 반드시 '더위'의 원인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더위는 밀폐된 방 안에 에어컨을 시원찮게 틀었다거나, 방금 열라 뜨거운 곰탕을 완샷!했다거나, 계절에 걸맞지 않게 긴팔 남방을 입었다거나, 지난 수십년간 누적된 지구온난화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오늘따라 유별나게 기승을 부린 결과라거나 하는 식의 원인들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단순하게 인과관계를 1:1로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라 해도 다양하고 다층적인 원인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중층결정'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절합articulation: 또 한편으로 '더위'와 '기온'이라는 요소는 독립된 별개의 사실이기도 하다. 마치 기관차와 객차가 특정한 기계장치에 의해 연결되어 있지만 그 사이에는 그 어떤 인과관계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당연시되어온 인과관계를 문제시하기 위해 문화연구자들은 '절합articulation'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말을 음절 단위로 끊어서 또박또박 말한다는 articulate에서 파생된 것이다.


차연différance: '덥다'라는 말은 사실 그 단어 혼자서 정의될 수가 없다. '덥다'라는 말은 반드시 '춥다'(혹은 '시원하다')라는 말과의 차이가 뚜렷해질 때에만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따라서 '덥다'라는 말의 의미 규정은 그 단어 자체로는 즉각 이뤄질 수 없고 단지 무한히 연기된다. 이런걸 두고 자크 데리다는 '지연시키다defer'와 '차이짓다differ'라는 말을 짬뽕크로스시켜서 '차연'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는데 (암만 생각해도 그냥 말장난 같은) 이 말은 기표와 기의의 필연적인 연결고리를 의심할 때 주로 인용된다.


상호형상화co-figuration: 그렇다면 '덥다'라는 말을 규정하는 행위는 반드시 '춥다'라는 말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짝을 지워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의미란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덥다'라는 말을 '섭씨 30도 이상'인 상태가 아니라 '춥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똑같은 섭씨 30도라 해도 한국인이 느끼는 섭씨 30도와 사하라사막에서 온 아프리카인이 느끼는 섭씨 30도는 다르잖아? 이처럼 모든 것의 의미규정이 나 아닌 상대적인 다른 것의 의미규정과 반드시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카이 나오키는 '상호형상화'라는 말을 썼다. 근데 이게 해석이 좀 지랄맞은 단어라서 누구는 '쌍형상화'라고도 번역한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근대 한국 네이션의 표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많고 어려운 개념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그래서 내가 꼭 이렇게 머리 싸매고 책을 파야하는건지 누가 좀 알려주시지 그래? (페이스북, 2012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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