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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역사학 단상

Dog君 2017. 9. 7. 06:41

  역사학도/역사학자는 왜 대중이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지 못/안 하냐는 타박을 듣곤 한다. 몇 사람 읽지도 않을 어려운 글이나 써제끼고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거 아니냐고. 현학적인 문장과 난해한 개념으로 꽉 찬 글이나 쓰면서 학자연하고나 있으니까 상아탑에 고립되는 건 당연하다고.


  이게 동전의 앞면이라면, 같은 동전의 뒷면에는 유사역사학(이덕일...)의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글들이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긍정할만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이덕일 류의 역사글이 왜 나쁜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그 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파이가 커져서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런데,


  쉽고 편한 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머리 아프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두 조각의 글만 읽고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단번에 꿰뚫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공부하는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사실 관계 하나 둘을 확인하려고 책을 몇 권씩이나 교차검토하고, 어려운 논문을 수십 편씩 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유사역사학이니 하는 것들은 정확히 그 점을 파고듭니다.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거든요.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니, 이해하기도 편합니다.


  조선이 몰락한거요? 다 노론 때문입니다. 일제시대의 역사학이요? 그거 다 쓰레기라서 쳐다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 고대의 역사서가 얼마 안 남았다구요? 그건 일제가 책을 20만 권 정도 불태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살아남은 걸 보니 이건 식민사관에 딱 부합하는 책이라서 일제가 안 태웠나 보네요. 해방 이후 역사학이요? 그거 다 이병도 똘마니들이니까 볼 필요 없다니까요. 제 주장을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거요?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쟤네들 기득권 역사학자들은 전부 식민사학자라서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골치아프게 쟤네들 논문 읽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핍박받는 진리, 저에게 있습니다.


  정말 쉽습니다. 결과를 관통하는 오직 단 하나의 원인. 인과 관계 얼마나 깔끔합니까.


  그런데,


  그러지 않으려고 책을 읽는 것 아니었나요.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안 되니까, 굳이 수고를 들여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는 것 아니었나요. 애초에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내 경험만으로는 알 수 없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내 경험과 지식을 확장시키고, 다시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내 통찰력을 키우는 것 아니었나요. 잘 아시다시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으로 뚜렷이 나뉘지도 않고, 니 편 아니라고 무조건 내 편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결과에 하나의 원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면, 당장 설명하는 사람도 정말 편할 겁니다. 원인 하나와 결과 하나, 딱 두 덩어리만 쓰면 되니까요. 좋은 놈과 나쁜 놈, 딱 두 덩어리만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원인과 결과는 언제나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는 언제나 흐리고 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 복잡한 관계과 경계를 넘나들면서 살아가고 있죠.


  역사학자가 더 복잡하고 더 골치아픈 것들로 파고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글이 난해하고 복잡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살기 위한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우리의 삶만큼이나 복잡해져야 하니까요. (페이스북, 2017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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