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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비판 (이문영, 역사비평사,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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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비판 (이문영, 역사비평사, 2018.)

Dog君 2018. 12. 26. 10:48


1-1. 나도 한때는 환빠였노라...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진부한 것 같으니까 일단 여기서는 패스. (이 책의 서평에는 이 얘기가 거의 빠지질 않더라;;;) 일일이 전거를 들어가며 유사역사학을 논파하는 것은 내 전공도 아니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그것도 패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건 원래 안 하니까 또 패스. 


1-2. 이런 식으로 패스 패스 패스 하다보니, 마침내는 서평이라고 노트북을 열기는 했지만 막상 쓰자니 쓸 내용이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인증하는 선에서 오늘은 끝. 


1-3. ...이면 너무 서운하니까 현대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받은 느낌만 조금 보태볼까 한다. 


2-1. 이 책에서 가장 힘을 쏟고 있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기도 한 부분은 유사역사학의 계보를 추적하는 중간 부분이다. 위서僞書의 계보에 대한 그간의 연구성과를 충실하게 갈무리하면서, 오랜 시간 유사역사학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저자 스스로의 통찰까지 덧붙였다. 두고두고 참고할 가치가 있다. 이런 식으로 판본을 꼼꼼하게 대조하는 연구가 현대사 분야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서 그런가, 나한테는 좀 많이 낯설고 어려운 접근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유사역사학을 뿌리부터 찹찹찹찹 썰어버린다는 목적만큼은 충실히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2-2. 이렇게 유사역사학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그 끝에 있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권력’과 ‘욕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애초에 ‘유사역사학’은 결코 ‘역사학’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시작한다.) 유사역사학이 그리는 강력한 고대국가의 상이란, 실상은 현대의 국가주의와 동원이데올로기를 역사책에 맞게 변환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사역사학의 탄생에 기여한 안호상과 문정창 같은 사람의 면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유사역사학이 1970년대에 비로소 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1970년대 내내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민족’에 대해서 들었지만, 정작 실제 역사는 그런 세뇌에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 

  1975년부터 1976년까지 1년간 역사학자 이선근은 국무회의에서 주 2회씩 한국사 특강의 시간을 가졌으며, 그 강의 내용을 묶어 『한민족의 국난극복사』(휘문출판사, 1978)라는 책을 냈다. (...) 

  이후 유사역사학에서 전개될 중요한 두 가지 인식이 여기 담겨 있다. 하나는 우리 역사를 왜곡한 주체가 일본제국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한반도 내로 영토가 한정되는 것을 ‘위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 (50~51쪽.) 


3-1. 유사역사학이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은, 유사역사학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유사역사학은 기존의 학계를 기득권으로 정의하며 스스로를 소외받은 소수자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에 일견 새롭고 열린 지식을 추구하는 대안추구적 행동인듯 보이고 한다. 하지만 문정창과 이선근과 안호상이 꼭 그랬던 것처럼, 결코 정치권력에는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여 기존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할 뿐이다. 그러니까 기실 그들은 기존의 권력과 긴장하기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추종하며 그 권력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문정창의 책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그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일어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자신의 책에 십분 담아냈다. 그런데 그는 한일협정에 대해 탄식하면서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일절 입에 담지 않고, 그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쏟아냈다. 바로 역사학계를 향해서였다. (108쪽.) 


3-2. 이들의 행동이 그저 권력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에서만 멈춘다면, 유사역사학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유사역사학과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의 작동 체계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톰 니콜스가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지적한 것처럼, 학문의 사회적 의무는 민주주의 체제의 유권자가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 체계가 무너지면, 각 유권자가 가진 권력이 비합리적인 정보에 기초하여 작동될 것이고, 그 순간 민주주의의 합리성은 무너진다. 나치즘을 보라.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민주주의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 이것 때문 아닌가. 유사학문과 반지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역사학계가 유사학문의 위협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4-1. 이 책의 또다른 중요한 통찰은 1960년대에 이미 유사역사학의 간접적인 배경이 마련되었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박정희의 민족주의관이야말로 유사역사학이 자라날 수 있는 최적의 배양토였다.


  유사역사학이 널리 퍼져나갈 구조적인 장치는 이미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정권이 바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박정희는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그 초기 경향은 유사역사학의 자민족 찬양과 전혀 달랐다. 그는 일종의 자학사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 

  박정희의 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 타율성론, 당파론, 만선사관(지리적 결정론)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 외피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자신의 권력 유지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사역사학 역시 박정희의 민족주의에 기생했다. 

(…) 한국사에 대한 깊은 열등감은 유사역사학이 지향하는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배양하는 배양조 역할을 했다. (134~135쪽.) 


4-2. 여기서 괜한 TMI 하나 덧붙이자면, 책을 읽다보니 문득 군대 정훈교육에서는 이미 창군 초기에 유사역사학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유사역사학의 계보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창군 초기 정훈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선근이야 한국군 정훈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안호상과 이범석을 중심으로 묶인 족청계가 주로 정착한 것이 정훈 병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초창기 정훈 병과에서 의외로 역사 관련 교재가 많이 나왔다. 변변한 교재도 없었거나 혹은 했다손 치더라도 단순한 반공교육 일변도였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가 않은 거다. (예컨대 ‘한국역대명장전’, ‘대외항쟁사’ 같은 책들이 이미 그 시기에 정훈교재로 발간됐다.) 정훈과 유사역사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여기서 뭔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그 전에 이선근에 대해서는 박찬승 선생님의 글을, 족청계에 대해서는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의 글을 참조해야겠다.) 


5. 여담 하나. 이 책은 출전을 밝히는 데 매우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준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인용할 때마다 빠짐없이 출전을 밝히고, 어떤 책이나 논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덧붙인다. 어찌 보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고, 기존의 연구성과에 쉬이 접근하기 힘든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아래와 같은 유사역사학의 행태와 너무 대비되는 듯해서, 이것마저 재미있다. 


  유사역사가들은 출전을 제대로 달지 않았으므로-이들은 역사학 방법론을 공부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기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다-나는 분명하게 반론하기 위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부터 찾아내야 했다. 오독에 오독이 겹치면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변질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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