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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어슐러 K. 르귄, 시공사,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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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어슐러 K. 르귄, 시공사, 2009.)

Dog君 2018. 12. 26. 08:31


1-1. 출장차 뉴욕에 갔을 때 잠시 짬을 내서 반스 앤 노블에 갔다. 내심으로는 살만한 CD나 DVD가 있나 살펴보려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목적은 한국사 관련한 책이 있나 찾아보는 것이었다. 몇몇 신간을 이미 눈여겨보던 중이었지만, 반스 앤 노블에는 그 책이 없었다. 하긴,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한국사 책이 시중 서점에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 반스 앤 노블 같은 오프라인 서점이 죽 쑤고 있는 거야 너도나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반스 앤 노블에서 잘 팔리지도 않을 한국사 책을 갖추고 있기를 바라기는 힘들겠지. 


1-2. 가장 놀라운 것은 YA(Young Adult)장르의 규모였다. 대충 어림잡아 전체 서가의 1/3 정도가 YA였던 거 같다.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미국 도서시장에서 그나마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가 YA라더니, 그 말은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이러니까 그 많은 영화들도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거겠지. 


2. YA의 힘을 확인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 책을 집었다. 몇 달 전에 헌책방에서 빈 손으로 나오기 뭐해서 집어들었던 것이다. 표지가 좀 유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슐러 K. 르귄의 책도 하나쯤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굳이 집어든 것이다. 판타지고 YA고 거의 읽어본 적 없지만 어슐러 르 귄의 이름 정도는 나도 들어본 적 있으니까. 자, 그럼 어디 보자, 판타지 장르의 거성, 어슐러 K. 르귄의 세계에 함 빠져볼까... 


3. ...하고 책을 읽었는데, 뭐야 그냥 YA 맞는 거 같은데요? ㅎㅎㅎ 저자 스스로는 이 책을 YA로 규정하지 말아줬으면 했지만, 판타지적인 세계관에 어린 남녀의 성장담을 섞고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양념처럼 뿌려둔 것을 보면, 글쎄요, YA라고 하면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안 해요.” 

  다시 침묵.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 “무서워할 것 없다, 오렉.”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무섭지 않아요.” 

  “네 능력을 통제하려면 사용해야만 해.” 아버지 카녹은 여전히 내 결심을 약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 

  “사용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능력이 너를 이용할 거다.” 

  예기치 못한 말이었다. 그라이가 능력을 이용하고 능력에게 이용당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했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혼란에 빠졌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 

  다시 한 번 견디기 힘든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아버지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죽이기 때문이냐?” 

  내가 내 능력이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반발하는 것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생각도 해보았지만, 쥐와 살무사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역겨운 공포를 느낄 때가 많았다고는 해도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시험을 거부했다는 것, 이 끔찍한 힘을 시험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 내 존재를 인정하기를 거부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준 셈이었고, 나는 받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아버지는 실망과 초조함을 드러내는 유일한 신호인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를 뒤져서 끈을 하나 꺼냈다. 온갖 농장 일에 대비하여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끈이었다. 그는 끈을 매듭지어 우리 둘 사이 땅바닥에 던졌다. 아무 말 없이 끈을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난 아버지를 위해 재주 부리는 개가 아니에요!” 난 크고 새된 목소리로 버럭 외쳤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고 반향이 울리는 듯한 침묵이 남았다. (121~122쪽.) 


  그 겨울 내내 나는 드러만트에 가서, 오그가 보이는 곳까지 가서 죽여버릴 계획을 짰다. (...)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혼자 생각하는 동안에는 그 이야기를 믿었으나, 이야기가 끝나면 믿지 않았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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