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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0호 (서울리뷰, 2021.) 본문

잡冊나부랭이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 (서울리뷰, 2021.)

Dog君 2021. 5. 21. 01:16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한정적이다. 기껏해야 1년에 수십 권이고, 좀 많이 읽는다는 분들도 100권을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런 속도로 10년을 꼬박 투자한다 해도 결국 수백 권 남짓을 읽을 뿐이다. 이렇듯 독서를 위한 시간과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 반면 책은 하루에도 수십수백권이 쏟아져 나오니, 시지프스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러다보니 독자에게 독서란 끝모를 망망대해에 조각배 저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가는 방향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그런 독자에게 서평이란 좋은 나침반과도 같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가이드이자, 내가 느낀 바를 견줘볼 수 있는 말벗이 되어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사한 서평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론'이 확고한 분야로 자리잡은 문학에 비하면 (내가 선호하는) 논픽션 부분은 그런 경향이 더하다. 물론 학술지 서평란을 참고할 수도 있다만, 글쎄... 일단 학술지라는 것 자체가 이미 진입장벽이 있는데다가, 전문학술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도 신간 위주로만 서평이 나오기 때문에 그걸 보통의 독자를 위한 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기획회의』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마음에 쏙 드는 서평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기획회의』 역시 전문 서평지는 아니지.)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서평전문지"를 표방하는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창간 소식이 반가웠다. 텀블벅에서 펀딩하는 것을 뒤늦게 알고 후다닥 신청해서 0호부터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글 하나하나를 뜯어볼 정도의 깜냥은 없는지라 전체적인 인상만 정리하자면, 나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신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예컨대 『넛지』나 『중국화하는 일본』은 예전에 읽었지만 약간 알쏭달쏭한 감상만 남겨둔 상태였는데 여기서 그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만나게 돼서 참 반가웠다. 모호한 채로 남았던 제 느낌이 좀 더 명료해진 것은 물론이고. 권헌익의 『전쟁과 가족』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학살, 그 이후』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여기 실린 서평을 읽고 도전할 용기를 다시 얻었다.

 

  다양한 글이 섞여 있는 것도 미덕이다. 0호에 실린 글은 책 자체에 집중하는 서평(書評)은 물론이고 책을 빌어 지금 세상을 이야기하는 시평(時評)에, 책에 관한 간단한 에세이, 단편소설까지를 망라한다. 필진 구성이 다양한 것도 그와 비슷하다. 물론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대체로 '무게감'이 있고 서평 필진들도 그 못지 않게 '묵직한' 분들이어서 자칫 심각하고 어려운 글만 가득할 것 같지만, 글 재미있게 쓰기로 소문난 김혼비나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SF소설가인 김초엽의 글이 평형수 역할을 잘 해주는 느낌이다.

 

  신간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어느 순간부터는 서평 DB가 될 수도 있겠다.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 정도 투자해서 근사한 서평 DB를 만들 수 있다면 가성비가 꽤 좋은 셈이다.

 

  0호를 읽고 나서 『서울리뷰오브북스』의 다음 행보를 더욱더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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