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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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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Dog君 2021. 5. 23. 17:05

  이처럼 3·1운동 해석에서 '민주주의'의 강조는 2019년의 한국 사회가 무엇보다도 천착하고 있는 가치를 3·1운동을 자리매김하는 데 활용되었던 강조점으로 '민족'이나 '민중'이 있었고, 이는 당대의 연구자들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가 강조했던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지금 3·1운동을 역사 속에 고정시키는 개념, 중심을 찾는 무게추는 '민주'인 것일까? (...)
  3·1운동에서 민주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의 시민사회와 학술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늘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며,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지금 한국 사회가 치열하게 논쟁 중인 문제이기도 하다. (...)
  이러한 '현재라는 시선'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다시금 1919년으로 돌아가보자. 정말로 3·1운동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만세를 불렀을까? 3·1운동에서 '민주공화'를 내걸었던 사례들은 과연 전체 3·1운동을 일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3·1운동의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부각시키는 데 실제보다 해석의 힘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지금의 시선으로 3·1운동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에 과도한 현재적 해석이 개입되지는 않았을까?

  - 장원아, 「3·1운동 100주년 연구와 현재의 시선―민주주의와 다양한 주체들」, 『역사비평』 129, 역사비평사, 2019, 15~16쪽.)

  (...) 3·1운동 90주년 이래 학계에서는 3·1운동의 다양한 양상을 고찰하고자 방법론을 모색하고 여러 분과학문의 연구자들이 협업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임시정부의 수립을 3·1운동의 가장 큰 의의로 확고하게 재인식시키고자 한 『1919』는 그 노력들이 재현한 3·1운동의 역동성을 학문적으로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박찬승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본업은 물론 학문 연구지만 역사에 담긴 의미를 알리는 일에도 의무감과 책임감을 늘 가지고 있었"(6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중적으로 쉽게" 3·1운동을 서술하고자 할 때 기승전결이 명료한 서사는 효과적인 장치다. 이러한 저술의 수요는 독서시장에서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정공법으로 그 책임을 감당하고자 했다. 오류가 개입된 '통설'을 수정하고 '정설'을 주조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와 같이 『1919』가 학술적 역할과 동시에 대중적 역사서술을 겸하는 성격에 주목해본다면, 다시 쓴 '정설'에 어떤 새로움이 있는지 좀 더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을 살려 읽는 독서이다.
   (...) 정리하자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재미한인 계열이나 천도교·기독교 측의 독립운동 움직임보다도 신한청년당 계령의 서술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방기에 서울로 귀환한 독립운동가들 중 중도 진영의 구심점이었던 여운형의 3·1운동 활동의 재구성은, 여전히 이념대결이 선명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를 '교과서적' 틀 내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사례를 고려해볼 때, 『1919』는 근래의 연구들을 반영하고 서술의 안배와 강약의 조절을 통해 '통설'의 힘을 약화시키는 '정설'이다.

  - 조은정, 「3·1운동 100년의 '봄·밤'에 '바람'―박찬승과 권보드래의 3·1운동 서사」, 『역사비평』 129, 역사비평사, 2019,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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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을 돌아보는 글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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