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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방지법안 (김용민 의원 등 12명 발의) 단상 본문

잡想나부랭이

역사왜곡방지법안 (김용민 의원 등 12명 발의) 단상

Dog君 2021. 6. 17. 10:17

어디 다른 곳에도 썼던 것을 그대로 옮겨온다. (어차피 이 블로그야 지극히 사적인 아카이브 정도 의미니까…) 그래서 말투가 좀 이상하긴 하다.

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발의에 참여한 12명의 면면도 살짝 실망스럽다. 대부분이 70년대 후반~80년대생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데 그들이 힘을 모아 발의한 것이 이런 거라니… 그것도 그것대로 또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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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김용민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안'에 대한 제 생각을 좀 길게 써볼까 합니다. 이 법안에 대해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단체 명의로 비판 성명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성명문이 그다지 길지 않은 탓에 성명문의 바탕에 깔린 생각까지 사람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길게 부연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당연히도 제가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성명문을 작성한 것도 아니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이 역사학계의 반응을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에 인용한 각종 법률의 내용 등은 공유한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국정교과서 반대했던 역사학자·변호사 "역사왜곡방지법 반대"

1. 먼저 전제할 것

본격적으로 '역사왜곡방지법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확실하게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이른바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역사학 연구자들 역시 매우 분노한다는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과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를 왜곡/미화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역사학 연구자들 역시 연구자이기 이전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런 행태에 대해 똑같이 분노합니다. 따라서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적 성취를 존중하자는 이 법안의 취지에 대해서는 연구자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대체로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법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도 이 전제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취지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 법안을 살펴보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법안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2. 언론·사상·의견표명의 자유와 충돌

이 법안은 "일본제국주의의 ... 지배 또는 ...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 동조하는 행위"(제2조), "일본제국주의의 ... 지배 또는 ... 폭력, 학살, 인권유린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 동조하는 행위"(제3조) 등을 금지한다고 했습니다. 즉, 특정한 의견을 표명하거나 동조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상해나 손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구체적인 상해나 손해가 없이 단순히 의견 표명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면, 일단 그 자체로도 이 법안은 언론·사상·의견표명의 자유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역사왜곡'이 언제나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그에 헌신했던 분이나 피해자들의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인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해서는 이미 형법 제307조부터 제312조에 그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허위사실 공표는 물론이고 사실을 적시한 경우라도 특정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했다고 판단된다면 징역 혹은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처벌도 가볍지 않아서 출판물이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처벌의 대상과 크기가 '역사왜곡방지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상·의견표명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이 법안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한 ㅈㅁㅇ이나 ㅂㅇㄱ 같은 이들을, '역사왜곡방지법안'이 없어서 처벌을 못했던가요.

물론 이 질문은 정반대로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기존의 명예훼손과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역사학 연구자들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기존의 형법에 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정도라면 성명서까지 내가면서 반대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법안이 금지대상을 밝히고 있는 2조부터 5조까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제2조(역사왜곡행위의 금지) 누구든지 공연히 3.1운동, 4.19민주화운동, 일본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자의적 지배 또는 그 지배 하에서 범하여진 폭력, 학살, 인권유린 및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제3조(일제 강점기 지배 등의 찬양행위 금지) 누구든지 공연히 일본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자의적 지배 또는 그 지배 하에서 범하여진 폭력, 학살, 인권유린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제4조(외국에서의 행위에 대한 동조 등 금지) 누구든지 외국인 또는 외국의 국가·단체가 제2조 또는 제3조의 행위를 하는 것에 동조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해서는 아니 된다.
제5조(일제 상징물의 사용금지) 누구든지 공연히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 또는 조형물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법안에 사용된 표현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합니다. '찬양', '고무', '선전', '동조'... 이런 표현들은 의미와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코걸이도 되고 귀걸이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이 얼마나 마법처럼 해석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를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왜곡'의 여부 사례를 들고 있는 제7조를 살펴보죠.

제7조(심리의 범위) 위원회는 제2조 내지 제5조의 위반 여부 및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사실 왜곡 여부를 심리한다.
(...)
3.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
(...)
5.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위의 내용이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당시, 아니면 군부독재 시절에 여당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사실상 국가보안법과 크게 차이가 없는 표현으로 가득한 이 법안이 과연 용인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지금처럼 민주화된 시대에 그런 식의 고무줄 같은 법해석이 가능할리가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찬양·고무·선전하는 것'이, 역사연구의 현장으로 들어가면 생각만큼 그렇게 깔끔하게 딱 떨어지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한국 근대의 산업발전을 공부하는 어떤 연구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도 그는 식민지기부터 1980년대에 걸쳐 산업시설이 확충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찬양·고무·선전하거나 혹은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근대적인 산업시설이 도입되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 또 이런 재반론이 가능합니다. 근대화, 산업화라고 다 좋은게 아니고, 일제 치하에서의 그것은 사실 민족적, 계급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었고, 동원체제 성립으로 이어지는 거였다고 설명을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제 마음에 걸리는게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연구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굳이 변호하고 설명해야 하는 그 상황. 모든 글과 논문마다 이것은 결코 식민통치와 독재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구구절절 해명을 달아야 하는 상황. 내가 하는 말과 글이 정부가 정한 기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는 상황.

역사라는건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잘 다듬어지고 뿌듯한 모습만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기만 하던가요.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때로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무능함과 치부를 직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끊임없이 내 연구의 의도와 목적을 부연하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우리가 바랐던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3. 국가의 역사해석 독점

앞서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도 '역사왜곡'에 따른 문제에 법적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썼습니다. 본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라서 고소가 없거나 피해자의 의사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 제18조에는 "(역사왜곡에 관한) 사실을 인지한 때" 혹은 "(역사왜곡에 관한) 사실을 발견한 자"의 신청에 따라 역사 왜곡 여부를 심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가 문제를 삼으면, 언제건 문제가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에서 자기검열이 일상화되는 상황이 올까봐 무섭다고 했는데, 그 걱정은 이 조항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정부의 역사적 관점을 의식하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나의 관점이 정부가 용인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명예훼손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한데 굳이 법을 더 만들어서 말과 글만 위축시키는 이 법안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역사왜곡'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를 두겠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역사란 본디 다양한 해석이 공존해야 하고, 그 다양한 해석들 속에서 주장의 타당성을 거듭하여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단 9명으로 구성된 기구가 해석을 독점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겠다는 것 자체가,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니었나요.

법안에 깔려 있는 역사인식도 문제지만, 구체적인 측면에도 이 법안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법안은 '역사왜곡'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구로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이 위원회의 구성은 정치적 중립성과 거리가 멉니다. 위원회는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각각 3명씩을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이미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료의 수집ㆍ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과연 이 조직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국정역사교과서를 추진했던 것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4. 득보다 실이 많은 제재법안보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도 역사를 왜곡해서 피해자를 욕보이고 민주와 평화에 헌신한 분들을 폄하하는 이들을 보면 분노가 치밉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런 목소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숫자인지 그리고 그래봐야 그들이 한줌 밖에 안 되는 자들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식민지 지배나 민주화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사회적 합의가 이미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퇴행이야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무화시킬 정도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믿고요.

유럽의 역사부정죄가 참고사례로 거론되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유럽의 역사부정죄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표현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과는 입법 취지나 목적, 맥락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죠. 이에 관해서는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가 역사부정죄 문제를 잠깐 다루었므로 이를 참고하는 것으로 하고, 굳이 제가 말을 덧붙이지는 않겠습니다.

요는,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제재법안을 더 만들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목소리를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학계와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더 늘리고 우리 사회의 지적 기초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홍성수가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표현에 대한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개입'이 되어야 한다고 한 지적을 되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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