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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 (김종광, 교유서가, 20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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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 (김종광, 교유서가, 2021.)

Dog君 2021. 6. 13. 22:54

 

  저자는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21세기 농촌의 사관"(350쪽.)의 마음으로 이 책을 썼노라고 했지만, 내가 살았고 겪었던 농촌은 이 책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차가운 곳이었다. 농촌이라고 해서 딱히 더 인간미가 있는 곳도 아니었고, 공동체적 삶이 딱히 더 잘 구현된 곳도 아니었다. 물론 이 소설의 목표가 농촌을 목가적으로 그리는 데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혹시라도 이 책을 2021년판 전원일기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저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이면 족할 일이다.

 

  이놈의 영감탱이 무사한지 모르겠네.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한파를 뚫고 가보았다. 남편은 전기장판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추우면 이불을 더 갖다 덮어야지. 얼어죽을라고 작정했소!"
  윗방 장롱에서 이불 두 채를 끌어다 덮어주었다. 이 판국에도 전기 아낀다고 1이 뭐여, 1이! 전기장판 온도를 최고로 높여주었다. (「보일러」, 45쪽.)

 

  기사는 더는 사양할 수 없었다. 출출하기도 했다. 축축한 유니폼 잠바와 바지를 벗고 오지랖이 마루에 내놓은 헌 잠바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주방채로 들어갔다. 안은 안이었다. 꽁꽁 언 몸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어머니, 보일러가 되는 것 같지요?"
  "되고말고. 벌써 훈훈해요. 밤에 또 어쩔라나 모르지. 간자미찌갠데, 젊은 사람 입맛에 맞을는지 모르겠소."
  오지랖이 여남은 반찬그릇 사이에 놓아주며 걱정했다.
  "이건 뭐 진수성찬이네요."
  "다 풀이지. 젓가락 댈 거나 있나요."
  기사는 먹방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먹듯이 허발했다.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진짜로 맛있어요. 한 그릇 더 주세요. 전 진짜 이런 밥 먹어본 적이 없어요. 이게 바로 고향의 맛이군요." (「보일러」, 72쪽.)

 

  교수를 능가하는 독서가가 출현한 것은 1992년이었다. 별명이 독귀신이었다. '졸업하기 두 달 전이었다. 선생님, 도서관 책 다 읽었어요. 혹시 선생님 댁에 책 없나요? 방학 동안 내 집에 있는 책 천 권을 다 읽어치웠다. 내가 이 요상한 글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독귀신 녀석 때문이다. 커서 뭐가 되려는지, 이 아이의 놀라운 독서력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녀석은 글도 잘 썼다. 산지사방에서 타온 상장이 휴지 같았다.'
  이후로 독귀신을 능가하는 독서가는 없었다.
  사서샘은 '독귀신'이 누군지 알았다.
  - 얘, 내 친구야. 고등학교 때 독서동아리도 같이 했어. 지금 잘나가는 박사야. 아직 교수는 못 되었지만 책도 한 열 권은 나왔어. (...)
  사서샘은 20분은 더 왈왈댄 뒤에야 성빈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박사님께서는 성공하셨나요?
  - 너 어디 아픈 애냐?
  죄송합니다.
  -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내가 성공 안 한 건 확실해. 한 달에 2백도 못 벌어. 역사보다 애 학원비를 더 걱정한다. 죽지 못해 산다.
  성공은 안 하셨을지라도 훌륭한 분인 거 맞지요?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따셨으니까.
  - 박사가 뭐? 요샌 개나 소나 다 박사야.
  훌륭하신 건 맞지요?
  - 내가 좀 훌륭하긴 하다. 하지만 남들이 그리 안 보니까 문제지. 제 스스로는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극너 훌륭한 것인가 아닌가. 묵자가 말씀하시기를. 너 묵자 알아?
  공자, 맹자, 순자 그때 분이시죠?
  - 오호, 너 책 좀 읽었구나! 내가 '묵자' 하면 뭐 먹자고 까부는 중학생들 때문에 내가 아주 미친다니까. 나처럼 훌륭한 한학자가 중학생들 과외나 해서 먹고산다니 이게 정녕 나라인가!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 93~95쪽.)

 

  '역경리 대표가수'의 영예를 안은 팔방미의 자칭 '감사공연'이 있었다. 아이돌 못지않은 외모와 패션으로 무장하고서 경쾌한 춤사위와 명랑한 노래로 늙은이들을 주물러댔다.
  "참, 참신하고만. 해결사가 전혀 생각나지 않네."
  "해결사 노래에 물릴 때도 되었고, 세대교체가 될 때도 되긴 했어."
  "해결사랑 팔방미가 가면 쓰고 붙으면 끝내주겠는걸."
  "남이 잘하건 못하건 나하고 뭔 상관이야. 나는 내가 노래할 때가 제일 좋아."
  끊이지 않고 장삼이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삿갓, 밥 딜런 아닌 사람이 없고만."
  노래와 말이 유장하게 뒤섞여 끝모르고 이어졌다. (「내게 노래는 무엇이었나」, 318~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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