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박사학위논문 後感 2 본문

잡想나부랭이

박사학위논문 後感 2

Dog君 2022. 2. 2. 23:42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가 찾아오면 사학과 대학원생은 누구나 다 대학원 진학을 만류한다. 왜 그런지는 (매우 익숙한) 아래의 짤로 대신하고...

 

이거 말고도 짤은 많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란 이미 대학원 진학을 마음 속으로 결정한 후에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선배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런 고민을 털어놨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민이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려도 올 놈은 오더라...'라는 것이 이 동네 격언이지.)

 

  그래서 나는 그런 고민을 들으면, 그냥 대학원 가라고 한다. 내가 말린다고 안 올 놈이 아니니까. 대신 '앞으로 네가 공부를 그만둘 때까지, 네가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보다는 너로 하여금 공부를 그만두게 만드는 힘이 훨씬 더 클거다. 미리 각오해라. 그걸 이겨내려면 네가 애초에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가 뭔지를 계속 되새기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해준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내가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논문을 마치고 나서 새삼 기억났다.

 

  여러 이유 중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란, 진작에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은커녕 대소변도 제힘으로 가리지 못하는 깡마르고 말없는 늙은이였다. 필시 그에게 나는 귀여운 손자였겠지만 그가 얼마나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내가 미처 느끼기도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대문 옆 별채 방에 하루 종일 누워있던 그의 퀭한 눈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 집안어른들이 가끔 한 마디씩 흘렸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어느 시점의 일들이었음을,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1950년 7월 말 정도 지리산 자락이 공산군 점령 하에 들어간 이후 약 한 달 동안 그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일, 그리고 그 이후 그의 가족들이 수십 년간 감내해야 했던 일들이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1950년 8월경 공산군 치하의 하동군 옥종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농토는 농사 짓는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하고, 사람 사이에 반상의 위아래가 어디 있냐고 소리치던 젊은이와 그 동료들이 했던 일이 무언지 알고 싶었다. 마침 2000년대 초를 전후하여 한창 인류학과 구술사 분야를 중심으로 그런 연구가 활발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십몇년을 돌고돌아 결국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애초의 목적한 바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오게 됐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내 영감의 원천 중 하나이다.

 

  언젠가 대학원 생활 중에 마음 먹었던대로 학위논문을 할아버지 묘 옆에 놓고 왔다. 어디 내보이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에게만큼은 꼭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ps. 처음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어쩌면 (내가 처음에 목적했던) 1950년 8월의 하동군 옥종면으로 돌아갈 방법은 이제 영영 사라진 걸지도 모른다. 그때를 기억하는 노인들이 거진 다 세상을 떠났으니 그 기억을 통해 그날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됐으니까. 내가 좀 더 성실한 놈이었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겠지만, 글쎄, 내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