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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지배 (마틴 포드, 시크릿하우스,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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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지배 (마틴 포드, 시크릿하우스, 2022.)

Dog君 2023. 8. 30. 09:53

 

  인공지능은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됩니다. 오래 전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이길 때도, 알파고가 초일류 바둑기사들을 죄다 압살해버릴 때도, 전세계가 난리였죠. 얼마 전에는 ChatGPT와 DeepL이 화제였구요. 인공지능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은 성장속도가 놀랍기 때문입니다. 번역만 해도 지금의 인공지능 번역은 꽤 딱딱한 학술서를 꽤 읽을만한 정도로 번역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번역의 미래는 과연...) 인공지능이 성장하는 속도는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참 확장된 유토피아가 될지 인간이 모두 기계의 노예가 된 디스토피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인공지능의 성장과 개발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종종 나오는 걸 보면 일단은 인공지능에 대한 경계심이 좀 더 크지 않나 싶긴 합니다.

 

  그런데 마틴 포드는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미래에 무척 낙관적입니다. 그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예컨대 그는 인공지능의 힘을 빌린다면 최고 수준의 의사가 지닌 기술과 경험을 거의 모든 의사를 통해 구현할 수 있으리라고 보죠.(100쪽.) 더 나아가 그는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즉 기후위기나 팬데믹, 경제위기,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고한 낙관을 제시합니다.(22~23쪽.)

 

  사실 그의 낙관은 인공지능의 잠재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인류사회는 이미 한계에 달한 것처럼 보입니다. 노동생산성은 점차 하락하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팬데믹이 언제 또 재발하여 우리를 위기에 빠뜨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입지를 좁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 이전에 이미 변화가 강제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인공지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입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적응해야 할 '환경'이라고 보는 저로서는 (그리고 인공지능의 기술 측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저로서는;;) 책을 읽는 내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분명히 바뀌게 될 역사학(혹은 학문)의 기능과 역할은 또 무엇일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창의성은 또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등등의 생각만 무한히 했습니다. (OCR과 번역 능력의 성장은 길어야 5년 이내에 기존의 역사학 연구 방식을 크게 바꿀 겁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짐작하지 못하는 저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를 논할 깜냥이 못 됩니다. 다만 앞으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이 아니라) 강양구 기자의 아래 글을 빌어오는 정도 뿐이겠네요.

 

  인공 지능 학습의 전제조건은 엄청난 양의 '빅 데이터'다. 인공 지능은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얼굴 알아보기, 바둑, 번역 등 특정 능력을 학습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한다. 그런데 학습의 전제조건이 되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 예를 들어, "지난 30년간 국내 대기업의 여성 고용 및 승진 데이터를 훈련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 지능"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인공 지능은 "대기업에서 여성의 승진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을 업무 성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학습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인공 지능이 채용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문제가 또 있다. 사람 판사는 (...) 시대 변화에 발맞춰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린다. 노예제 폐지, 남녀 차별 폐지, 인종 차별 폐지, 동성애자 결혼 허용 등이 모두 이런 혁명적인 판결을 통해서 가능했다.
  인공 지능 판사는 전적으로 과거에 축적한 데이터에 의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 재판소에 인공 지능 판사가 있었다면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초유의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강양구, 「인공 지능도 '갑질'을 한다」, 『과학의 품격』, 사이언스북스, 2019, 147~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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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은 인류가 인공지능 문제를 그냥 내버려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과 창의성을 증폭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혁신을 주도할 것이다. 우리는 신약 개발과 새로운 치료법, 더 효율적인 청정에너지원과 여러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할 수 있다. 확실히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파괴하겠지만 인공지능 경제가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이용하게 될 것이다. (...) 이러한 전망은 지금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촉발된 대규모 경제 위기에서 회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후변화와 환경 악화, 불가피한 다음 팬데믹, 에너지와 담수 고갈, 빈곤, 교육 접근성 부족을 포함해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인공지능이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22~23쪽.)

 

  (...) 요점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의사가 지닌 기술과 경험을 효과적으로 민주화하는 방식으로 의사들을 증강하는 것이다. 강력한 인공지능 진단 시스템이 의사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한편으로 경험이 부족하거나 보통 수준인 의사도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조언하는 가상의 엘리트 전문가팀과 함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100쪽.)

 

  결론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몇 년 동안 미국 경제는 새로 칠해 반짝이는 자동차 같았지만, 내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실업률은 문제없어 보였지만 점점 더 많은 인구가 완전히 뒤처지고 있었다. 불평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노동자 대부분은 기술 발전의 결과로 증가하는 부를 더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점점 더 불평등해질수록 소비자 수요의 동력이 되는 소득을 배분하는 메커니즘이 약해지고 따라서 경제 성장이 저해되고 미래 번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꺾인다. 팬데믹이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고 우리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 모든 추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현재의 곤경에서 회복을 더 어렵게 하는 역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233쪽.)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대륙을 다니며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고용 시장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관해 많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국가에 상관없이 청중에게 가장 많이 받는 공통 질문은 거의 항상 같았다. 어떤 직업이 가장 안전할까요? 우리 아이가 어떤 분야를 공부하면 좋을까요?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중단기적으로 자동화의 영향을 가장 덜 받을 직업이 크게 세 가지 분야라고 생각한다. 첫째, 본질적으로 창의적인 직업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만약 당신이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전략을 제안하거나,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다면 나는 당신이 인공지능을 도구로 활용하는 자리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 나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기보다 증폭하는 데 쓰일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로 안전한 분야는 다른 사람과 의미 있고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가치가 있는 직업들이다. 이를테면 간호사가 환자와 공감하고 돌보는 관계나 정교하고 수준 높은 조언을 제공하는 사업가나 컨설턴트가 고객과 형성하는 관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
  세 번째로 안전한 분야는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높은 이동성과 손재주,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간호사와 노인 간병인이 여기에 속하고 배관공이나 전기 기사나 정비공처럼 전문 기술직도 해당한다. 이런 유형의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로봇 개발은 훨씬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 (...)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고용 시장 전반에 걸쳐 단조롭고 '기본적인' 활동은 대부분 사라지지만 창의적인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거나 조직에 가치를 더하는 방편으로 광범위한 전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 법정에서 노련하거나 고객 관계가 탄탄해서 회사에 사건을 가져오는 변호사는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계속 성공할 것이다. 반면에 주로 법률 검토나 계약 분석에 몰두하는 변호사는 전망이 그다지 유망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으로서 당신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정말 좋아하는 직업, 열정이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아웃라이어가 될 활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가 많았던 분야라는 이유로 앞으로 직업을 선택한다면 썩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한 개인에게는 좋은 조언일 수 있지만, 체계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전환이 진행되면 많은 사람이 뒤처지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런 현실을 해결할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244~247쪽.)

 

  내가 생각할 때,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에게 그냥 돈을 나눠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구 전체 또는 대부분에게 최저 소득 보장, 마이너스 소득세, 기본 소득 같은 방법으로 소득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아이디어는 조건 없는 보편적 기본소득unconditional universal basic income, UBI이다. (...)
  보편적 기본 소득의 장점은 고용 상태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급되므로 수혜자가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거나 창업 활동을 하려는 동기를 해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존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피할 수 있다. 빈곤의 덫poverty trap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업 급여나 복지 수당 같은 혜택은 수혜자가 일단 일자리를 찾거나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면 줄어들거나 완전히 없어지므로 구직 활동을 하려는 의욕을 꺾을 수 있다. 저임금 일자리라도 수락하면 기존 수입이 즉시 보장되지 않는 위험에 처한다. (...) 반면에 보편적 기본 소득은 고용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해 일을 하거나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단순히 집에서 매달 기본 소득을 받는 사람보다 경제적 상황이 항상 더 좋을 것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은 절대적인 소득 하한선을 정하지만, 돈을 더 벌려는 강력한 동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단순히 돈을 나눠 주는 생각에 강한 심리적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태도는 보편적 기본 소득을 실제로 구현할 때 큰 정치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나는 기본 소득이 인공지능의 편재에 따라 나타날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본 소득이 더 효과적이고 정치적으로 적합한 해결책을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
  기본 소득을 가로막은 정치적 장애물은 여전히 벅차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시작한 다음 시간이 갈수록 점차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조건 없는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한 많은 데이터와 실제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적의 정책 파라미터를 찾는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 (250~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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