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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여행자의 노트 (김윤아, 스리체어스,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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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여행자의 노트 (김윤아, 스리체어스, 2018.)

Dog君 2023. 8. 30. 09:56

 

  저는 역사 공부가 직업이고 그게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지만 정작 여행에서 문화재나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자수(刺繡) 가게나) 서점을 훨씬 더 자주 찾습니다. 몇 년 전에 갔던 프랑스 파리는 제가 가본 도시 중 최악 중 하나였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았던 (자수 가게 '사주(Sajou)'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만큼은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디 파리만 그렇겠습니까. 오래된 도시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이름난 서점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고, 『서점 여행자의 노트』는 그런 서점들에 대한 짤막한 책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난 서점의 공통점은 독자와 방문객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오래된 서점의 역사성이건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서점의 문제의식이건,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는 방문객이 있기에 그들 서점은 유지될 수 있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세느 강변에 늘어선 노점 책방의 '부키니스트'부터 런던의 LGBT 서점 '게이스 더 워드'와 뉴욕의 페미니즘 서점 '블루스타킹'에 이르기까지 서점의 성격을 존중하는 방문객이 없었다면 이들 서점은 살아남을 수 없었겠죠.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제 생각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역할이란 무얼까, 에 이르렀습니다. '책 읽기'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요즘, 출판 시장이 매년 최악을 갱신하는 요즘, 치솟는 땅값 때문에 서점 운영이 어느 때보다 힘들어진 요즘, '책 읽는 자'의 역할이 단지 소비자에만 그쳐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뭘 해야 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지키기 위해 뭔가 의식적인 노력과 수고가 필요해지는 때가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해 부키니스트가 된 샬롯처럼, 부키니스트는 해당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다. 한 옇애객은 "부키니스트는 각각의 주제에 특화되어 있다"며 "이들은 굉장한 지식을 가지고 고객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철학 전문 서적을 다루는 부키니스트 아르노Arnaud는 "부키니스트의 전공을 살펴보는 것도 강변을 여행하는 재미"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부키니스트들은 판매하고 있는 책의 분야를 전공한 경우가 많다. 노르딕Nordic은 노트르담 대성당 건너편 시테섬 입구에 있는 서적상으로 포스터와 잡지를 판매한다. 부키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화가로 활동했다고 하는데, 새로운 그림이 들어오는 날이면 단골손님을 불러 놓고 그림을 보여 주는 이벤트를 연다고 한다. 그가 파는 작품을 통해 당대에 유행한 화법이나 주제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겠지만, 노르딕만의 관점이 담긴 해석을 듣는 것이 더 흥미롭다. (18~19쪽.)

 

  누군가에게 이 서점은 불편하다. 페미니즘, 난민, 환경, 동물 등의 이슈로 가득한 서점은 그동안 외면해 왔던 타인의 삶을 직시하게 만든다. 공간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도 까다롭다. 그러나 소수의 권리를 존중하는 곳에서,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가치가 피어난다. 이 서점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일상에서도 타인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블루스타킹스의 철학은 서점이 구비한 도서 목록,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공간의 운영 방식 전체에 반영되어 있다. 서점의 메시지에 공감한 독자는 추천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에 참여하고, 서점 곳곳에 있는 기부함에 후원금을 내고, SNS에 방문 후기를 올리며 블루스타킹스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44쪽.)

 

  게이스 더 워드는 지역 사회의 성 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레즈비언 디스커션 그룹의 멤버들은 이 서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하객들에게 선물을 주는 대신 성 소수자를 위한 모금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기부 받은 후원금은 서점 내의 소규모 모임을 알리는 데 사용되거나, 트랜스런던 행사 진행에 필요한 지원금이 된다. 서로 다른 성격의 커뮤니티가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며 상생하는 것이다. 서점을 찾는 이들은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서점의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고, 성 소수자 관련 소식이 담긴 신문과 매거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게이스 더 워드는 LGBT 분야의 서적을 파는 서점을 넘어, 공동체가 성장하는 장소이자 지역 사회의 역할을 보완하는 기관이다. (48~49쪽.)

 

  (...) 중고 책 카운터는 서점의 깊숙한 곳에 있다. 서점 매장에 있는 사람만큼 책을 팔기 위해 모인 사람도 많았다. (...) 나의 손을 떠난 책은 한동안 정가의 절반 가격에 판매될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1달러 팻말을 붙인 책 수레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스트랜드에 책을 파는 사람들은 책의 가치가 판매 가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8마일의 서점에 한 뼘을 더 보탰다는 자부심이 스트랜드에 책을 가져가게 만든다. (66~67쪽.)

 

  페르세포네의 독자들은 서점과 함께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되새기고 공유하는 주체적인 존재다. 독자들의 추천은 사회에서 외면 받은 여성의 삶에 대한 지지이자, 페르세포네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하는 행위다. 서점 홈페이지에서도 출간할 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독자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페르세포네에서 만든 책을 56권이나 소장하고 있다는 한 독자는 자신을 영국의 뿌리에 연결해 준 서점에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서점의 가치에 공감하는 독자에게 페르세포네는 유서 깊은 영국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페르세포네는 독립 서점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독립 서점은 주목받지 못한 책들의 가치를 알려 주고, 독자들은 어떤 책이든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하면서 책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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