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김용균, 김용균들 (권미정·림보·희음, 오월의봄, 2023.) 본문

잡冊나부랭이

김용균, 김용균들 (권미정·림보·희음, 오월의봄, 2023.)

Dog君 2023. 8. 30. 09:55

 

  역사 앞에서 우리는 모두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없지만 현재에 남은 우리는 역사가 남긴 경험과 통찰을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이죠.

 

  『김용균, 김용균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이 2018년 12월 11일 새벽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이후를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새벽 김용균을 처음 발견한 동료 노동자 이인구, 금쪽 같은 새끼를 잃은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과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동료 노동자 이태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책은 김용균의 죽음이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그 셋의 이야기를 인터뷰집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사고 이후 날이 거듭되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아들의 지난 시간과 동선을 되짚으면서 미숙 씨의 내면에는 어떤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하게 꿈틀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 사고를 아들의 잘못으로 몰아가려 했던 사측의 말과 물청소가 되어 있던 현장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죽음의 진실이 왜곡되거나 은폐되는 사건 앞에서 미숙 씨는 어떻게든 움직여야만 했고, 진실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방법을 모르는 채로도, 특별한 결의와 선언 같은 것 없이도 미숙 씨는 수순처럼 싸움의 길로 들어섰고, 싸우는 사람이 되어갔다. (희음,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 유가족 김미숙 씨」, 106쪽.)

 

  김용균재단 설립 당시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는 노동자, 시민과 연대하고 함께 싸우면서 사회를 바꾸는 데 힘쓰는 재단이 되는 것이었다. 재단의 대표로 3년가량 활동을 이어온 지금의 김미숙 씨는 재단이 가장 가까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유족 지원이라 여기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유족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유족은 누구라도 처음일 것이며, 예외 없이 막막할 것이다. 누구를 붙잡아야 하는지, 또 누구에게 따져 묻거나 확인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더듬듯 살펴가며 여러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유가족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주고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고 직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미숙 씨는 하고 있다. (희음,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 유가족 김미숙 씨」, 121~122쪽.)

 

  저에게 이들 세 사람의 이야기는 동료이자 가족의 죽음을 대면하는 가장 성숙한 태도로 느껴집니다. 세 사람 공히, 김용균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동시에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계로 기꺼이 나아가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김용균의 죽음이 단지 한 자연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이 응축된 결과임을 인식하고 그 의미가 바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련의 실천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존중할 것은, 김용균재단이 공허하게 당위에만 매몰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용균재단이 가장 가까운 목표로 삼은 것이 산재 유족 지원입니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 현실이라면, 산재의 위험을 없애기 위한 궁극적인 노력에 더하여 보통의 노동자가 산재 앞에서 덜 허둥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될 방법 역시 강구한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저 역시도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또 무엇일지 생각이 깊어지네요.

 

ps. 얼마 전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어느 화력발전소에 관한 것입니다. 그 발전소에도 많은 '김용균들'이 있었을텐데 제 글이 그 존재들을 얼마나 포착해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났던 어떤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데 제 글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사실 한국발전기술이 담당하는 태안화력발전소의 9, 10호기는 애초에 하청업체에 외주를 줄 목적으로 설계·시공·건설된 곳이다. 오르내릴 엘리베이터도 없고, 배수관 히팅 케이블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은 최대한 비용을 줄여 건설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설비임에도 불구하고 낙후하고 열악한 상태라 다른 발전소 노동자들이 놀랄 지경이었다. (림보, 「고통에만 머물 수 없기에 - 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25쪽.)

 

  인구 씨처럼 산재사고로 동료를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 동료를 잃었다는 사실보다 '어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구조 과정에 더 큰 충격을 받는 이들이 많다. 참전군인의 외상 문제를 연구하며 1941년에 《전쟁 외상 신경증(War Stress and Neurotic Illness)》이라는 책을 발표한 정신과 전문의 카디너(Abram Kardiner)는 배가 침몰한 후 오래 바다에 떠 있다가 구조된 해군을 상담했다. 내담자는 뗏목에 위태롭게 매달린 자신을 지나쳐 상대적으로 안전한 구명보트에 의지했던 장교들을 먼저 구조한 구조대의 행태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카디너는 이를 군대의 일상적인 문화로 이해했지만, 내담자는 구조를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던 동료들처럼 자신도 '아군'에 의해 희생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림보, 「고통에만 머물 수 없기에 - 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36쪽.)

 

  우리는 대체로 재난이나 참사와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자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암 생존자는 암의 위협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사람을, 자살 생존자는 자살한 이와의 사회적 관계로 인한 영향과 심리적 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고, 성폭력 생존자 역시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무력감에 사로잡힌 피해자라는 말의 억압을 넘어 자기 삶을 펼쳐가는 적극적인 주체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은 말이다. 그러므로 '산재 생존자 이인구'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나 트라우마 환자라고 하는 말에 갇히지 않고 김용균의 죽음을 거쳐 다른 삶, 다른 세상과 만나려는 그의 열망이 그만큼 크고 뜨겁다.
  한편으로는, 생존자로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측면이 있지는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피해자/생존자들이 자기를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사회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하지만 법·제도적 지원이나 사회적인 인식에서나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생존자들은 싸움을 선택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두에게 싸워달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고, 한편으로는 싸우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추어올리는 것도, 그들의 고군분투를 응원하는 데 만족하는 걸로 그치는 것도 고민스럽다. 우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인구 씨는 고군분투하고 안간힘을 쓰며 싸우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그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혼자 애쓰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림보, 「고통에만 머물 수 없기에 - 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54~55쪽.)

 

교정. 초판 1쇄

257쪽 1줄 : 김용규투쟁이 -> 김용균투쟁이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