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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때리는 한국사 (우은진, 뿌리와이파리,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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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때리는 한국사 (우은진, 뿌리와이파리, 2023.)

Dog君 2024. 1. 8. 21:56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지요.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과거가 남긴 흔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료도 과거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를 살피는 것은 흡사, 안주접시에 담긴 북어포를 보며 명태 어군이 헤엄쳐 다니는 동해바다를 상상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학 연구자는 늘 사료에 목이 마르지요. (반대로 가장 기쁠 때는 사료 찾았을 때 ㅋㅋㅋ) 기본적으로는 문헌으로 남은 것이 가장 주된 사료가 되겠습니다만, 역사학 연구자는 비석에 새겨진 글귀나 구전된 이야기, 땅에 묻힌 유물과 유적 등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무엇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역사학 연구는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료를 찾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뼈때리는 한국사』는 사람의 뼈(人骨)를 사료로 삼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의 뼈에는 의외로 많은 정보가 쌓여있습니다. 성장과정의 영양상태나, 생전에 앓았던 질병, 사망 원인, 평소에 주로 취했던 자세 같은 것들이 뼈에 흔적을 남긴다고 하네요. 그런 흔적 하나하나가 과거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문헌 사료를 통해 알아왔던 것들과는 꽤 다릅니다.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송현이'의 정강뼈와 종아리뼈에는 주변의 근육이 과도하게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는 매일같이 108배를 했거나 혹은 무릎을 꿇고 혹은 쪼그려 앉은 자세를 반복적으로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이를 통해 저자는 송현이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가야 지배층의 무덤에서 나왔으니 주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이었거나 혹은 그보다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정도 뿐이지만 이만 해도 어딥니까, 가야시대의 어느 소녀의 삶과 일상을 이보다 더 친근하고 생생하게 알려주는 사료가 또 있었던가요.

 

  그러니 이 책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연구 대상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공감입니다. 뼈에 기록된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은 그 뼈의 주인이 겪었던 개인적 경험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도도한 역사의 물결에서 개인이란 하나의 알갱이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지만 그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모두 지금 우리 하나하나와 같은 인격체이자 소우주입니다. 뼈를 연구한다는 것은 즉 그 뼈의 주인과 1:1로 대화하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도 이상으로 과대평가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료와 마찬가지로 뼈를 통해 과거에 접근하는 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까요. 서문에서야 뼈를 통해 "그 시대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했지만, 그게 또 그렇게까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뼈에 기록되는 정보가 애초에 제한적입니다. 뼈에는 그 사람의 이름도, 그가 남긴 글도, 그가 입었던 옷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람 하나하나의 뼈로 사회 전체의 상을 그릴 수 없기도 하구요. 모든 사람의 뼈가 공평하게 남는 것도 아닙니다. 시신 처리 방법과 매장 방식, 사망 당시의 상황 등에 따라 뼈의 잔존 여부가 결정되거든요.

 

  하지만 인골 연구의 이러한 한계는 책을 읽을 때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보다 인골 연구의 인간미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실제의 인골 연구는 복잡한 분자생물학과 의과학적 수단들을 사용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역사를 살아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구대상에게 '송현이'라고 친근하게 이름붙일 수 있었을리 없죠. ㅎㅎㅎ 역사 공부란게 다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과거에 접근하기 위한 분투의 연속이지만 그 분투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연구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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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몸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 뼈는 우리 삶을 차곡차곡 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뼈는 금수저의 삶도 흙수저의 삶도 차별하지 않고 아주 공평하게 우리의 삶을 기록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뼈를 보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문헌에도 남아 있지 않은 생생한 삶의 기록이 뼈에는 담겨 있다.
  이처럼 뼈에 새겨진 삶의 기록을 먼 과거로까지 확장하면 그 시대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았는지 사료나 유물로는 알기 어렵지만, 뼈에는 그들의 삶을 유추할 만한 단서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국시대 사람들이 충치를 얼마나 앓았는지 문헌으로는 알 수 없으나 치아에는 그 정보가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나 평균 키를 복원할 수 있는 정보도 뼈에는 남아 있다. '응답하라 기원전 오천 년! 응답하라 조선시대!' 이야기가 이처럼 뼈로는 가능하다. (10~11쪽.)

 

  (...) 송현이의 정강뼈와 종아리뼈 표면은 주변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근육이 달라붙어 있던 자리가 변형되어 있다. 이런 흔적을 전문용어로 근육부착부위 뼈대변형enthesopathies이라고 하는데, 대개 이런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퇴행성 변화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의 뼈에서 흔히 발견된다. 노화 외에 관절이 삐끗하는 부상을 입거나 근육 또는 인대에 무리가 가는 행위를 일상적으로 반복할 때 혹은 격렬한 동작을 반복할 때에도 이런 흔적이 나타날 수 있다.
  송현이는 좌우 정강뼈와 종아리뼈에 동일하게 이런 흔적이 있으므로 부상보다는 생전에 무릎 주변의 근육을 무리하게 반복해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
  아직 성장이 다 끝나지도 않은 나이에 이런 흔적이 뼈에, 그것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소녀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매일 108배를 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무릎을 꿇고 혹은 쪼그려 앉아서 하는 행동과 자세를 반복적으로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소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금동관을 쓴 가야의 지배층이 죽어서도 함께 데려간 그 아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순장자는 주인의 입장에서 부장품의 한 종류처럼 하나의 물품으로 기능했다고도 평가된다. 그러나 이들이 착용했던 장신구와 같은 유물을 보면 아무리 순장자라 하더라도 미천한 신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주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사람들 가운데 어느 정도의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이라면 노비계급인 시녀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신분의 후궁이나 궁녀의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실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21~22쪽.)

 

  (...) 몇 점 안 남은 치아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기우다. 치아는 옛사람들이 섭취했던 식단의 종류와 식이 습관을 복원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우 매력적인 연구 자료다. 고고 유적에서 출토된 사람뼈를 연구하는 분야 중에서도 치아만 전문으로 하는 분야(치아인류학)가 따로 있을 정도니 말이다.
  먼저 치아는 기능 면에서 다른 뼈대와는 구별된다. 여타의 뼈대 부위가 장기를 보호하거나 근육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근육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과는 달리 치아는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과 직접 접촉해 음식물을 끊거나 잘게 부수는 기능을 한다. 바로 이 점이 치아가 특별히 더 매력적인 이유다. 과거 집단이 섭취했던 음식물의 흔적을 찾긴 어려우나 그 음식물과 접촉했던 뼈대인 치아는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치아의 씹는 면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실록이나 양반네의 일기에는 담기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 주로 어떤 성질의 식료를 섭취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다.
  치아가 갖는 또다른 속성은 스트레스로 인한 결함을 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 점이다. 즉 치아는 한번 손상되면 자연적인 치유가 불가능하다. 대개의 뼈대는 골절이 발생해도 또는 질병에 의한 손상이 있어도 어느 정도 자연적 치유가 이루어지지만, 치아는 예외다. 치아에 기록된 놀랄만한 정보 덕분에 특히 자라면서 영양 부족이나 질병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치아에 결함이 발생하면 몇 살 때쯤 심각한 스트레스가 있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입속에 한 사람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이는 셈이다.
  옛사람들이 어떤 속성의 식료를 주로 섭취했는지 파악하려면 치아의 씹는 면을 분석하면 된다. 즉 어떤 치아가 얼마나 어떻게 닳았는지를 보거나, 그릇에 이가 나간 것처럼 치아 표면 일부가 깨져 떨어져나간 현상(microtrauma 또는 chipping 현상이라고 부름)을 분석하면 어떤 종류의 식료를 주로 섭취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이 밖에 음식물의 찌꺼기가 석회화된 치석 덩어리가 운 좋게 치아에 남아 있다면 그 성분을 분석해 음식물의 종류를 직접 알아낼 수도 있다. (53~55쪽.)

 

  (...) 회묘에 묻힌 피장자들은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정말 잘 보존되었다. 진관동 유적에서 확인된 토광묘의 숫자는 회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지만 뼈대가 잘 남아 있는 피장자는 회묘에서 훨씬 더 많이 출토되었다. 회묘에 묻힌 이들은 매장 후 아주 오래도록 부패되지 않고 있다가 후대에 뼈로 남았고, 토광묘에 묻힌 이들은 짧은 시간 내에 부패하고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쪽이 후손의 바람과 더 맞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는 대부분 이 회묘에서 나온 사람들의 뼈대를 이용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82~83쪽.)

 

  과거에 살았던 집단이 고스란히 유적으로 남아 연구에 이용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생활인구의 일부가 고고 유적에서 수습되고 뼈 시료로 이용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개입된다. 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연히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시신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매장했는지, 매장 이후의 환경은 어떠했는지, 연구자가 어떤 방법으로 뼈대를 수습했는지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과정에 개입된다.
  특히 성장이 아직 진행 중인 아이들의 뼈는 어른의 뼈보다 작고 겉질뼈의 두께 역시 얇다. 그러니 같은 환경에 묻혔다면 어른에 비해 아이의 뼈가 훨씬 더 빠르게 분해될 수밖에 없다. 이는 뼈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결과지만 문화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즉 아이의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와 방법 자체가 어른의 경우와 달랐다면 이 역시도 편향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면 연구자가 분석하는 뼈 시료가 실제 인구집단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편향된 구조나 특성을 보일 가능성이 늘 잠재되어 있어서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과거 집단이 갖는 특성을 최대한 신뢰할 수 있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84~85쪽.)

 

  뼈에 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흔적이 남는 이유는 뼈 역시 우리 몸의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형성modeling과 재형성remodeling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에는 주로 뼈조직이 형성되고, 성장이 끝난 후 사망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뼈세포가 파괴되고 다시 생성하는 뼈 재형성의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정한 병을 앓거나 영양소가 충분하지 못한 식단을 장기간 유지한다면 뼈에도 그 흔적이 남게 된다. 그러니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만 고운 것이 아니라 뼈 상태도 고울 수밖에 없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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