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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事나부랭이

2012년 3월 21~23일의 근황

Dog君 2012. 3. 23. 21:39
1.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은 재단에서 일하는 날이다. 재단에서 하는 일이야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다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이런데다 발설하는게 좋은 것도 아니라 딱히 이 자리에서 글로 쓰기가 좀 그렇다. 더욱이 22일에는 시간외 초과근무까지 해버려서 퇴근하고 학교 오니 9시 약간 넘은 시각;;; 그렇게 하루는 끝난거지.

2. 아, 그러고보니 21일에는 졸업시험을 치른 두 학우와 기분전환을 겸해서 술을 약간 마셨다. 지난번에 파업 덕분에 여유시간이 졸라게 많이 생긴 쥐왕의 김비서KBS 정당나귀기자가 가르쳐준 비전에 따라 쏘맥신공을 발휘하였다. 당연히 다음날 아침에는 머리가 쫌 아팠다. 아침도 거르고 출근을 하니 오전내내 몸이 좀 많이 안 좋았다.

3. 따라서 별달리 대단할 것 없는 3일로 지나가나 했는데 별 생각없이 어제부터 읽고 있던 논문에서 의외의 내용이 나와서 그거나 메모해두련다.

4-1. 1919년 5.4운동을 즈음하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曾琦, 李璜, 余家菊 등은 프랑스가 러시아혁명과 마르크스주의의 전파를 막기 위해 국가사상을 고취하는 것을 목도한다. 그 때 한창 국공합작이니 뭐니 해서 '용공적' 태도를 보였던 국민당의 행보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은 1923년 12월 파리 근교에서 '중국청년당'을 결성한다. 1924년 9월 귀국한 그들은 '중국국가주의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醒獅』라는 잡지를 내고 1929년 제4차 당대표회의에서 '중국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공개한다. 이들이 내건 것이 '국가지상, 민족지상'이라는 구호였는데 이와 동일한 구호가 해방 이후 이범석에게로 계승된다. 이범석과 중국청년당의 관계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이범석이 장개석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가 국민당의 주변 정당이던 중국청년당을 모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찬승, 「탈식민, 해방과 '민족' '민족주의' 담론」에서 요약인용)

4-2. 내가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예전에 1950년대 군대 정훈교육을 추적하던 기억이 나서였다. 초기 한국군(특히 육군)의 장교 중에서는 일본군 출신이나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두드러졌는데 유독 정훈 분야에서는 이범석 계열의 광복군 출신의 비율이 두드러진다. 이는 소수파였던 광복군 계열이 한직에 가까운 정훈 병과에 주로 배치된 이유라고도 볼 수 있고 정훈의 특성상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쪽이 유리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4-3. 어쨌든 중요한건 광복군 계열이 정훈 병과에서 두드러졌다는 사실인데 광복군 출신들이 정훈을 배운데가 어디냐 하면 바로 중국 국민당 군대라 이거지. (한국군과 동일한 의미의 정훈은 미군에도, 일본군에도 없다. 되려 정훈의 형태적 기원은 중국 국민당이나 사회주의권에서 찾아야 한다고 자기네들이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내가 정훈을 계속 연구하려다가 막힌 부분이 바로 여기.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국 국민당에 대해 연구해야 되는데 내가 중국어를 모르잖아...

4-4. 어쨌거나 간접적으로나마 한 반걸음 정도 나아간 셈이니 이건 메모해둔다.

5. 그렇게해서 오늘 하루 끝나나...싶겠지만 이제부터 다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거의 한달 가까이 배째라하고 미뤘던 일인데 이번 주말 아니면 집중할 시간이 없겠다. 딱 보니 내일은 이런저런 일에 치어서 못 할거 같고 오늘 대강 개요나마 잡아놓고 자야겠다. 아, 그러고보니 나 또 주말에 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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