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진주문고 본문
내 또래의 다른 연구자들과 비교할 때 내 장서량과 독서량 수준은... 상당히 낮다. 오랜 자취생활 때문에 집이 좁아서 책을 얼마 이상 가질 수 없었다는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은, 다른 사람은 뭐 고대광실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공부한답시고 그렇게나 깝치고 다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정도 장서량과 독서량은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하겠다. 암튼간에 직업적으로든 뭐든 책과 글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마 그런 얘기. 근데 직업을 말하기 전에 내 독서의 기원은 역시 1명의 인물과 1곳의 플레이스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엄따.
먼저 1명의 인물. 고2 때 담임선생님 되시겠다.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비범한 분이셨는데, 아마도 내 인생에 영향을 주기로는 부모님 다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평소에 연락도 한 번 안 드린다... 참으로 고얀 제자다.) 구구절절 쓰자면 그것도 A4 한 바닥은 족히 채우겠지만은, 굳이 뽀인트 하나를 짚자면,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니라는걸 알려주신 거라고나 할까. 조선일보 보다가 걸리면 보는 즉시 찢어버리신다던지 하는 뭐 그런... 그 때 선생님이 골라주신 책이 한길사에서 나온 니콜라스 할라즈의 '나는 고발한다'였는데, 그걸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이라는 책도 같이 주셨는데, 사실 이 두 권은 판본만 다를 뿐, 똑같은 책이다;;;) 그때부터 책 읽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던 것 같은데, '김규항', '딴지일보', '한겨레21', '진주문고' 같은 것들의 뿌리가 다 거기에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1곳의 플레이스가 진주문고. 그때도 인터넷 서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학교에 매여사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딱히 결제할 수단이 없기도 했거니와 제목만 보고 책을 덥썩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는 동네서점 가서 책 사는 것이 오줌 싸고 나서 지퍼 올리는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사야할 책을 미리 정해뒀다면 모를까, 그득한 책을 앞에 두고 느긋하게 책을 고르려면 당연히 큰 서점에 가야했다. 동네마다 서점 하나씩을 꼭 있었던 그 때도 진주문고는 진주에서 제일 큰 서점이었고, 어지간한 소도시에는 서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이 시대에도 진주문고가 진주에서 제일 큰 서점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두어달에 한 번 정도 몇 만원 정도 여유가 생기면 버스를 한참이나 타고 서점엘 갔었는데, 그때가 막 그 동네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개발이 시작될 때라 버스에서 내리면 풍경이 꽤 황량했다. (지금이야 개발 마이 됐다. 아래께 함 가보이께 고마 마 상전벽해드마요.) 그러고 만원짜리 서너장을 쪼개고 쪼개고 경우의 수까지 다 계산해서 고심고심 끝에 책 고르고 나서, 못 고른 책은 다음에 올 때 꼭 사야지 하고 마음 먹고 막 그랬다. 그리고 한참을 서점에 못 가다가 재작년엔가 다시 서점을 찾았다. 10여년전에 만들어뒀던 멤버십카드는 당연히 무용지물이었지만, 오메 추억 돋더라. 간 김에, 책도 몇 권 집어왔다. (서울에서는 못 사는 지역사 관련 책으로 집어왔다.)
도서 유통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간지 벌써 오래고(아마도 종로서적이 문을 닫던 그 때 이미 대세는 결정난건지도 모르겠다), 어떤어떤 온라인 서점의 성공이 누구나 본받아야 할 창업신화가 되어 널리널리 퍼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할인폭도 얼마 안 되고 불편하게 버스 타고 가야 되고 책 찾기도 어렵고 가끔은 찾는 책이 없을 수도 있는 오프라인 서점은 암만 생각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의 유물 같다. 그러니까 아마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세상에는 온라인 서점만 남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것들만. 그러고 나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일갈도 그냥 예전에 어떤 분이 했던 추억의 한 마디 정도로 남겠지. 어떤 사람들이 오프라인 가게를 찾는 그 많은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온라인 가게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은 (김규항의 글을 인용해서) "그런 유익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유익들을 얻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가치 때문이다." 물론, 누구 못지않게 인터넷 서점 의존도가 높은 내가 안 그런척 이런 글 쓰는 건 좀 뻔뻔하다 싶다만은.
요새 부쩍 글이 길어지고 난삽하고 진지빠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겨울이라서 좀 센치해져서 그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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