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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여행하다 3 - 소소책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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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여행하다 3 - 소소책방

Dog君 2015. 1. 31. 16:04

  진주에서 태어나서 꼬박 20년을 살았고, 스무살이 되던 해에 그곳을 떠났다. 1차적으로는 타지로 대학을 가느라 그랬던 것이지만, 딱히 진주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미련 같은 것도 없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야 서부경남의 중심이니 경상우도 학맥을 잇는 곳이니 뭐니 하지만, 적어도 근대도시로서의 진주는 그다지 매력이 없다. 1925년에 도청이 이전한 이래로 시세(市勢)가 딱히 확장되지 못한 채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혁신도시니 공공기관 이전이니 뭐니 나발을 불어도 30만 초반의 인구수도 별달리 늘지 않을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니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진주를 떠나는게 당연하지.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마 가장 큰 것은 유등축제 때문인 것 같은데, 수십수백만씩 하는 관광객이 찾아드는 거대한 이벤트 덕분에 도시에도 활기가 차고,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도 많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1~2년 전부터 유등축제를 두고 서울시와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고 있자면, 아이고 이 빙삼들아... 싶기는 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결국 하고 싶은 애기는 이제는 진주에도 가 볼 만한 곳과 할만한 것이 많이 늘어났다는 거. 그래서 그런지 나도 뭔가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기는 한데... 암튼 그 준비운동의 일환으로 소개하는 진주의 컬춰럴 플레이스는 소소책방.



  요새는 헌책방이라는게 그냥 오래된 책만 그득하게 쌓아놓는 창고 같은게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하는 문화공간처럼 꾸미는 데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소소책방.


보다시피 소파에 걸터앉아서 책 보다가 가도 된다. 오래 서성거리면 사장님이 (보다 못해) 차를 타주시기도 한다. [Dog君, 2015.]


  소소책방이 있는 경남과학기술대학(옛 이름은 진주산업대. 진주 사람들은 지금도 이 동네를 걍 산대 앞이라고 부른다.) 앞은 사실 그다지 번화한 곳은 아니다. 대학 앞이라서 번화했던 것도 다 예전 이야기고, 지금은 상권의 중심이 다른 동네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뭐 그냥 쏘쏘. 어떻게 보면 책방 분위기에는 그런게 더 어울리는 것도 같다만은...


  또 다르게 말하면 버스터미널 바로 옆이기도 하다. 그래서 버스 내려서 바로 오기도 좋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 우리 집하고도 가깝다. ㅋㅋㅋ. 집에서 탄압받을 때마다 여기로 도망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살짝 더 해보면서...


나올 때는 나름대로는 센세이셔널했지만 지금 뭐 그닥...인 근대를 다시 읽는다 시리즈를 여기서 만나는구나. [Dog君, 2015.]


  (중후한 중년 미남풍의) 주인 되시는 분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시다가 얼마 전에 서울 생활 정리하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빡센 도시에서 빡센 직장 생활을 했으니 인생이 올매나 빡셌겠노. 이렇게 내려오시니까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단다. 언젠가는 진주에 내려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겐 일종의 전범이 될만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는데, 문제는 직장에 매인 몸이라는게... 아니 그 전에 부모님의 탄압부터 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맞다. 저렇게 해놓으니 꽤 만만해 보이는데? ㅋㅋㅋ [Dog君, 2015.]


  대학 1학년때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작고하신 어느 노교수의 연구실에 심부름을 갈 일이 있었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연구실 철문을 조심히 밀고 들어가니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확 밀려나왔고, 몇 겹으로 쌓인 책장들 너머에서  교수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그게 오래된 책에 대한, 내 가장 좋은 기억인 것 같다.


  그런 냄새가 나는 곳이 가끔 있다. 대개 헌책방들이 그러한데, 응암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그랬고, 또 여기가 그렇다.


만화 및 기타 잡다한 책 코너. 여기서 을지서적판 은하영웅전설 전질을 획득. 하지만 외전은 없... [Dog君, 2015.]


  부정기적이지만 공연 같은 것도 아아주 가끔 열기도 한단다. 언제 하는지는 손님도 사장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런 공간이 하나씩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것 같다. 그러니까 인구 30만짜리 작은 도시지만, 그 작은 도시에도 젊음이 있고, 문화가 있고, 생각이 있다. 어떤 도시의 질(質)이라는 게, 맥도날드가 몇 개 있고, 땅값이 얼마나 오르고, 인구가 얼마나 많고 뭐 그런 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누릴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거 아닐까. 나는 내 고향 진주가, 작지만 좀 더 풍성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꽂힌 책만 보면 평화방을 연상케 한다. 한 때 (의식있는) 대학생들의 필독서라고 했던 몇몇 책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Dog君, 2015.]


  좀 찾아보니, 블로그도 있다. 매일매일 글이 올라오고 있고, 읽을만한 글들도 많다.


소소책방 블로그 바로가기


책 띠지를 걸어놨다. 책이 늘어나면 늘 띠지 처리가 골친데, 이렇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구만. [Dog君, 2015.]




  버스터미널 바로 옆이라고는 했는데, 진주에는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따로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소소책방은 고속버스터미널 옆이다. 서울에서 올 때는 강남버스터미널(3,7호선)에서 타면 바로 여기서 내려준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진주 인근 지역을 오가는 버스들이 오는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서울에서 올 때 남부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를 타면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니까 주의.)


  진주 내에서 움직일 때는 그냥 버스를 타도 된다. 버스 노선은 인터넷 좋으니까 알아서 찾으면 되는데, 버스 타기 귀찮다 싶으면 그냥 택시 타서 '산업대 정문' 혹은 '고속버스터미널' 앞으로 가자고 하면 된다. 진주는 워낙 작아서 어디서 타더라도 6,000원 이상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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