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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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09.)

Dog君 2018. 6. 2. 19:06


1. 비록 그것이 거짓된 것이라 해도, 희망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 목적이 뚜렷이 정해진 삶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라는 존재의 쓸모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존재의 가치가 꼭 그렇게 효용 여부에만 있는 걸까.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노래가 거의 끝날 즈음 나는 무엇 때문인지 방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퍼뜩 눈을 떴다. ‘마담’이 문간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충격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다음 순간 새로운 종류의 경계심이 나를 엄습했다. 그 상황에는 뭔가 기묘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지만(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문을 완전히 닫지 않는다는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마담은 바로 문턱에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복도에 조용히 서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방 안에서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음악을 뚫고 들려온 그 흐느낌 소리에 내가 몽상에서 깨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 그 일을 생각하면 그녀는 교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른이었으므로 먼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나를 책망하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거기에 그대로 선 책 그녀는 줄곧 흐느끼면서 우리를 쳐다볼 때면 항상 떠올리던 눈빛, 마치 섬뜩한 뭔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눈빛에 뭔가 다른 것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pp. 106~107.)


  하지만 루시 선생님의 눈길은 이제 우리 다수를 향해 있었다.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런 얘기가 줄곧 들려오고 그런 얘기를 계속하는 게 허용되고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홈통에서 더 많은 빗물이 쏟아져 선생님의 어깨에 떨어졌지만, 선생님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 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 건지 듣긴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감히 말하건대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데 무척 만족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셋아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pp. 118~119.)


  “아니야.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야.” 그는 차에서 몸을 떼고는 공기압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발로 앞바퀴를 눌렀다. “내가 말하려는 건, 루스한테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네가 지난번에 왜 포르노 잡지들을 그렇게 넘겨 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는 거야. 그래, 이제 난 확실히 알 것 같아. 물론 추론에 불과하지만. 하지만 조금 전 루스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찰칵 하고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줄곧 앞만 바라본 책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게 있어, 캐시.” 이윽고 그가 다시 말했다. “루스 말이 맞다 해도 어째서 네가 너의 근원자를 찾기 위해 낡은 포르노 잡지를 뒤적여야 하는 거지? 어째서 너는 그 여자들 중 하나가 네 근원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pp. 252~253.)


교정.

43쪽 11줄 : 점심  식사 -> 점심 식사 (띄어쓰기가 2칸)

44쪽 3줄 : 없기도 했지만 , -> 없기도 했지만, (띄어쓰기 오류)

262쪽 5줄 : 노포크 -> 노퍼크 (외국어 표기라 아무렴 어떻겠냐만은, 앞에서는 계속 '노퍼크'라고 표기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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