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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고아 (우줘류, 아시아, 20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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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고아 (우줘류, 아시아, 2012.)

Dog君 2018. 7. 29. 13:38


1.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예전에 선배에게 추천받고 사둔 것을 이제서야 꺼내 읽었다.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2. 분명 내가 읽는 것은 타이완 소설인데, 이 내용은 필시 어딘가 한국 소설에서 읽었던 것만 같은 엄청난 기시감이 드는 것은, 타이완과 남한이 지난 세기에 겪었던 역사적 경험이 그만큼 닮았기 때문이겠지.


  타이밍은 펑수재와 아편쟁이, 이 두 명의 손님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물론, 후 노인은 펑수재를 존경하고 있었다. 펑수재를 대하는 파격적인 대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타이밍은 후 노인이 말하는 것처럼 수재나 거인이라는 사람들을 그다지 동경하지는 않았다. 뭔가 막연하지만 그들에게서 망해 가는 이들의 어떤 숙명 같은 것을 느꼈다. 그보다도 타이밍의 마음을 끌어당긴 사람은 아편쟁이의 아들 즈다(志達)였다. 즈다는 보통 다런(大人)이라고 불리는 순사보였다. 그는 일본어도 아주 잘했다. 어딜 가더라도 위세가 당당했고 담배는 시키시마(敷島)를 피우고 새하얀 손수건을 사용했으며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도 다녔다. 시골 사람들에게 그 새하얀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행위는 매우 아까운 생각이 드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즈다가 지나가면 샤봉 같은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시골 사람들이 일본 냄새라고 부르는 일종의 문화적인 냄새였다. 아직도 빨래할 때는 목랑수(木浪樹) 열매나 차 열매를 사용하며 세수할 때는 애기동백 열매를 사용하는 시골 사람들에게 비누 냄새는 아주 값비싸고 진귀한 물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타이밍은 다소 경박함은 있지만 그러한 즈다에게서 뭔가 새로운 시대의 풍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p. 32~33.)


  그 일이 있고 다시 사흘이 지났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방과 후 천 수석이 갑자기 타이밍의 교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 저녁 타이완 교사들이 타이밍을 위해 환영회 자리를 만들었으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말할 때 그의 그 은밀한 표정에는 뭔가 음모 같은 게 숨어 있어 보였다. 타이밍은 정말이지 귀찮았다. 그들의 뻔한 속셈을 타이밍이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필시 교장이 일본인 교사들만 불러 나이토 히사코 환영회를 연 일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노골적인 의도에 타이밍은 정말 난감하고 난처했다. 천 수석이 “우리만의......”라고 할 때 그 떠듬거리던 모습이나 독특한 말투에서 타이밍은 그들의 계략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만의 행동이란 모임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조금씩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에 옮겨 보겠다는 것인데, 이건 결코 타이밍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 일은 단순히 일본인 교사들과 타이완 출신 교사들 사이의 분란에 그치지 않고 틀림없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말 것이었다. 적어도 타이밍은 그렇게 생각했다. 때문에 타이밍은 모두의 호의만은 감사히 받겠으니 괜히 번거롭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누차 사양하고 고사했다. 그러나 천 수석은 이를 타이밍의 괜한 겸손이라 생각했는지, 환영회 준비도 이미 다 해 놓았으니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pp. 55~56.)


  이윽고 타이밍은 낯익은 피치로 ‘운제서원’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는 초라한 파옥 앞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저문 뒤였다. 평생을 예고에 헌신해 온 펑수재가 이 황량하고 외진 곳을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로 삼았다니...... 그러기에는 너무나 적막하고 처량한 곳이었다. 이 역시도 아마 망해 가는 시대의 상징적인 하나의 풍경이리라! 타이밍은 파옥 앞에 서서 그 낯익은 필적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는 사이, 타이밍의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감개무량했다. (pp. 94~95.)


  남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대서 남편인 아신거(阿新哥)와 아이들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타이밍은 대나무로 짠 벽 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자려고만 하는 산모를 억지로 깨우려고 귓가에 큰 소리로 자꾸 “아신싸오! 아신싸오!”라고 부르고 있었다. 후산(後産)이 나오지 않아 출혈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삼 다린 물을 마시게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인삼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타이밍은 산모를 안정시키도록 주의 주었지만 산파 역을 맡은 여자는 ‘자면 죽는다’고 전해 들은 말만 믿고 타이밍의 말은 듣지 않았다. 출산에 대해서는 타이밍도 아는 게 없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조용히 잠을 재우는 게 맞다고 여겨졌다. 뭐니 뭐니 해도 의사에게 보이는 쪽이 제일 낫다고 생각한 타이밍은 주재소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밤중이라 아무리 걸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타이밍은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그때 남편 아신거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방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 엄마”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타이밍은 이 사람들의 무지함에 화가 났다. 이 사람들은 현대 의학을 믿지 않았다. 타이밍이 의사를 부르려고 하자, 당사자인 아신싸오조차 말렸다.

  “의사는 부르지 마세요. 남자에게 보일 바에는 죽는 게 나아요.”

  가쁜 숨결을 몰아쉬면서도 이렇게 소리쳤다. 이런 상태로는 의사가 와도 과연 제대로 치료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다못해 산파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보겠지만 이런 난산에 산파의 도움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대갓집 마님들이 출살 때에 한해서만 산파를 청한다고 생각했다. 농촌 아낙네 주제에 산파를 부르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출산을 운에 맡기는 것이었다. 순산한다면야 괜찮지만 난산이 되더라도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런 무지와 도통 깨지지 않는 어리석은 관습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산모의 생명과 영아의 생명까지도 무의미하게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pp. 147~148.)


  ‘나에게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봉건성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과거의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방어적이고 반발적으로 호감을 갖지 않게 된다. 새로운 것은 당연히 새로운 도덕률과 문화 감각으로써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어딘가 기묘해 보이는 행동은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 이전의, 다시 말해 사회 진화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피할 수 없는 현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슈춘도 희생자의 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그나마 조금 슈춘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자신에게 강제할 수 있어도 타이미으이 감정은 거기까지 용인되지 않았다. 지금 아내의 태도는 뭐 그런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타이밍은 가까운 장래 아내의 정조에 위기가 찾아올 것 같은 예감했다. 그런 아내의 불륜조차 사회변혁의 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겪어야 될 희생이니, 남편은 무조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극히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때를 대비해 취해야 할 남편으로서의 태도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pp. 222~223.)


  강물이 느릿하게 뱃전을 쓸어내리며 흘러갔다. 배가 내려가는 방향으로부터 밀물을 타고 무언가 이상한 게 떠내려 왔다. 뱃전에 닿을락 말락 가까이 밀려왔을 때 자세히 살펴보기 그것은 강물에 고개를 처박은 남자의 사체였다. 비정할 대로 비정해진 대륙에서는 물에 빠진 시체조차 끌어올리려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남자의 익사체 따위는 그저 한 줌의 티끌만도 못한 것이었다. 완만하게 상류로 멀어져 가는 그 이름모를 남자의 시체를 바라보며 타이밍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잘 있거라, 대륙이여!”

  강 뒤로 가로누워 있는 상하이의 거리는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p. 256.)


교정.

137쪽 19줄 : 그중용의 정신 -> 중용의 정신

148쪽 1줄 : 인삼 다린 물 -> 인삼 달인 물

180쪽 20줄 : 오입쟁이 찾으러 -> 오입쟁이를 찾으러

223쪽 2줄 : 찾아올 것 같은 예감했다 -> 찾아올 것 같다고 예감했다

293쪽 6줄 : 처세술 한 방편 -> 처세술의 한 방편

375쪽 10줄 : 살륙 -> 살육

393쪽 3줄 : 신푸공학교(埔公學校) -> 신푸공학교(新埔公學校)

393쪽 11줄 : 부임 -> 부임한다

393쪽 15줄 : 좌천되었다 -> 좌천된다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시제를 통일한다면 이렇게 고쳐야 한다)

395쪽 8줄 : 징병제 실시한다 -> 징병제를 실시한다

396쪽 7줄 : 『남원집(藍園集)』 출판한다 -> 『남원집(藍園集)』을 출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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