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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학사 (조지 이거스, 푸른역사, 199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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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학사 (조지 이거스, 푸른역사, 1999.)

Dog君 2018. 7. 23. 17:45


1. 대학원 때 두 번 정도 읽었던 것 같고, 이번에 또 읽었으니 삼독이 되나.


2.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마주한 어느 역사학자의 분투기라고나 할까. 제목은 20세기 사학사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론에 맞서, 근대 역사학이 어떻게 '사실'(혹은 '실재')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일관되게 물고 늘어진다.


3.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이 시큰둥해진 지금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있다. 반지성주의와 영상/음성언어가 문자언어를 압도하는 이 시대에, 역사학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게 준 통찰, 잘 정리해놨다가 준비하는 글에 잘 녹여넣어야지.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적 비판에는 중요하고 타당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단선적인 통합적 역사의 개념은 지지될 수 없으며, 역사는 연속성뿐 아니라 단절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포스트모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전문적 역사학의 지배적 담론에 깊이 새겨진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올바르게 지적했을 뿐 아니라, 전문가의 권위로 말하는 과장된 주장들을 정당하게 공격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합리적인 역사 담론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역사적 사실과 허위의 개념을 의문시함으로써 목욕물을버리면서 아이까지도 던져버리는 과오를 범했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허구적 요소를 포함하는 역사 담론과 주로 실재를 해석하는 것을 추구하는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유동적 경계뿐 아니라, 정직한 학문과 선전·선동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마저도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 (p. 32.)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역사과학을 포함해서 과학은 그 분과에만 고유한 일단의 유리된 사고 과정으로 결코 축소될 수 없고, 단지 언제나 학문적·과학적 제도의 틀 안에서 작업하면서 대다수의 동시대인과 실재의 본질과 관련된 전제들을 공유한 채 살아서 활동하는 인간을 포함한다. 과학은 항상 연구 관행과 의사소통의 형태를 공유하는 학자들의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역사 서술의 역사를 학문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제도와 사회적·지적 배경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pp. 39~40.)


  프랑스와 미국의 역사가들은 역사학과 사회과학 간에 좀더 긴밀한 연관 관계를 확립하는 데 더욱 개방적이었다. (중략) 프랑스의 경우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 역사 연구에 반대하는 투쟁을 주도한 것은 사회학이었다. 1888년에 에밀 뒤르켐(Emile Durkeim)은 「사회학 강의 Cours de science sociale」에서 역사학이 과학의 지위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역사학은 특수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경험적 검증을 할 수 있는 일반적 진술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경험적 검증이야말로 과학적 절차와 사고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역사학은 엄격한 과학이 될 수 있는 사회학에 정보를 제공하는 보조 과학이 될 수 있을 뿐이었다. 뒤르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경제학자 프랑수와 시미앙(François Simiand)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사만이 사회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 역사학의 한 분야였다. 왜냐 하면 수량과 모델을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이었다. (pp. 61~62.)


  그러나 『역사 작업장』지를 여타의 역사 학술지와 구별시킨 것은 (중략) “대학 동료 간의 폐쇄된 집단보다는 폭넓은 민주적 독자에게 도달하고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전문 역사학의 한정된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명백한 의도였다. (중략) 창간호의 권두언은 역사 연구의 전문화에 반대하는 긴 연설로 시작한다. 여기서 이러한 전문화는 역사 연구의 “점증하는 파편화”와, 정치·사회와의 무관함, 자율성 상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학계의 경직성을 낳았다고 간주되었다. (후략) (p. 141.)


  그렇지만 이들 일상 생활의 역사가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군중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세계사적 과정에서 혹은 익명의 군중들 사이에서 잊혀져서는 안되는 개인들로 파악한다. (중략) 만약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망각으로부터 구출해 내고자 한다면, 역사를 더 이상 단일한 과정으로, 즉 수많은 개인들이 묻혀 버리는 거대 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별적 중심을 지닌 다면적 흐름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적·방법론적 역사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이제 역사가 아니라 역사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들이 문제가 된다. 또한 다수 사람들의 개인적 삶을 다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부합하는 경험 인식론을 필요로 한다. (pp. 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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