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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개, 2018.) 첫번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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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개, 2018.) 첫번째

Dog君 2018. 9. 8. 11:02


0-1. 유시민이 『역사의 역사』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복잡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야 불만이 가득하고, 그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자면 얼마든지 물고 늘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의 역사』가 이상하게 보이는게 어디 나한테만 그렇겠나. 당장 『기획회의』 471호에 실린 「유시민이 예능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강양구는 『역사의 역사』가 여전히 80년대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최근의 연구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하게 비판했다. 그 글의 내용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0-2. 하지만 그것만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의 안과 밖을 나누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다. '책의 안'이라 함은 책의 내용에 대한 내 나름의 비판일 것이고, '책의 밖'이라 함은 이 책을 둘러싼 상황들에 대한 내 생각이 될 것이다.


1-1. 사학과 전공수업 중에 ‘사학사史學史historiography’라는 과목이 있다. 풀어 설명하자면 ‘역사학의 역사’, ‘역사서술의 역사’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수업의 가장 큰 전제는, 역사서술이라는 것이 그냥 과거 있었던 일을 그대로 쓰는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대상에 대해서 연구하고 서술한다 하더라도, 역사가가 처한 조건이나 환경 등에 따라 역사서술 그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역사서술의 역사’라는 (얼핏 봐서는 그냥 말장난 같은) 표현이 성립 가능한 것이다. 김춘추와 최명길에 대한 평가가 시대와 평가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1-2. 그래서 사학사 과목은 사학과 전공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축에 들어간다. 그냥 역사책 하나만 읽어서 될 일이 아니라 그 책 속에 들어있는 미묘한 뉘앙스와 관점의 차이를 잡아내야 하고, 그러한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가 개인의 이력과 그를 둘러싼 당시의 환경들까지 폭넓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온 과에서는 4학년 전공수업이었는데, 나는 이걸 멋도 모르고 2학년 때 수강신청했다가 한 학기 동안 정말 피똥을 쌌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도 사학사 관련 책에는 선뜻 손이 안 간다. 얼마나 어렵고 지겨운지 아니까. (트라우마가 남은 건가...)


그때의 나는, 선배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2-1. 그리고 유시민이 『역사의 역사』라는 사학사 책을 냈다. 서론에서 유시민은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사학사'가 아니라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라고 극구 강조한다. 여기부터 일단 좀 이상하다. ‘역사 서술의 역사’가 곧 ‘사학사’인데 왜 그걸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대해서 쓰지 않고 ‘book’에 대해서 쓰겠다고 주장하는 셈이랄까) 이 책이 전문 역사학 연구자를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이 책의 독자가 그 섬세한 차이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2. 물론 그러한 구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학사라고 하면 다뤄야 하는 부분이 너무 넓고 많아져서 정말 어마어마한 작업이 되겠지만, ‘역사 서술의 역사’라고 범범하게 제목을 달아놓으면 아주 전문적으로 한 분야만 파지는 않은 보통의 저술가가 한정된 분량에 담아낼 수 있는만큼의 내용만 다루겠다는 선언으로 이해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부러 전문지식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전문가들의 태클이 들어올 여지를 줄이겠다는 사전 포석이겠지. 그렇게 전문가와는 거리를 두는 듯하다가도 인터뷰고 방송이고 나가서 역사학이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훈계 비슷하게 말씀을 늘어놓으시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지만... 뭐... 머 우짜겠노. 나보다 더 잘 팔리고 나보다 더 많은 데서 불러주니까 그런 거겠지. (끙...)


3. 전체적으로는 역사학의 주요 고전(‘고전’의 범주에서 『총, 균, 쇠』와 『사피엔스』는 빼자. 내가 암만 그래도 이건 인정 못하겠다.)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을 찾기는 어려운데, 굳이 정리하자면 ‘역사서술은 그 자체로 객관적일 수 없고, 그것을 쓰는 역사가의 문제의식이나 그가 처한 조건과 환경 등의 영향을 받는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에이, 그거야 뭐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장 얼마 전의 국정교과서 난리 때만 해도 그렇다. 찬성 측 일부에서는 국가가 정사正史를 편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고, 반대 측 일부에서는 국정교과서는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로 반대 입장이지만, '객관적이고 올바른 역사'(혹은 정론正論)라는 것이 따로 있고, 그에 부합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옳고그름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서술의 주관성이나 맥락을 강조한 이 주장은 일단 의미가 있다.


4. 이런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룬 부분. 중고등학교 국사에서 그러하듯, 카는 랑케의 반대항으로 흔히 소개된다. 랑케는 충분히 많은 사료를 검토하면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역사학자고, 카는 반대로 역사가의 주관성을 더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 역시도 그러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카를 랑케의 반대항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5-1.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듯이, 카의 생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역사가와 역사서술이, 그것이 놓인 조건과 환경에 의해 규정받기만 하는 걸까? 그렇다다고 한다면, 역사가는 그저 조건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규정당하기만 하는 피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역사가가 자신을 둘러싼 조건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문제는 의외로 복잡한 문제라서,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역사가들이 각자의 대답을 내놨다. 일단 이 책의 저자인 유시민은, 아래와 같은 서술로 미루어 볼 때, 역사가를 상당히 피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전략) 다음과 같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떤 이유에서 인간이 거의 다 죽고 문명이 모두 폐허가 되었다. 도서관의 책과 인터넷 디지털 정보가 다 없어졌다. 사피엔스 가운데 오로지 극소수의 한국인만 살아남았다. 긴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이 폐허에서 2010년 한국 언론사의 신문철을 발굴했다. 그리고 랑케와 꼭 닮은 사람이 그 희귀한 사료를 근거로, 사라져 버린 옛 문명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려는 야심을 품고 역사를 쓴다고 해보자. 그가 쓰는 역사의 내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어느 신문이냐는 것이다. 『조선일보』인가 『한겨레』인가에 따라 미래의 랑케가 쓰는 역사는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영도자’가 되거나 ‘방탕한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에게 전해진다. (pp. 230~231.)


5-2. 워낙에 단순한 예시인 덕분에 이해하기도 쉽지만, 미안하게도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지도 못한다. 이딴 식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사료만 남는 일도 없고, 단 하나의 사료만 남았다 하더라도 거기에만 의존해서 글을 쓰는 역사 연구자는 없다. 역사학 연구에서 사료의 교차 검증은 필수이고, 그런 정도 사료는 세상에 얼마든지 남아있다. 기원전 이천몇 년의 고조선 역사를 기록한 책이 『환단고기』 뿐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걸 믿지 않는 것이 꼭 같은 이치이다. 중국 측 기록이나 고고학 자료를 통해 교차검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설사 사료가 단 하나만 남아있더라도, 그 사료를 이용할 때는 비판적 검증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기록을 남긴 자가 당대에 어떤 조건에 있었는지를 따져보고, 행간에 숨은 의미는 없는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읽고 또 읽고,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것이 역사학 연구자가 그간 내내 해왔던 일이다. ‘두터운 묘사’니 하는 방법론이 괜히 나왔겠냐고.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단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도 그 얼마나 많은 해석의 여지들이 있는가. 그것만 알아도 저렇게는 못 쓴다.


5-3. 역사가의 문제의식, 그러니까 역사가 개인의 주관성을 강조한다해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도 논리적인 위험이 있는데 역사가 각자의 주관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자칫 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고 그래서 세상사람들 말이 다 맞다는, 뭔가 이상한 상대주의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학문의 존립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그저 주관성에 기초한 n개의 주장들만이 무한히 난립한다면, 거기서 무슨 진리가 존재할 것이며 토론과 논증은 또 어떻게 가능하겠냔 말이다. 물론 뭐, 계보학이니 담론이니 해서, 역사가의 주관성을 대단히 강조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주장도 중요하기는 하고, 아마 저자인 유시민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주장을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와중에 내놓아서, 마치 카가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쓰면 좀 곤란하다. 틀렸기 때문이다. 카는 1)과거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과 2)모든 역사는 전적으로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 둘 모두를 경계했다.


  역사의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관계를 검토해온 우리는 분명히 불안정한 상태, 즉 역사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편찬하는 것이며 해석보다는 사실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보는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의 스킬라*와 역사란 해석과정을 통해서 역사의 사실들을 확정하고 지배하는 역사가의 정신의 주관적 산물이라는 마찬가지로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의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렵사리 항해하는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 셈이다. (중략) 역사가의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인간은,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나 아주 늙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환경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으며 무조건 그것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그런 반면, 인간은 결코 그의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그것의 무조건적인 지배자일 수도 없다. 인간과 그의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같다. 역사가는 그의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연구 중에 있는 역사가가 잠시 일을 멈추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다 알 수 있듯이,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E. H. 카 저, 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997, pp. 49~50.)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각각 메시나 해협의 양쪽에서 지나가는 배를 공격한다고 전한다.


5-4. 그러니까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풀고 싶었던 여러 숙제 중 하나가, 역사가의 주관성을 드러내면서도 역사의 객관성을 포기하지 않는, 그 애매한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인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어쩌고저쩌고는 1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2장 이후부터 카는, 그렇다면 역사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집중적으로 찾아가고, 이것이 『역사란 무엇인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역사가의 주관성 이야기는 카의 전체 논의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나마 최종적으로 그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역사』는 무슨 일인지 『역사란 무엇인가』를 1장까지만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2장 이후는 주마간산 식으로 훑고 넘어간다. 6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1개의 장만 다루고 나머지는 볼 필요 없다는 식으로 쓰시다니. 아니, 책 서두에서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를 쓰겠다고 공언하시고서는 본인이 필요하신 부분만 뚝 잘라 오시면 좀 많이 곤란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구성하는 모든 텍스트가 어떤 문제의식과 조건과 환경 하에서 쓰여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라는 책의 저자가 응당 져야 할 책임 아닌가.


6-1. 하나 더 검토할 부분은 신채호에 관한 것이다. 신채호에 대한 저자의 관점 역시 위와 같다. 신채호가 쓴 역사서 역시 제국주의 침략을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채호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인물평을 소개한다.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리고 김유신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어린이용 위인전에서 처음 만나는 역사 인물이다. 세 사람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와 비교해 보라. 역사가 쓰는 사람의 철학과 연구 방법에 따라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새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p. 202.)


6-2. 신채호에 대한 부분은 크게 2개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역사서술은 역사가의 문제의식(혹은 현실인식)과 그가 처한 조건 및 환경과 관련된다. 2)신채호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1)과 2)의 관계이다.


6-3. 1)이 주장이고 2)가 근거라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편의상 문장을 축약해서) “신채호가 민족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서술은 문제의식과 조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이거라면 오케이. 나도 인정할 수 있다.


6-4. 그런데 1)과 2)가 서로 별개의 주장으로 각각 이해된다면, 이건 좀 문제다. 2)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신채호의 사상은 시기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에 실린 「신채호」에서는 신채호의 사상 변화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 첫번째는 1910년 이전으로 대체로 우승열패론이나 사회진화론이라고 할만한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한 시기이다. 두번째는 1910년 이후 만주 지역에서 활동할 즈음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시기로, 『역사의 역사』가 다룬, 『조선상고사』를 쓴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세번째는 아나키즘을 수용한 대략 1920년대 초중반 정도 이후의 시기이다. 즉, 신채호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는 사상적 무기가 단지 민족주의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현실 하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대응책이 강구되었다는 거다. 따라서 ‘신채호의 역사 서술’ 혹은 ‘신채호의 현실인식’, ‘신채호의 문제인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채호의 사상 전체를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걸 제대로 논증하지 못하면 1)의 주장까지 흔들린다.


6-5. 하지만 암만 책을 읽어봐도 『조선상고사』만을 인용한 유시민의 글은, 신채호의 특정한 한 순간에 대한 것으로만 한정되어 읽히지 않는다. 그보다는 신채호 전체에 대한 서술로 읽힌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만으로 자기 주장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필요한 부분만 뚝 잘라와서 써놓고 다른 부분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 이건 결국 전체를 왜곡하는 것이다. 논증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인용할 요량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한정적이고 신중하게 문장을 썼어야 한다.


그냥 군더더기로 붙인 이야기-1.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한 것인데, (따라서 너무 진지하게 받지는 마시라) 아주 사아아아아아알짝 사이비역사학 냄새가 나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서술이 있다.


  신채호는 안시성 전투의 정치적 결과를 평가하는 대목에서 문헌 정보를 비교·검증하는 솜씨를 보여준다. 그는 조선의 사서에는 당의 사서에서 가져온 것 말고는 안시성 전투 관련 기록이 거의 없고 당의 기록 자체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조선의 역사가들은 사대주의에 빠져 연개소문의 승전 기록을 없애 버렸고 당의 사관들은 황제의 권위와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기록을 날조·왜곡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진단이 옳다면 안시성 전투 기록만 그랬을 리 없다.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다룬 모든 역사 기록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삭제·왜곡·날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시성 전투 관련 문헌 기록을 비교·검증한 아래 글은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p. 198.)


그냥 군더더기로 붙인 이야기-2. 조중관계를 다룬 사료가 삭제·왜곡·날조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의 판단일까. 신채호일까, 유시민일까. 물론 이 책, 이 문장으로는 알 수 없다.


7-1.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 책은 『역사의 역사』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역사 서술의 역사’ 중에서 극히 일부를 편의적으로 잘라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이 “패키지 여행” 같은 것이라고 했지만 글쎄, 일부분만을 보여주고 나머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과연 “패키지 여행”에 값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7-2.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인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런 거 없었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더 명확한 논증을 위해 그 외의 다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한국의 역사’라고 타이틀을 달아놓고, 실제로는 경남 하동군의 역사만을 쓰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분만을 보여주고,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쓰면 절대 안 된다. 예컨대 위에서 든 것처럼 '경남 하동의 역사'를 써놓고 이걸 '한국의 역사'라고 장난질을 치면, “한국어에서는 대변大便과 형兄의 구분이 없다”라는 식의 (실제로 하동에서는 ‘형’을 ‘응가’라고 하거든) 괴상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책의 후반부에 있는 아래 문장을 보자.


  최근 들어 역사 서술 방법의 흐름은 인류의 역사를 쓰려고 했던 헤로도토스와 할둔을 향하고 있다. 역사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경향성 가운데 하나는 역사 서술의 단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인간 공동체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인류 전체에 귀속감을 느끼는 사피엔스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다. (p. 283.)


7-3. "최근 들어 역사 서술 방법의 흐름은 인류의 역사”라니... 이건 대체 무슨 자신감인가. 거시적인 측면에서 한 두 개의 키워드로 인류사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체로 출판시장에서 그런 책이 많이 보이는 것 뿐이고 전체 역사연구의 흐름에서는 그저 하나의 흐름에 불과하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좀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세계로 파고들어가려는 정반대의 연구 경향은 이런 식으로 뭉텅이로 잘려나가는구나.


7-4. 이쯤 되면 이 바닥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역사학 연구라는 게 사실 뭐 대단히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까지 단순하고 소략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략되어도 괜찮은 연구는 없다. 여름 땡볕 아래에서 피사리하고 소돼지똥 지어 나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셰프도 있고 미슐랭 가이드도 있는 거다. 잘 나가는 셰프가 “우리나라 벼는 다 통일벼인데, 요즘은 이거 다 아키하바라로 바꿔 심는 중이여.”라고 하시면, 그래 놓고 이게 '한국 농업의 역사'라고 마을회관 확성기에 대고 온동네에 방송하시면 거기다 대고 '사람들이 농사에 이만큼이라도 관심 가져주니 얼마나 좋아요'라고 하하 웃고 넘길 사람이 퍽이나 많겠다.


8. 대충 여기까지가 책의 안에 대한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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