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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도솔, 20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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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도솔, 2002.)

Dog君 2018. 11. 22. 11:04



1. 가뜩이나 소설을 잘 안 읽는데, SF(미국에서는 Sci-Fi라고 쓴다카더라) 소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나는 헌책방에서, 왜 하필이면 이 책을 골랐을까. (심지어 초판은 1993년에 나온 책이다.) 


2.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SF 소설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국민학교 도서관에 있던 학원출판공사판 공상과학소설 전집을 무척 좋아했다. 전집이라기에는 빠진 것이 너무 많았지만(몇몇은 발췌번역이라고;;;), 그때는 뭐 그런거 누가 신경이나 썼나. 존 윈덤의 ‘트리피드 침략’과 존 크리스토퍼의 세다리(tripod) 시리즈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도 좋은 기억이라 수소문 끝에 몇 년 전에 이 전집을 구하기도 했고(완벽한 전집은 아니다), 세다리 시리즈도 원서로 구해 읽기도 했다(1권만...). 


3. 그랬던 SF 장르를 한참만에 다시 읽으니 참 재미있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읽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 것만 두 번인데, 이게 몇 년만에 겪는 일인지 모르겠다. 의외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랄프 니모는 대학 학위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는 쪽이었다. 둘 다 상당히 젊었을 때, 랄프는 포스터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학위를 딴다는 것은 파멸적인 길로 첫 발을 내딛는 거지. 이왕 딴 학위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대학원에도 가고 박사 과정도 밟게 되는 거야. 그러다 결국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나의 지엽적인 조각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완전한 바보가 되어 버리지 똑똑한 바보. 

  반면 대학 같은 데는 안 가고, 어떤 성숙한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수선한 정보들을 흡수하지 않고 살 수도 있어. 어수선한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지성만 갖추고, 명석한 사고를 통해 그 지성을 훈련시키게 되면, 정신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또 과학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중략) 

  「그럼 왜 안 되는데? 주변은 중요한 거야. 너희들 과학자들은 글을 못 써. 사실 과학자들한테는 그걸 기대할 필요도 없는 거지. 과학자들에게 체스의 위대한 고수가 되거나 바이올린의 명인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말을 정리할 줄 알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말아야지. 글을 쓰는 일 역시 전문가들한테 맡기면 되는 거잖아. 

  맙소사, 포스터, 백 년 전의 과학 문헌들을 한번 읽어봐라. 그때의 과학이 구식이고 표현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건 염두에 두지 말고 그냥 읽고 이해만 하려고 해봐. 씹어도 이빨이 안 들어갈 정도의 아마추어 글들이야. 인쇄된 종이들이 아까울 정도야. 논문들 전부가 의미가 없거나 이해할 수가 없거나, 아니면 둘 다야.」 

  「하지만 삼촌은 인정을 못 받잖아요.」 

  포스터가 반박했다.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여, 대학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포스터가 말을 이었다. 

  「삼촌은 마음만 먹으면 대단한 연구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난 인정을 받아. 조금이라도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물론 생물 화하자나 성층권 기상학자들이 나한테 관심을 갖지는 않지. 하지만 보수는 충분히 준다. 일급 화학자한테 위원회가 일 년치의 과학 집필 보조금을 중단했을 경우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 봐라. 그 화학자는 실험을 위한 계측기를 살 돈보다는, 나 같은 사람한테 줄 돈을 타내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싸울 거다.」 (아이작 아시모프, 「죽은 과거」, 57~58쪽.) 


  「내 말을 들어 봐요. 포털리, 그걸 20년 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로렐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모르겠어요? 카르타고니 고대니 하는 게 뭐가 중요해요? 우린 로렐을 볼 수 있어요, 로렐은 우리 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그 기계를 이곳에 놓아 두세요, 포스터 박사. 그걸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가르쳐 주세요.」 

  포스터는 캐롤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어 포털리를 바라보았다. 포털리 박사의 얼굴을 창백해져 있었다. 포털리의 목소리는 낮고 평탄했지만, 어쩐지 차분함은 사라진 것 같았다. 

  「당신은 바보야!」 

  캐롤라인이 힘없이 말했다. 

  「포털리!」 

  「당신은 바보란 말이야. 대체 뭘 보겠다는 거야? 과거. 죽은 과거. 로렐이 자기가 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당신이 보지 못했던 일을 한 가지라도 볼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당신이 아무리 보아도 결코 자라나지 않을 아기를 보면서, 그 삼 년간을 계속 되풀이해 살 작정이야?」 (아이작 아시모프, 「죽은 과거」, 78~79쪽.) 


  행성은 아름다웠다. 왕은 오랫동안 존속해 온 것들을 인공 두뇌학적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물의 질서를 도입하는 법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 겨로가 왕국에는, 공장에서 제작된 인공 딱정벌레와 인공 벌이 웅웅거릴 때도 있었고, 심지어 인공 파리도 있었다. 만일 이런 것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기계 거미가 잡도록 되어 있었다. 행성에서는 인공 금잔화로 이루어진 인공 숲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를 냈으며, 인공 건반악기와 인공 바이올린이 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나 이런 문명적인 장치들 외에도, 행성에는 그 두 배나 되는 군사적 장치들이 있었다. 왕이 아주 호전적이었기 때문이다. 궁궐 지하실에는 전략 컴퓨터가 한 대 있었다. 대단한 무용武勇을 가진 기계였다. 왕은 더 작은 컴퓨터들도 가지고 있었고, 여러 사단의 전자 부대, 거대한 전자 무기, 거기에 화약을 포함한 다른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갖춘 병기고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딱 한 가지였다. 그것 때문에 왕은 크게 괴로워했는데, 그 문제란 왕에겐 다 하나의 적도 없으며, 어떤 사람도 왕의 영토를 침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아주 특별한 효과를 가진 왕의 전자 두뇌 무기뿐만 아니라, 왕이 무시무시한 용기와 전술적 천재성을 보여 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진짜 적이나 침략자가 없었기 때문에, 왕은 기술자들로 하여금 인공적인 적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왕은 이 인공적인 적에 대항하여 전투를 했다. 그리고 늘 이겼다. 그러나 이 전투와 전쟁은 진짜로 무시무시했던 까닭에, 백성은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백성은 전자 적들이 그들의 정착지와 마을을 파괴할 때, 제작된 적들이 그들 머리 위에서 액체포를 퍼부어 댈 때, 불평을 하였다. 심지어 백성은 왕이 자신을 그들의 구원자로 선포하고 나서, 인공적인 적에게 공격을 하는 와중에서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쓸어 버리며 승리를 거둘 때, 감히 왕에게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왕은 바로 백성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데도 백성은 배은망덕하게 불만을 토로해던 것이다. (스테니슬라프 렘,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 120~121쪽.) 


  「이름이 뭐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점점 빨리 걸었다. 거의 뛰다시피 했다. 이제 에릭은 여자가 별로 아름답지 않다는 첫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코는 너무 길었고 입은 너무 컸다. 웃음을 지을 때 보니 앞니가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불규칙한 생김새의 조합이 짝 인형들을 제조하는 부드러운 원칙보다 더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에릭은 여자의 피부가 너무 검고 또 너무 거칠며, 이마에 점이 하나 있다는 것에서도 실망이 아닌 기쁨을 느꼈다. 어쨌든 이 여자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외로 나가자 여자는 에릭을 마른 도랑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옷을 벗지도 않았다. 여자는 너무 급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직집적인 욕망이 너무 강해 예비 과정의 세련된 즐거움을 누릴 여유가 없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서로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들은 서로의 욕구에 대해 개의치 않고, 동물처럼 빠르고 거칠게 짝짓기를 했다. 

  그것은 에릭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렇게 강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첫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제 에릭은 짝 인형들에게 가졌떤 생각이 잠시의 오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과 짝을 짓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었다. (마누엘 반 로겜, 「짝 인형」, 229쪽.) 


  「날 죽게 해주십시오.」 

  「자넨 죽지 않아.」 

  카프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했다. 

  「난 10분의 9는 죽은 상태입니다. 나한테는 살아갈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정확함이 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퓨는 그 마음과 싸워야만 했다. 

  「아니야.」 

  퓨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은 죽었어. 나머지는 말이야. 네 형제들과 자매들은. 넌 그들이 아니야. 넌 살아 있어. 네가 존 차우야. 네 생명은 너 자신의 손 안에 있어.」 (어슐러 K. 르 귄, 「아홉 생명」, 399쪽.) 


  우리는 어떻게 남성이 스스로 순결함으로써 하나님께 순결한 세상을 보여드릴 수 있는지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담긴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어떤 남성들은 여성이 없이 어떻게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이 지금과 같이 지저분한 동물적 번식 방법에 의존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남성을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남성이 여성이라는 자신들의 동물적인 부분을 제거해 버리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대하던 신호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는 순결한 방식을 드러내 보여 주실 것이다. 그것은 천사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주거나 우리가 영생을 얻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단지 복종만 하면 되지 머리를 굴릴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여기 있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천사를 본 사람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그 소리가 내게는 마치 내 안에서 심오하게 울려 나오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마치 어떤 영감을 받은 듯했다. (라쿠나 셀던, 「째째파리의 마법」, 487~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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