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KBS '위안부' 영상 '복원' 본문

잡想나부랭이

KBS '위안부' 영상 '복원'

Dog君 2021. 5. 22. 23:46

https://youtu.be/d-wSu8FQG0c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복원'의 뜻은 '원래대로 회복함'이다. 그러니 '위안부' 영상을 컬러로 복원한다는 이 기사의 표현은 일단 틀렸다. 이 영상은 본래 흑백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내가 NARA 자료를 전부 다 본 것도 아니고...)

 

  단어 선택이 쬐까 거시기한 것도 있지만 진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걸 한 이유다.

 

  이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영상을 몇 달 전에 보고 뭔가 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안부’를 담은 영상기록이라는 점에서 너무너무 소중한 사료이긴 했지만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병사가 주저앉은 여성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듯한 모습이나 여성의 팔을 굳이 일부러 들어올리려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아마도 촬영 당시에 어떤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안부' 제도의 범죄성은 이미 전쟁 당시에 양 측 모두에게 충분히 인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위안부' 제도를 보다 더 교묘하게 운영했고, 미국과 다른 연합국은 ‘위안부’와 관련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전쟁터에서 발견된 여성을 굳이 카메라로 찍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군도 이들을 통해 연합군 스스로에게 해방자의 이미지를 씌우고 싶었을 것이고. 영상에서 내가 느낀 어색함은 아마 그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런 영상에, 다시 또 컬러를 덧씌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생생함'을 더해서, 8월 15일에 다시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좀 걱정스럽다.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다.

 

  '위안부' 문제는 정말 어렵다. 해결이고 어쩌고를 떠나서 일단 그 문제를 잘 인식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위안부' 문제의 어려움은 '위안부'라는 표현 그 자체에서부터 드러난다.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위안부'라는 표현, 사실 이거 썩 좋지는 않은 표현이다. 그게 일본군의 입장에서나 '위안'이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거기에 '위안'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가 있나. 그 엄청난 비극의 이름에 '위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자면 '위안부'보다는 '성노예'가 좀 더 보편적이고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노예 대신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피해자 스스로가 성노예라는 명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안부’라고 쓸 때는 이것이 잠정적인 표현임을 나타내기 위해 반드시 작은따옴표를 붙인다.) 그들은 자신을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기만 했던 노예가 아니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자기 존엄성을 지켜낸 이들로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자신의 존엄을 찾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분투했고, 우리는 그 분투를 여러 다큐와 영화와 책과 논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역사의 증인이자 활동가로 기억한다.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위안부'를 '군경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이미지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이미지 속에서 여성은 여전히 주체성 없이 대상화된 객체일 뿐이다. 그 이미지가 역사적 사실과도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한참 전 정의연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군경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소녀'라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이미지로만 ‘위안부’를 이해했던 우리 스스로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 스테레오타입의 빈자리를 노리는 것이 바로 반일종족주의나 사과하지 않는 아베 정권이지...) 그리고 더 많은 '위안부'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더 많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뒤에 따라 붙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조금씩 더 성숙해지나보다 싶은 중에 이 기사를 봤다. 나는 혹여나 이 (원본으로 되돌린게 아니고 인위적인 가공을 더한) 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위안부' 피해를 보다 더 생생하게 전.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낯설기는 매한가지인 이국의 병사들에게 억지로 일으켜 세워지고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르게 하는, 울먹이는 여성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성실한 활동과 연구의 결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위안부' 이야기를 도로 쌍팔년도 수준으로 되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잡想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TNA, ADM 116/6404.  (0) 2021.05.22
무도 한국사 특강  (0) 2021.05.22
강달영 단상  (0) 2021.05.22
말의 무게  (0) 2019.08.26
스멀스멀  (0) 2019.02.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