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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마음산책,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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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마음산책, 2022.)

Dog君 2023. 8. 30. 10:11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죠.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가족에게 품게 되는 애증의 감정을 이만큼 잘 표현한 말도 드문 것 같습니다.

 

  양영희에게도 가족은 그런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그러합니다. 북송(北送)사업으로 아들 셋을 북한에 보낸,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을 거두지 못하는 조총련 중견 간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을까요. 거의 타의에 가깝게 북한으로 가게 된 세 아들이 북한에서 겪어야 했던 신산한 삶과 사랑하는 오빠 셋을 떠나보낸 양영희의 슬픔까지 생각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가족에게 닥친 비극이 얼마나 컸는지 저 같은 범인으로서는 좀체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의 후속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 셋의 북송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기에 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그리움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는지 양영희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북한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북한으로 간 자식들을 위해 때마다 음식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고 애쓰는 부모님의 모순적인 모습을 기록하는 양영희의 카메라는,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과 화해하기 위한 노력처럼 보입니다.

 

  그의 노력은 책의 말미에 이르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비로소 양영희는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가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끓인 백숙을 나눠먹으며[食口?] 이데올로기와 세대와 민족의 차이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양영희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모티브가 되었죠.)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이향규의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지난 날 우리의 삶을 가르고 있었던 이데올로기니 민족이니 하는 굵직한 선을 지워버리는 공감과 사랑의 힘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침대 옆에 올라가 낮잠을 잤다. 자기 곁에 눕는 마흔 넘은 딸을 보면서 아버지는 다시없을 만큼 기뻐했다. 더 이상 죽여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141쪽.)

 

  오사카 집에 방문해서 환대를 받은 카오루는 어머니가 만든 닭 백숙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다섯 시간이나 우려낸 수프(국물)의 맛도 맛이지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어머니의 따스한 응대에도 감격한 것 같았다. '미국 놈, 일본 놈은 안 돼!'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단호한 신념은 물론, 늘 아버지 의견이 우선인 어머니의 성정 또한 내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소금을 뿌리시면 어쩌나, 김치를 던지실지도 모르겠다며 농담 섞인 불안을 내비쳤으니 그만큼 긴장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웃으며 환대를 해주셨다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171쪽.)

 

  그래서 결론은 또다시, 이데올로기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는, 별달리 새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공산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 같은 표현이 다시금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요 며칠 때문일까요, 그 진부한 결론이 왜 이렇게 새삼스러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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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사귀는 놈이 없으니까 화가 나지.
  딸 : 어떤 사람이 좋아?
  아버지 : 어떤 사람이든 돼, 너만 좋으면.
  딸 : 정말이죠? 아버지, 녹화했으니까 이게 증거야.
  아버지 : 그래.
  딸 : 다른 말 하기 없기예요.
  아버지 : 응.
  딸 : 아싸!
  아버지 : 미국 놈, 일본 놈은 안 돼.
  딸 : 그런 게 어디 있어. 말이 다르잖아. 그럼 프랑스인이면?
  아버지 :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딸 : 거봐, 다 조건이 있네.
  아버지 : 일단 우선은 조선 사람이라야 좋다. (25~26쪽.)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여자의 인생은 스물다섯까지라고 어떤 멍청이가 말했던가. 내 인생은 이십대 후반에 시작됐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행하는 삶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는 나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결혼 상대를 데려오라고 닦달했다. 한번은 "누군가와 함께하면서도 외로울 바에는 고독을 각오하고 혼자 살겠다"라고 말했다. 솔직한 말 한마디가 아버지를 더욱 걱정시켰던 모양이다. 일본에 일가친척도 없는 딸이 정말 고독에 휩싸일까 봐 초조해진 아버지는 더욱 자주 애인을 데려오라고 독촉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적이지. 그렇게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구요!" 아버지는 도통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사니까 언제까지고 사이가 좋은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더는 반론을 포기했다.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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