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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 (김경현, 곰단지, 2024.) 본문

잡冊나부랭이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 (김경현, 곰단지, 2024.)

Dog君 2024. 2. 1. 09:41

 

  10년쯤 전 지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정이 이어지면서 그 결심은 이루기 어려워졌지만 지금도 틈틈이 진주의 역사에 대해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곤 합니다. 제가 지역사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주요한 계기 중 하나는 1998년 진주문화원에서 펴낸 『진주이야기 100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공룡시대 화석 발견지부터 임진왜란과 3.1운동의 기억은 물론 현대사의 현장까지 100개의 키워드로 담아낸 진주의 역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진주에서 나고 자랐고 역사 공부를 직업으로 삼은 저조차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기에 지금도 종종 들춰보는 책입니다. 저만 이런 것도 아닙니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숨겨진 명저로 꼽히지요.

 

  하지만 간행되고 시간이 많이 지난데다가 바로잡아야 할 부분도 꽤 있기 때문에 언젠가 꼭 개정할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공부가 얕은 제 눈에도 쉬이 띄는 오류가 꽤 여럿이라 (저자를 포함한) 지역사 전문가들께서 마음 먹고 제대로 고쳐 쓰면 지금보다 몇 배로 더 가치가 커질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진주 지역 출판업계에 계신 어떤 분과 사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도 마찬가지 아쉬움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올초에 『진주이야기 100선』의 개정증보판인 이 책이 나왔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주문을 했고 곧바로 완독했습니다. 그리고 제 감상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저도 너무 죄송하고 어쩌면 이 글을 보실지도 모를 관계자 분들께는 특히 더더더더더더욱 죄송하지만,

 

  아... 음...

 

  너무 안 좋습니다. 좀 가혹하게 말씀드리자면, 근래 본 책 중에서 가장 안 좋습니다.

 

 

  오탈자와 비문, 오류와 어색한 문장은 거의 매쪽마다 보여서 일일이 정리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고칠 부분이 있는 페이지마다 띠지를 붙였더니 책이 거의 1.5배로 두꺼워졌습니다.

 

  그런 것들이야 자잘하다 치고 그냥 넘어가더라도, 책의 전체적인 기획과 구성 역시 (제 기준에서는) 낙제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새로 책을 내면서 첨가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복간'이라고 말하기는 힘든데, 그렇다고 해서 고쳐서 바로잡거나[改訂] 더하고 보탠[增補] 부분도 마땅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정증보'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1998년 판의 오류는 정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지난 25년간 축적된 연구성과나 바뀐 사실도 거의 보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98년 판의 원고를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2023년의 내용을 구분 없이 삽입하는 바람에 1998년의 내용과 2023년의 내용이 마구 섞여버렸습니다. 결국 글의 시제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하나의 글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일관성이 없어졌습니다. '복간'을 할 요량이었다면 1998년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2023년을 기준으로 하여 해제를 추가한다거나 했어야 합니다. '개정증보'를 하려고 했으면 100개의 키워드부터 새로 선정하고 틀렸거나 부적절한 내용도 대대적으로 새로 다듬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복간도 아니고 개정증보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998년 판을 기억하는 사람과 2024년 판을 처음 산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기획은 2023년 10월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행일이 1월 10일이니 작업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개월 정도입니다. 글쎄요, 이 책을 반드시 3개월 안에 펴내야만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왜 이렇게 무리하게 간행을 서둘렀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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